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이런 투쟁들이 개인에게든 집단에게든 거듭거듭 제기한 문제는, 체제에 대항하는 거대하고 고무적인 반란을 진정한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1970년대)에는 혁명정당을 지향하고 혁명정당을 자처한 세력들이 흔했다. 오히려 이론과 실천의 핵심 문제는 당과 노동계급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1973년 9월 칠레에서의 패배, 1974년~1975년 프로투갈 혁명의 중단, 미국 중간 계급 흑인 지도부의 주류 사회 편입,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각각 자국 정부와 체결한 역사적 타협, 몬클로아 협약, 사회협약은 세계 경제침체나 대량실업의 시작과 결합돼 새로운 시기를 알리는 전환점이자 요인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에 급진화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기타 형태의 이론적 순응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와 화해했다.
1990년대의 투쟁들은, (중략),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됐으며, 아프리카 대륙ㅈ 역에서 노동자들이 부패한 독재 정권들에 대항하는 전투에 참가해 많은 경우 승리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칠레의 독재정권이 끝내 무너졌고, 멕시코의 사파티스타가 반란을 일으켰으며, 브라질 좌파는 노동자당의 형태로 장족의 진보를 이룩했다. 1995년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쥐페의 복지감축 계획에 맞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노동자들이 전투적이고 고무적인 투쟁들을 여러차례 벌였으며, 인도네시아의 대중 반란은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타도했다.
근본 문제는 기존 상황에 대한 노동대중의 분노와 사회주의적 미래에 대한 확신 사이에 여전히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는 점이다.
개량이냐 혁명이냐 하는 오래된 문제는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통해 다시 등장했다. 이런 논쟁들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조직 형태와 정당의 구실에 관한 것이다. 피렌페 유럽사회포럼에서는 이 주제로 열린 포럼에 수천명이 참가했다.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서는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 예컨대 나오미 클라인, 마이클 하트, 더 오른쪽에는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의 베르나르 카상 같은 사람들이 정당에 거의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중투쟁과 심지어 대중혁명조차도 자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 지역 네트워크들을 통해 분출할 수는 있지만, 그런 형태로는 자본주의를 정말로 패배시킬 수 없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는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라는 지도부가 필수적이다.
- 마르크스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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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원칙들을 정립 : 유물론에 대한 강조, 투쟁에서 배우는 것에 대한 강조, 당은 계급적 기초를 바탕으로 한다. 당은 소수의 음모적 집단이 아니다.(음모가적인 자코뱅 전통, 쁘띠부르주아적 공상적 사회주의의 배격)
경험으로부터 당의 독자성 사상 구축 : 부르주아 운동이나 정당들에 뒤섞여 있어서는 안된다.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에 개입하면서, 기회주의와의 싸움을 강조 |
1인터는 여러 경향들의 자유로운 연합체(각 지부는 각자의 이론적 강령들을 수립할 수 있었다.)였지만, 마르크스는 유연한 방식으로 대처. 바쿠닌이 이를 이용하여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비주류파를 결집.
경제결정론과 낙관적 진화론 :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개량주의가 때가 되면 간단히 혁명적 행동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혁명의 주요한 장애물이 된다.
전위당의 필요성 깨닫지 못함
당과 대중의 관계에 대해서 선명하게 정리하지 않았으며, 즉 압도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를 포용할 때까지 더 많은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하면서 끊임없이 순조롭게 팽창하는 광범한 당이라는 개념. |
마르크스의 한계는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다. 그의 당 이론은 당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을 때 성립.
- 레닌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레닌 |
경제결정론과 결별
전위당 개념의 성립
개인적 테러리즘에 대한 반대
소비에트에서 다수파가 될 때 까지는 권력장악을 반대
직업혁명가 개념 정립
자생성-의식성 테제 : 의식적 요소를 돕고자생성을 극복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혁명가의 의무이다. 경제주의자들의 추수주의에 반대해 지도력을 주장하고 있다. |
외부로부터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와의 연계 |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
엘리트적인 분위기 극복
당을 재조직 : 노동자 구성원 확충, 젊은층, 민주집중제
당의 개방적 팽창 : 명백히 사회민주주의적이 아닌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서클이 당에 직접 가입하도록 하거나 당과 제휴하도록 하라.
후퇴기의 투쟁 : 당의 후퇴에 대해서, 비합활동에 대해서,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대해서(청산파, 소환파, 화해주의에 맞선 투쟁)
사회민주주의와의 단절
기회주의에 대한 정식화(<제국주의론>)
노동자국가(<국가와 혁명>) : 합법 비합법 기수의 수립, 전투 분대 조직, 군대 내 당 그룹 건설
인터내셔널 : 엄격하게 집중됨. 단일한 공산당의 지부로 명명, 4차 대회 이전까지는 각국에서 사회민주주의 유형에 따라 활동하는 지부들을 재조직하기 위해 ‘공산당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테제를 채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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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즘의 이미지는 레닌에 의해서 ‘발명‘된 것이 아니다.
