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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당 - 마르크스에서 그람시까지
존 몰리뉴 지음, 이진한 옮김 / 북막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정당' 이라 하면, '선거' 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정당의 목적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들을 ‘선거인’이 아닌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것이겠죠.
선거란,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그들이 정치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죠.
선거는 수단이라고 했으니, 분명 다른 수단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즉, 정치를 목적으로 하되, 선거에 연연하지 않는 정당도 논리적,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류의 정당은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노동자의 힘’ 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당이 있구요. (이들은 스스로를 정의하기를 ‘비제도적 투쟁정당’ 이라 부릅니다.)
여튼, 중요한 것은, 정당에게 선거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선거에 출마하고 출마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정의하건데, 정당이란 정치조직이지 선거조직은 아닐테니까요.
정당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획득ㆍ유지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견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적 단체”입니다.
존 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와 당>은, 마르크스-레닌-로자-트로츠키-그람시 에 이르기까지 당과 관련한 각 혁명가(사상가)들의 이론과 실천이 어떻게 성립 발전되어 왔는지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도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정당을 필요로 하였지만, 이들에게 수단은 선거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회문제의 원인을 특정 정치인, 특정 정책이 아닌, 자본주의 경제체제 그 자체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죠. 이들은 선거를 통해 행정부 또는 입법부를 장악하는 것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몰리뉴씨가 기대한 독자층은, 자본주의 의회정치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다른 대안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설사 의회 밖 정치라 할지라도 말이죠.
몰리뉴씨의 독자층을 묘사하기 위해 아래의 한 단락을 할애합니다.
「이론적 사상적 대안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한 역사는 있지만, 억압받는 이들의 투쟁이 없었던 역사는 없었습니다. 소련 중국의 변화와 상관없이, 온갖 포스트 사상들이 불러온 논쟁들과 상관없이, 신자유주의의 광풍에도 상관없이, 자본주의가 존재했고 억압받는 이들의 투쟁이 존재했죠.
그리고, 투쟁이 거세질 수록 사람들의 자신감도 커집니다. 급기야 이들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라고 한목소리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다른 세계를 만들까?” 라는 질문에 각각 다른 대답을 합니다.」
몰리뉴는 이 독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대중투쟁과 심지어 대중혁명조차도 자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 지역 네트워크들을 통해 분출할 수는 있지만, 그런 형태로는 자본주의를 정말로 패배시킬 수 없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는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라는 지도부가 필수적이다.”
그의 얘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할 수 있는데,
다른 세계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기존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요.
기존 체제와의 싸움, 새로운 세계의 전망을 수립하는 일은, 일치된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 - 그것은 불가피하게 전부를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 의 일치된 ‘전망’, 이것을 곧 정당이라 할 수 있겠죠.
몰리뉴가 소개하고 있는 거의 100년간의 정당이론은 이에 대한 것입니다. 1848년에 쓰여진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주의당 선언>으로 부터 1930년의 안토니오 그람시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사회주의 정당이론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물론, 옳다 그르다라는 대답을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얘기는 이렇게 시작해야합니다. “어떻게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