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논쟁하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 아닙니다. 온라인은 지극히 오프라인에 종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프라인에 종속적일 때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단점을 보완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벗어나는 순간 온라인에서의 논쟁은 무책임에 너무 쉽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책마을은 아직까지 소수에 국한된 커뮤니티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책임감이 보장될 수 있고 어느정도 논쟁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책마을 역시도 온라인 커뮤니티의 하나일 뿐이며, 온라인 커뮤니티의 논쟁에서 저는 절실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논쟁 보다는, 서로간의 다양한 관심사와 입장을 교류하는 것이 제가 책마을에서 바라는 바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죠.

하지만, 책마을에서도 불가피하게 논쟁을 해야할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나마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최소한의 책임감이 보장되기 때문이지,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라면 그냥 지나쳤을겁니다.

불가피하게 논쟁을 해야할 경우는, (1) 상대방이 최소한의 상식도 지키지 않을 경우와 (2)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있을 경우입니다. 저는 이 경우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이미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은 상대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요.

엥똘레랑스에는 엥똘레랑스인 법입니다.

주제는 삼성입니다.
사실, 제게 삼성이든 LG든 기업의 명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기업 일반을 움직이는 메커니즘, 즉 자본주의 운동법칙이니까요. 기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 차이란 거대한 메커니즘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을 비판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가장 구체적이면서 가장 적나라한 폭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병씨가 책가지에 쓴 「삼성 예찬」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불가피하게 논쟁을 해야할 두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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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라서 자신이 키운 기업이 힘들여 번 돈을 세금으로 퍼다주고 싶겠는가? 법에 구멍이 뚫렸으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정당하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이지 위법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묘히 법망을 우회하여 세금을 최소화한 상태로 양도했으니 이 얼마나 현명한 처사인가! 피땀흘려 번 돈이 쓰레기 살찌우는 데 쓰이지 않고 세계 제 1,2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서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쓰였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주병씨가 지칭하는 ‘쓰레기‘란 국가관료들을 뜻할겁니다. 공공연히 알고 있듯이, 일단의 기업범죄는 국가관료와의 유착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죠. 기업은 철저히 이윤논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영리행위 뿐만 아니라 사회봉사 역시도 철저히 이윤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국가관료와의 유착관계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서로 주고받는 상례를 그들은 철저히 지켰을 것입니다.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은 친일지주 출신이죠. 그는 일정부터 미정, 역대정권들과 빠짐없이 유착관계를 가져왔고, 그 안에서 혜택을 받아왔음은 물론입니다. 1938년에 시작한 양조업은 일정의 도움을, 1968년에 시작한 삼성전자는 박정희 정권의 도움을, 1980년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은 전두환 정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혜는 사업의 시작과 학장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관련한 경제범죄에서도 주어졌습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부터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선거자금을 비롯한 대가를 치뤘지만요.
때로는 국가관료들이 지나치게 이득을 보면서 80년대 부산의 국제기업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을 강제로 해체하는 권력을 휘둘렀을 수도 있겠으나,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거래에서 누가 남는 장사를 했느냐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밑그림을 가지고 있는 국가관료와 대기업들의 유착관계를 두고, 한쪽만을 편들기 하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니겠죠. 더군다나, 설사 그들만의 진흙탕 싸움에서 보복성이 농후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삼성의 조세포탈 행위를 눈감아 줄 이유가 될까요. 국가관료들이 세금을 제 마음대로 전횡한다해서, 그것이 ‘쓰레기에게 바쳐지는’ 그래서 ‘적당히 포탈해도 되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물론, 주병씨도 알다시피 정부관료들은 삼성의 조세포탈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기업을 길들이고 싶어할테니, 그들의 폭로는 어디까지나 기업이 순응하는 그 순간까지 만이겠죠.
하지만, 삼성의 조세포탈 분식회계에 진정으로 분노하는 것은 서민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국가관료들과 언론이 서민들의 분노를 적당히 여론몰이하며 이용할 뿐이지만, 서민들의 분노야 말로 진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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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세계 1위를 다투는 반도체 기업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며 흥분하는 주병씨.
삼성을 이순신에 빗댄 주병씨의 비유는 무지와 왜곡의 극치였습니다. 잘못된 비유는 독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란 굉장히 모순적입니다. 한편에서는 굉장히 사회적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굉장히 소수만의 이해를 대변하죠.
전자는 기업이 구축하고 있는 사회망입니다. 삼성만 해도 동남아, 남미, 유럽, 중동 할 것 없이 진출해서, 인종을 가리지 않고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사업분야 또한 광범위하죠. 삼성이라는 기업 자체가 일종의 소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자는 그것이 기업주 개인이든 주주이든 상관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입니다. 이들이 선택하는 사업분야와 진출하는 지역은, 단순히 혁신 마인드 글로벌 마인드이기 이전에 이윤추구라는 동기로부터 시작됩니다.

