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적하고자 했던 OO씨의 선입견은 사회주의사상에 대한 굉장히 일반적인, 널리 퍼져있는 오해들입니다.
OO씨가 말씀하셨듯이, 노동현장의 절대다수도 그와 같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백한 현실이죠.

이들이 어떤 사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우리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삶의 기반이 책상과 도서관이 아닌, 하루 10시간 이상을 기계에 매여있어야 하는 노동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스치듯 접하는 신문기사나 동료들과 나누는 잡담 정도로 얻을 수 있는 사상이란 없겠죠. 더구나 이들을 둘러싼 매체는,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과 사회주의적 전망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조장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이들은 지식인들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사상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지극히 잠재적이지만요.
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노동현장이 바로, 우리 사회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들은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뭉쳐야만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일을 할 뿐입니다.
이런 잠재적인 요소는, 이들이 노동조합과 같은 공동의 기구를 만들고 파업을 비롯한 쟁의행위를 할 때 비로소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파업을 비롯한 쟁의행위, 즉 그동안 감내해 온 모순에 대한 저항의 경험은 이들을 몰라보게 성장시킵니다.
제가 만나본 대부분의 신생노동조합 조합원들, 즉 이제 막 노동조합을 만들고 처음으로 파업이란걸 해본 노동자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몰랐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하자 이제서야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관리자들을 보고,
고작 몇푼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일당 몇십만원짜리 용역깡패들을 고용하는 자신의 고용주를 보고,
일방적으로 회사 편만 드는 경찰들을 보고,
집회에 나온 다른 회사 노동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들으면서,
십년 넘게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너무나 간단히 해고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은 그동안 가려져있었던 사회의 진실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만이 겪고있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개인의 의식이 사회의식으로 발전하는 순간이죠.

물론, 이런 방식으로 사회주의사상까지 도달할 수는 없을겁니다.
자본주의에서의 경험이란, 최대치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일 테니까요.

사회주의자의 역할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자본주의의 모순,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전망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굳이 사회주의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지만 내용에서는 이미 그에 가까워지는 노동자들에게, "지금 당신이 얘기하는 바로 그것이, 사회주의이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오죠.
제가 위의 사례를 말씀드린 것은, OO씨가 직접 "도대체 사회주의를 열망하는 노동자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하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동자들 특유의 양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노동자들의 생각과 사상이란 지극히 경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개방적인 척 하는 몇몇 지식인들보다 훨씬 개방적이며 진실에 가깝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 그러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책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죠.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을 대하는 상이한 제 태도는 이것 때문입니다.
오직 경험과 진실 만으로 사회주의를 대할 노동자들의 일시적인 편견과,
자신의 알량한 지식 만으로 마음대로 사회주의 사상을 재단하는 지식인들의 뿌리깊은 편견은 분명 다른 것이죠.

전자에게 필요한 것이 설명이라면, 후자에게 필요한 것은 논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근거없이 거만한 후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 노동자투쟁의 역사와 혁명의 역사, 성공한 혁명인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의 변화들, 러시아 중국 북한 쿠바 등등 사회주의라 불리우는 국가들의 역사와 사회체제의 특징,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하루 1시간 연구할 마음조차 없으면서,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해서 너무나 유창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말이죠.

저는 이들에게 이렇게 묻고싶습니다. "당신이 마음껏 사용하는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정의가 대체 뭐냐."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궁색한 대답을 내어놓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에 대해서,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라면 저는 그와 논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가 이제서야 "사회주의가 대체 뭐요?" 라고 묻는다고 해도, 그에게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이런 이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자격' 조차 없습니다.

이런 최악의 경우만 아니라면 저는 논쟁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서로의 오해와 편견들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좋은 정보와 고민거리를 얻게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혹 논쟁이 아니라 제가 던지는 질문이라면,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제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것은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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