역사는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노동조합주의와 노동조합주의적 정치 활동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이른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 프랑스의 1848년 혁명, 파리코뮌, 1905년과 1917년 2월의 러시아 노동자들, 1956년 헝가리 혁명,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레닌은 이때까지는(1904년) 자신이 정통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노선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멘셰비키를 베른슈타인파의 수정주의와 동일시하고, 자신은 독일사민당의 주류인 베벨 카우츠키 노선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1903~1904년 당시 레닌의 당 이론과 1919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창립 당시의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레닌] 살아서 성장하는 당이라면 모두 그 안에는 언제나 불안과 동요와 혼란의 요소가 있기 마련임을 잊지 말라.
[레닌] 이론은 회색이요, 푸른 것은 저 영원한 생명의 나무다.
[레닌] 우리에게 진부한 것이라고 해서 계급, 대중에게도 진부한 것이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 경제주의와의 투쟁, 직업혁명가 사상, 전러시아 신문에 기초한 전국적 혁명조직에 관한 주장
<일보전진 이보후퇴> : 대중추수주의에 대한 비판
<유럽 전쟁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 : 국제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을 사회주의의 배신자로 비난하고 인터내셔널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으로 파산했다고 기술.
<공산주의 좌익 소아병> : 혁명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타협, 책략, 그리고 부르주아 의회나 반동적 노동조합에 참가하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순수한 정책을 추구하기를 바라던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독일공산주의노동자당, 이탈리아의 보르디가, 네덜란드의 호르터와 판네쾨크, 영국의 갤러허와 팽크허스트 등의 노선
- 로자
로자 |
혁명정당의 필요성과 권위, 지도의 필요성에 공감하였으나, 대중의 자발성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 |
1918년 독일혁명을 지도하지 못함
당의 전위성에 대해서,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대해서 과소평가 : 그는 선진적 혁명적 노동자들을 따로 독자적으로 조직해 노동자 계급 전체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계급에 대한 기회주의와 개량주의의 영향력에 대항해 투쟁하도록 무장시킬 필요성을 간파하지 못했다. |
로자와 레닌의 차이점은 활동배경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독일은 이미 대중정당이 건설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며, 관료제가 확실히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독일 노동운동이 결여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자발성과 투쟁이었다.
사실상 총파업은 그것의 규모, 강력함, 그리고 전투성이 어떠하든 간에 단지 권력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 그것을 해결하지도 해결할 수도 없다. 봉기를 통한 낡은 국가권력의 타파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봉기는 그 본질상 조직돼야만 하는 것이다. 미리 봉기를 비밀리에 준비하고, 일정한 날짜를 잡고, 프롤레타리아의 결정적 부문들이 동시에 통일되게 행동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것을 실행하려면 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권위를 갖고 있는 잘 조직된 명령 체계가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무장봉기는 오직 당만이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으며 그 당은 단지 어떤 종류의 당이든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움직일 수 있는, 엄격한 규율을 갖춘 전투정당이어야만 한다.
- 트로츠키
트로츠키 |
당내 민주주의의 사수 : 비판의 자유, 당의 계급적 구성, 분파의 자유, 일국 사회주의론 비판, 일당 독재 반대 |
당의 발전속도를 관념적으로 설정 |
당은 처음에 소비에트 테두리 내에서 정치투쟁의 자유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희망했다. 그런데 내전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반대 정당은 모두 금지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정신에 위배하는 조치이므로, 볼셰비키 지도자들을 이 조치가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방위를 위한 일시적인 고육지책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트로츠키의 운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첫째, 그것은 대단히 작은 규모였고, 둘째로 사회 구성 면에서는 쁘띠부르주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셋째, 적어도 그 간부들을 보면 일종의 망명 조직이었다.
전쟁 준비 덕분에 자본주의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트로츠키가 자본주의 체제의 마지막 위기를 기대했음에도 전쟁이 끝나자 자본주의 체제는 오히려 가장 지속적이고 장대한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그릇된 행보는 (1) 극도로 교조적인 자파 중심주의 (2) 쁘띠부르주아적 기회주의로 귀결했다.
- 그람시
그람시 |
숙명론, 예견,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
순수한 자생성에 대한 부정
러시아와는 다른 서구 사회의 시민사회적 특성의 발견 : 진지전, 헤게모니의 집중, 동맹, 교육, 유기적 지식인의 중요성 강조
파괴적 측면보다 창조적 측면을 강조 : 혁명에서 국가기구의 접수 뿐만 아니라 생산력의 해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
실천적 지도경험 없음 |
[그람시]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활동하는 범위까지만, 그리고 임의의 노력을 가하는 데까지만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견된 결과를 구체적으로 창출해 내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람시는 노동 운동 내에서 경제주의 도는 생디칼리즘이라는 조류를 마르크스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봤다. 그 반면 마르스크주의는 정치를 통해 경제적 힘을 인간의 의지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람시] 혁명은 그것이 이제까지 자본가 계급이 지배해 왔던 사회에서 발전하고 있었던 힘, 즉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생산력을 해방시켜야만 프롤레타리아 혁명 공산주의 혁명이 된다.
[그람시] 집단 의지가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하는 유기적인 조직체, 사회의 한복합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정당이다.
[그람시]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전부였으며 시민사회는 원시적이고도 유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존재했으며 그래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시민사회의 강력한 구조가 즉시 드러났다.
[그람시] 순수한 자생성이라는 것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부터 강조해야 한다. 순수한 자생성이란 곧 순수한 기계적 자동성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람시] 관료화의 위험은 물론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연속성이 깨지고 당의 노선과 본질이 변질될 위험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