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건설을 향하여 - 레닌 1893 ~ 1914
토니 클리프 지음, 최일붕 옮김 / 북막스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본래 토니 클리프가 쓴 레닌 전기 3부작의 일부분(1부)입니다.
하지만, 레닌이라는 혁명가가 생의 대부분을 정당을 건설하는데 보냈기 때문에, 그의 전기가 곧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건설사가 되었습니다. 1880년대 소규모의 마르크스주의 학습모임에서 시작해 1914년 명실상부한 대중정당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가까운 한국을 두고, 굳이 먼 나라의 정당사를 둘러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역사상 유일하게 노동자 혁명을 수행한 정당이니 만큼 일종의 벤치마킹이죠.
"혁명정당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정당에 비해 뭐 좀 특별한거 없나?" 그저 이런겁니다. ^^;

적어도 당의 건설과정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정당의 골간에 직업적인 정치인(혁명가)이 있고,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는 이들을 전국적으로 규합한 후 당을 창설합니다. 볼셰비키당 역시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획득ㆍ유지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견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적 단체” 라는 사전적 정의에 한치 어긋남이 없는 것이니까요.

물론, 형식상에서 약간의 공통점은, 더 많은 차이점과 내용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차이를 전제로 합니다.

일단, 이 정당은 의회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 설립되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한데요,
볼셰비키당의 전신격인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 설립된 것은 1898년, 러시아에 최초로 의회(두마, Duma)가 생긴 것은 1906년입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로 시작된 대중적인 시위에 대한 양보조치였죠.

물론, 이 당시 의회도 없는 러시아에서 덜컥 정당을 만들게 된 것은,
이미 서유럽 몇몇 국가들에 의회-정당 체계가 성립되어 있던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무엇보다, '정당'이 우리가 익히 생각하듯 '선거조직'이 아닌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집단' 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당원의 구성입니다.
본문에 통계자료가 나와있는데, 노동자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습니다. 한국에서야 인구 대부분이 노동자이니 별 대수로울게 없지만, 이제 막 자본주의가 개막했을 뿐더러 인구의 절대 다수가 농민이었던 당시 러시아의 정황을 고려한다면 한번쯤 놀랄만한 일일겁니다. 대부분이 노동자이고, 약간의 농민과 학생당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번째는, 조직의 모양새.
우리가 알고있는 정당은 대부분 지역구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요, 볼셰비키당은 공장과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있죠. 당시 러시아의 의회가 간선제로 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에, 지역구 별로 직선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는 한국과 비교할 상황은 아니겠지만, 당의 편재 자체를 공장 기반으로 하고있다는 사실은, 이 정당이 누구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일겁니다.

물론, 이런 형식상의 차이점은 내용이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치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되, 어떤 방식의 정치권력의 장악이냐가 다른 것이죠.

<마르크스주의와 당> 독서후기에서 언급했던 바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더욱 세세하게 다루고 있는데요,
이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느냐 마느냐는 두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것, 두번째는 기존 국가기구를 활용하지 않을 것 입니다.

첫번째가 없는 두번째란 테러나 쿠데타가 될 것이고, 두번째가 없는 첫번째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형태의 권력장악일진데,
이들이 이 두가지 경우 모두를 거부했고, 이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1917년 10월혁명은 이 두가지가 모두 충족된 조건에서 일어나게됩니다.

물론, 이들이 의회를 비롯해 기존 국가기구의 권력기구를 원천적으로 무시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9년에 의회가 설립되었었고, 제정 러시아가 몰락하는 1917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두 기구 모두에 약간의 참여를 했었어요.
'약간의 참여'라는 것은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겁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였으니까요. 이것에 도움이 될 것인가가 참여의 여부와 정도를 결정했습니다.

얘기가 다른 곳으로 많이 흘렀는데요,

한국의 정당정치에 신물이 나신 분들이라면,
정당이란 대체 무엇을 하는 조직이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굳어진 고개를 돌려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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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5-11-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독서후기에서 한가지 빼먹은 것이 있군요.

이 책은 나로드니키 운동을 언급하며 시작됩니다.
나로드니키 운동은 테러주의입니다. 러시아의 봉건적 성격과 짜르의 폭압정치에 분노한 지식인들이 제정 러시아의 각료들에 대한 테러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운동이죠.

1860년대부터 시작되어, 레닌이 태어난 1870년에는 이 운동이 한창 활발했었거든요. 레닌을 비롯한 당시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나로드니키 운동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성립됩니다.
러시아에 마르크스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플레하노프라는 아저씨가 바로 나로드니키 운동에서 분리 독립한 사람이구요. (사실, 이 아저씨는 완전하게 분리독립하지 못했는데, 레닌은 이 아저씨를 비판하며 완전하게 독립하죠.)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이고, 혁명은 곧 테러니까, 마르크스주의가 곧 테러리즘이다.' 라는 일반적인 편견에 대해,
꼭 얘기해주고 싶은 사례였어요. 마르크스주의는 테러리즘에 반대합니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