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
크리스 하먼 지음 / 풀무질 / 1995년 9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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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말 그대로 논쟁을 모아둔 것입니다. 논쟁은, 소련이 해체된 90년대 초반,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발간하던 이론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제는 "소련의 몰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것이었죠. 책에는 주로 두명의 집필자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데, 크리스 하먼과 에르네스트 만델은 각각 특정 정치그룹의 대표적인 이론가들입니다.

물론, 이 둘의 논쟁과 상관없이,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란 '사회주의의 몰락' 이었고, 잠정적으로라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대부분의 정치세력들이 이에 순응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소련이 사회주의인가 아닌가 라는 논쟁은 아니며, 이 두 집필자 모두 소련을 사회주의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먼의 경우는,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91년 소련의 해체는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 친 것 뿐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고,
만델의 경우는, 소련은 10월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속해있었는데, 스탈린과 같은 관료들에 의해 점점 자본주의로 퇴행하다가 결국 완전하게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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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은 유효기간이 지난게 아닐까요?
중국과 소련이 완전하게 자본주의국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지금, 이론적 탐구라는 측면 외에는 꽤나 재미없는 논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북한 쿠바를 모종의 사회주의국가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 시각의 근본에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 '일국 폐쇄경제', '중앙집권적인 국가관료', 등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런 왜곡된 관점이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 마저도 '대안 없음' 으로 귀결시키는 자석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여집니다.

이 논쟁의 유효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논쟁이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동시에 분석적이라는 짧은 평을 덧붙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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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대학시절 한 선배를 만났는데, 안부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노동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말씀하시길, "요즘 민주노총에 대한 여론이 별로 안좋던데.." 라며 걱정을 하시더라구요.

이 선배의 걱정은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을 동일시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죠.
노동조합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당하고, 취업비리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대공장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어렵다는 정부의 선전도 한몫 했을겁니다.

하지만, 노동운동이란, 말 그대로 노동자운동이지 민주노총운동이 아니죠.
민주노총이 분명 잘못된 길을 가고있지만, 사회적으로 양극화되는 노동자들의 처지나 정당한 요구가 잘못된 길을 가고있는 것은 아니죠. 노동계 내부에서도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빈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라는 기구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정부의 선전은, 대공장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만델의 입장이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습니다.
만델은 소련이 스탈린 관료집단에 의해 타락의 길을 가고있지만, 10월혁명으로 이룩한 노동자국가임에는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타락한 노동자국가' 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소련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이 정치혁명을 일으켜 스탈린과 같은 관료집단을 일소하기만 하면 다시 본연의 노동자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소련의 해체는, 노동자국가로 돌아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잃어버린 '패배' 라는 것이죠.

반면에 하먼은, 소련이 스탈린 집권 이래로 이미 (국가)자본주의화 되었고, 소련의 해체는 비능률적인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질 친 것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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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먼과 만델의 입장이 처음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스탈린의 집권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물론, 만델도 하먼도 소련을 사회주의국가로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소련은 10월혁명으로 자본주의를 벗어났지만, 벗어난 자본주의의 압력도, 다가가야 할 사회주의의 압력도 동시에 받고있는 불완전한 체제인 것입니다.

양쪽에서 힘을 받고있던 소련에서, 기점은 스탈린의 집권인데,
만델에게 그저 '타락'일 뿐인 스탈린의 집권은, 하먼에게는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反혁명'인 것입니다.
반대로, 만델에게 자본주의로 돌아간 '反혁명'인 소련의 해체는, 하먼에게는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을 딛은 것 뿐이구요.

91년 이후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경제법칙(가치법칙)이 작용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지만,
하먼의 주장대로라면, 소련에는 이전부터 이미 가치법칙이 작용하고 있었던겁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 이전까지는 폐쇄경제를 유지했던 만큼, 제한적이었지만 말이죠.

하먼은 제한적 가치법칙의 작용을 군비경쟁에서 찾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시장경제의 다음 단계로 지칭되는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와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은 밀접하게 유착하게 되어,
자본 사이의 경쟁인 자본주의 가치법칙이 곧 국가간의 무기 경쟁과 전쟁으로 왜곡된다는 것이고, 소련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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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장의 하먼의 것에 가깝습니다.

대규모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인 소유의 철폐라는 것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형식일 뿐이지 내용 자체는 아닐테니까요.
집중화시킨 생산수단을 민주적인 계획을 통해서 잘 이용하느냐 아니냐가 더 근본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의 집권 이후에 생산계획 자체가 인민들의 동의 없이 소비재 보다는 중공업 위주로만 폭압적으로 이루어졌고,
스탈린 스스로도 일국에서도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일국사회주의' - 실제로는, 폐쇄적 자본주의 경제에 불과했지만 - 를 주창하면서 사회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다는 점을 보면,

그것은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 형식과 상관없이, 아니 그 형식 때문에 더욱 왜곡된 자본주의 국가로 회기한 것이죠.
소련 해체 이전부터 독일, 헝가리, 폴란드, 중국, 등에서 체제 저항적인 투쟁이 있었다는 점도 그것을 뒷받침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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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논쟁적인 성격의 글 보다는 좀 더 분석적이고 실증적으로 쓰여진 <소련 국가자본주의>를 비롯해서, 논쟁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정황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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