녹색은 적색이다
폴 먹가 지음, 조성만 옮김 / 북막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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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입니다. ‘보수’란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재의 생활방식에서 기원한 태도이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더러워서 못살겠다” 라고 불평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현재의 생활방식이 급격하게 변하기 이전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입니다.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현재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도 TV 뉴스를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를 욕하기도 하고, 사뭇 진지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보수적입니다. 그(녀)에게 TV 뉴스의 사건 사고들이란, 간단히 교정할 수 있는 일탈행위에 불과하니까요.
이를테면, 엊그제 제가 올린 「삼성예찬」비판글에 대해서, 호중씨의 평은 ‘삼성의 도덕성’ 이었습니다. 호중씨에게 삼성이 잃어버린 도덕성이란, 일종의 일탈행위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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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좌파 저널리스트 폴 먹가가 쓴 <녹색은 적색이다>는, 지구 온난화와 유전자 변형 농산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환경위협의 심각성을 밝히는 것을 넘어서, 오늘 우리가 직면한 환경위협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탈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인 즉은, ‘중이 제 머리 못깍기’ 때문인데요, 지구 온난화며 유전자 변형 농산물 문제에 초국적 화학기업, 식량기업의 이해가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지를 통해 밝혀냅니다.
그런데, 이미 전 세계 시장의 몇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이 기업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윤을 포기하고 부도처리되는 것이 가능하긴 한걸까요? 그동안 각국의 정부, 재계, 학계에 거미줄 처럼 깔아놓은 이들의 인맥은 과연 손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린다 하더라도, 이 초국적 기업들에게 그만큼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바쁜 정부도,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 연구할 수 없는 학자들도, 몇몇 사람들의 상징적 시위 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폴 먹가의 대답은 이것이죠.
“가장 효과적인 녹색은 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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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중국산 김치파동에서 충분히 실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김치도 마음놓고 못먹겠다.” “먹는 것에는 장난치면 안된다.”였을텐데요,
우리들의 바램과 상관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량, 음식이 하나의 상품이 된지는 꽤 되었습니다. 식량기업들에만 특별히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별로 실효성이 없습니다.

세계의 식량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5대 기업은 아스트라제네카, 뒤퐁, 몬산토, 노바티스, 아벤티스라고 하네요.
이들은 본래 화학약품 회사에서 시작한 기업들로서 세계 살충제시장의 2/3를, 비유전자 변형종자시장의 1/4을 석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유전공학 학자들을 대거 매입해 유전자 변형식품을 개발하는데 앞장서고 있죠.

물론, 유전공학이나 유전공학 학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논리에 있죠. 인류의 식생활과 생태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가장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빨리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이들의 이윤논리가, 유전공학이라는 과학을 왜곡시키는겁니다. 덕분에, 유전공학은 위험한 학문으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초국적 기업들은 유전자 변형식품을 통해서 저렴하고 질좋은 식품들이 대량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선전하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변형식품의 위험성만을 경고하는,
이런 비틀어진 논쟁의 구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문제는 유전공학이 아닙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 초국적 기업들은 종자회사들을 모조리 합병하고, 또 저희들끼리도 흡수 합병하면서 덩치와 시장 장악력을 키워갑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식량시장의 석권이겠죠. 쉽게 말해, 인류의 먹이사슬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수확된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의 잘난 경영마인드는 아예 종자부터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유전공학을 통해서 변형시킨 종자에 대한 특허권 제도를 도입하고, 심지어 종자의 순환주기마저도 한해로 변경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굳이 세계의 모든 식량재배지를 사들이지 않아도, 종자 판매 만으로 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이들 혼자서는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연구원들을 매수해 유전자변형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로비를 통해 공공기관의 제재조치로부터 벗어나며, WTO, APEC과 같은 무역 자유화 기구들을 통해 세계 시장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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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적 대안은, 자본주의로부터 나오지만 자본주의의 이윤논리 만을 지양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농업의 대규모화가 가져온 이점은 두고, 이 이점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이윤논리만을 제거하는겁니다. 이미 기술은 발달되어 있고, 농장도 집약되어 있습니다. 고작 다섯개 초국적 기업들이 이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죠. 이 농장만 몰수해서 공공의 이해에 맞게 민주적으로 운영하면 됩니다.
굳이 FTA 협상에서 초국적 식량기업들이 강행하듯이, 그리고 과거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강행했듯이, 각국의 소농을 없앨 필요가 없습니다. 극단적인 이윤논리가, 멀쩡한 농토를 철수시켜서라도 한국의 식량시장을 장악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니까요.

마르크스는 원시 공산제에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각각의 세계를 생산관계의 정형을 통해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각 시대의 지배계급은 멸망할 때 까지 기존의 생산관계를 고집한다고 말했죠.

채집사회나 농경사회에서는, 과학의 발전이 극히 미미한 나머지 그것이 어떤 재앙(환경파괴)을 초래할 줄도 모른 채 기존 생산관계에 몰두했죠.
이들은 채집을 통해 동물이 지리멸렬하고, 한 작물만 심다가 지력이 고갈되는, 일종의 환경에 의한 재앙이 닥쳐서야 기존의 생산관계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런데, 과학이 놀라우리만치 발달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어떤 재앙이 닥칠지 충분히 예상하고 남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관계를 고집하고 있죠.
과거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지배하던 시절에, 돈 되는 커피나무의 비료를 쓰기 위해 산사태 위험에도 불구하고 산기슭을 모조리 불태웠다가 변을 당했다는데, 식량기업들이 경쟁상대도 되지 않는 한국의 농토를 황폐화시키는 것이나, 정유기업들이 끊임없는 지구온난화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산화탄소 제거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확대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는 것을 보면 이와 한치 다를바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들도 결국,
1980년대 체르노빌 사건, 1997년 엘리뇨, 평균온도 상승과 해수면 상승, 오늘날 카트리나와 동남아를 강타한 해일과 같은 환경재앙, 혹은 핵전쟁과 같은 인류재앙에 이르러서야 깨닫게될런지요.
마르크스는 한 시대의 종말을 두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공멸이나 기존 계급관계의 혁명적 변화 둘 중 하나라고 얘기했습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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