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씨가 사회주의를 두고 마치 일련의 경제정책의 하나인 것 처럼 고집하는 이상, 논쟁이 수월하지 못할 것 같군요.

"도대체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로 어떻게 가느냐" "뭔지 골라내어 순수한 무엇을 만드는 것"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OO씨의 사회주의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선입견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꽤나 예의가 바른 사람입니다만, 달리 정중하게 표현드릴 방법이 없군요. 사회주의에 대해서 무지하면서, OO씨에게는 일말의 조심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엥똘레랑스에는 엥똘레랑스인 법입니다.

사회주의는 당장 도입할 수 있는 경제정책의 성질도 아닐 뿐 더러, 당장 혁명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사회를 두고 사회주의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혁명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하나이지만, 결코 마술봉이 아니니까요.
OO씨가 자신만만하게 "대안이 없다"며, 당당하게 차악으로 선택하는 자본주의 사회 조차도, 산업혁명/부르주아혁명 이후에 오늘과 같은 사회의 모양새를 유지하기 위해 족히 150여년은 넘게 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을성을 갖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사회주의가 일종의 경제정책이 아닌 이유에 대해서 다시 설명드리죠.

사회주의자는 물리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뛰어넘으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합니다. (1) 계급 (2) 정당 (3) 봉기 이 세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혁명은 일어날 수 있죠. (1) 대중들의 열망과 동의가 있어야 하고 (2) 대중들의 의사를 결집시킬 정당이 필요하고 (3) 정당과 대중의 직접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충족되지 않은 조건들입니다. 다만, 이 조건들이란 가만히 앉아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한마음으로 연대하고, 정치적인 선전도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뿅망치'를 찾고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주병씨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계획경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업단위, 국가단위, 세계단위에 이미 계획이 존재합니다. 다만, 자본주의는 계획이 무정부적인 경쟁에 종속되어있을 따름입니다.
OO씨 말씀대로, 계획의 규모와 통제력은 반드시 비례하죠.

여기서도, '모두가 알아서 잘 하리라' 기대하는건 제가 아니라, 주병씨일 뿐입니다.
큰 규모의 계획에 따르는 거대한 통제력을 소수 관료가 행할 것이라 비관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OO씨일 뿐입니다.

1871년 파리꼬뮨이나, 1917년 러시아의 소비에트, 1960년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자주관리운동, 1970년대 칠레의 꼬르돈, 1980년대 한국의 광주, 등 전혀 관료적이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OO씨는 실패만 기억할 뿐 일말의 교훈도 배울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독서후기에 성급하게 결론을 요구하고 논평을 즐기기 보다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보는건 어떻습니까.
정책을 논하거나 결정하는 자리도 아니고, 서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곳입니다. '대안은 없다'라며 차악을 선택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이전에, 제가 읽고 소개하는 책에 작은 관심을 갖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라고 가벼이 받아들이는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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