문제는, 전자와 후자가 서로 대립한다는 것입니다. 주로 후자가 전자를 압박하죠.
그래서 그들은 교육, 의료와 같은 최소한의 공공부문에까지 사업분야를 확장하고, 최적의 조건을 찾아 공장을 이전하는데 있어서는 각 나라 노동자들의 생존권 따위는 여념하지 않습니다.
후자가 전자가 구축해놓은 성격을 파괴하고 있는 셈이죠.

전자는 단지 형식일 뿐입니다. 후자에 종속되어 있어요.
아무리 사회적 존재라는 허울을 둘러쓴다 하더라도,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처해있는 모순입니다.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건,
이미지메이킹도 곧 이윤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삼성의 홍보광고팀과 그에 매료된 이들 뿐이지, 정작 광고를 만드는 삼성은 아닙니다.

이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증명될 것입니다. 현재,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수출의 22% 주식시장의 23% 세수의 8%인데, 이 비율이 높아질 수록 국가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할 것이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과 봉건시대의 군인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의 애국심을 추켜세우기 위한 것이라며 더더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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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범죄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두가지 관점인 국가관료와의 유착관계, 기업의 모순적 성격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관점을 떠나서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입니다. 객관적인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사람은 일기나 써야지 공개적으로 칼럼을 쓸 자격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가령, 기업이 자신에 속한 직원들에게 높은 연봉과 여러가지 복지를 구비해 주기만 한다면 노조를 구성할 하등의 이유는 없으며, 기업이 스스로 노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분명한 이상, 노조의 부제는 다분히 자발적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너무 바쁜 나머지 노사따위를 만들어서 파업할 여유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삼성은 높은 연봉으로써 그 댓가를 톡톡히 그들에게 주고 있다.”
“노사문제? 빌어먹을 노조가 없는 기업만큼 이상적인 기업이 어디있는가?”


주병씨의 의견 아닌 의견은, 삼성이 직원들에게 (1) 높은 연봉과 복지를 지급한다 (2) 노동조합이 없는 것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행위이다 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삼성 직원들의 임금격차가 128배이며, 대기업 중 노동소득분배율(전체 매출액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제일 낫다는 것은 아시는지요. 아니면, 주병씨의 시선이 상층에만 맞추어져 있어, 삼성의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요.

삼성이라고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에 200만원을 주고 100명 고용하던 노동자들을 전부 해고하고, 이제 2억 보다 낮은 1억 8000만원에 하청업체를 고용해서 전과 한치 다름없는 생산을 하면서도 2000만원의 이득을 보는 것이, 그 잘난 글로벌 경쟁이고 구조조정입니다.
삼성도 97년에 전체 임직원의 32%를 감원했고, 그 인력 전부를 사내하청과 아웃소싱으로 처리했습니다. 기본급 70만원에 매일 잔업 2시간, 토요일 일요일 특근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넘기는 하청노동자들이 간판만 달려있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자랑스런 삼성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노동조합의 부재가 다분히 자발적이라구요?
하긴, 삼성에서 얼마 전에 삼성노동조합탄압백서를 발간했던 삼성일반노조의 김성환 위원장을 명예회손죄로 3년 8개월의 실형을 살게하는 분투를 했으니, 주병씨가 몰라주는 것도 예의일 수 있겠군요.

삼성의 노동자 탄압역사가 1950년대 제일제당부터 시작합니다. 결국 군산공장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1988년 노사관리지침, 1989년 비상노사관리지침으로 비롯되는 철두철미한 노무관리를 알고계십니까?
1987년에 삼성중공업, 삼성화재, 신라호텔, 에스원, 전부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다가 포기했습니다. 복수노조법에 걸렸던거죠. 최첨단의 삼성은 어용노조를 만드는 것도 최첨단이었으니까요.
중국 독일 등에서도 삼성의 무노조 원칙 때문에, 중국의 어용노조인 총공회 조차도 경고조치를 하고, 독일금속노조가 시위를 벌였습니다.
교육을 파는 공장인 성균관대에서도, 교지에 대한 편집권이나 학생 자치권에 대한 탄압은 물론이고, 2000년에 학생들이 삼성의 학내사찰 문서를 폭로하자 4명 출교 18명 징계라는 대학내 초유의 징계조치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노동조합 포기각서는 양반입니다. 납치 감금에 백지수표, 삼성SDI에서는 휴대폰 위치추적까지.

이윤을 많이 내는 기업일 수록 최첨단의 노무관리를 한다는 것은, 역으로 최첨단의 노무관리가 기업의 이윤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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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초유의 조세를 포탈하고도 과태료 몇천만원으로 가볍게 처리하지만, 고작 삼성노동탄압백서를 출간했던 김성환씨는 감옥에서 3년 8개월의 실형을 살고 있습니다.
주병씨의 글은, 논지를 떠나서 사실왜곡 자체만으로도 이들을 위해하는 것입니다.

책임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정정문구를 삽입하기를 바랍니다.
삼성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자처하시려면 제대로 하실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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