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영준이와 통화를 했습니다.
영준이가 난데없이 자동차공장의 불법파견 문제에 관해서 물었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현재 학보사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불법파견 문제에 관해서 기사화시켜보고 싶다고 했고, 혹 기사가 통과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자료를 건네주기로 약속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사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불법파견을 소재로 책마을에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계속 미루어왔던 터였고,
이 참에 썰을 한번 풀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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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은 노동시장의 비정규직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개중에 적당히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던 사안입니다.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을 비롯해서, 한국 산업의 한 축을 이루는 자동차사업장에서 대대적으로 불법이 난무한다는 기사는 적당히 눈길을 끌만 합니다.

불법파견이란, 말 그대로 '불법적인 파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행 파견법은, 이건 파견해도 되고 저건 파견하면 안된다는 식으로, 파견이 가능한 업종을 제한하고 있죠.

자동차사업장에서 노동자를 파견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대략 몇십개의 중소규모 업체와 계약을 맺습니다.

이 업체들은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스무평 남짓한 사무실만 가지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몇십명에서 몇백명의 직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장도 없는 이 업체의 직원들은 어디서 일을 하느냐, 바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노동자 파견에 대해서는, 노가다를 생각하시면 가장 간단합니다.
고용은 업체에 되어있지만, 일은 파견되어 하는 것이죠.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규모 자동차 공장에는,
절반 정도는 현대자동차 직원이, 또 절반 정도는 업체 직원들이 일을 하는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관례적이고 상식적인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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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 관례적인 사건을 두고,
노동계 일각의 활동가들이 이슈화를 시켰습니다. 노동부에 집단으로 진정을 넣은 것이죠. "이건 불법 아닌가요?"
그리고, 진정을 접수한 노동부에서는 현장 실사를 진행했고, 경이롭게도 대부분의 자동차공장들이 모조리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습니다.

파견이 불법이라면, 파견을 안해야 하는거겠죠. 즉, 직접 고용해야 하는겁니다.
업체 직원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직원으로 고용을 해야하는거죠.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본급이 70~80에 불과한 업체 직원을, 그것도 한두명이 아닌 몇천명을, 하루아침에 연봉 3000~4000의 직원으로 고용해야 한다니.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겠죠.

결국, 이슈가 되었던 이 사건은, 현재 법은 법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불법파견 진정을 넣었던 각 자동차 공장 업체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와 노동부를 상대로 투쟁이란걸 시작했습니다. "노동부가 판결했으니 직접고용해라." "니들이 판정내려놓고 왜 보고만있냐 집행해라" 라는게 이들의 요구입니다.

하지만, 금호타이어를 제외하고는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 GM대우자동차 창원공장, 구로공단의 기륭전자, 하이닉스-매그나칩 공장, 등등 어느 한 곳도 시정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요구를 했던 업체직원들은 해고되거나, 고소고발, 손해배상, 가압류,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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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고 합법이고를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노가다 처럼 잠깐 하는 일도 아닌데, "굳이 파견을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을겁니다.

상식적으로 답을 낼 수 없는 이 질문의 답은,
기업경영의 비용의 논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목적은 비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우리 공장에 직원이 10,000명이다 치죠. 그런데, 10,000명 모두의 임금을 깍으면 10,000명이 반발을 합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5,000명만 임금을 깍자니, 같은 일 하는데 누구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으면, 그것도 반발을 살 것 같습니다.

이런 짱구에서 나오는겁니다.
관례적으로 행해왔던 자동차사업장의 파견제도는, 위의 안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실제, 공장에 들어가면, 현대자동차 직원이나, 업체 직원이나 같이 출근해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이 퇴근을 합니다.
하지만, 대기업 현대자동차 직원의 연봉은 3,000~4,000만원, 업체 직원의 기본급은 70~80정도입니다. 잔업 특근 꼬박꼬박 하면 150정도는 벌 수 있구요.

저 사람과 나와의 '신분차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겁니다.
당연히 같은 일하고 덜한 대우를 받는데 불만은 있겠지만, 위의 두가지 안처럼 터무니 없지는 않았던거죠.

이런걸 두고 '교묘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혁신적인 비용절감과 자랑스런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국제경재력으로 국내 일자리 창출과 국가체면을 살려주던 노동자 파견이,
모조리 불법파견을 받았던겁니다.

노동부의 어려운 법조문은 '1년 365일, 필수적으로 운영되는 자동차 직접생산 공정에는 파견을 할 이유가 없다' 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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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의 그림을 가장 우화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덩치가 큰 갑동이와 덩치가 작은 을동이, 그리고 이성적이고 공부 잘하는 병돌이가 있습니다. 갑동이는 매일 을동이의 도시락도 뺏어먹고 온갖 괴롭힘을 다하는데, 어느날 을동이가 이렇게 묻습니다. "병돌아, 갑동이가 내 도시락 뺏어먹는건 잘못된거지?"

정말 새삼스럽기까지 한 이 질문에, 병돌이는 안경 코를 올리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럼, 그건 너의 도시락이기 때문이야. 갑동이는 너의 도시락을 뺏어먹어서는 안되지."

을동이는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갑동이에게 이렇게 얘기하죠.
"갑동아, 공부 잘하는 병돌이가 니가 잘못했대. 이제 내 도시락 뺏어먹지마."

다음날 어떻게 되었을까요?
갑동이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을동이는 갑동이의 미움을 받아 그나마 먹던 밥도 못먹게 되었고, 병돌이는 조용히 자기 공부만 하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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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준이가 이 사건을 학보사에 기사화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영준이의 기사가 아래 제목을 달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첫번째, '불법파견 사업주는 노동부의 판정을 성실히 시행하라'
그들이 성실히 시행하지 않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비용의 문제, 즉 회사의 사활이 달려있기 때문이죠. 내가 죽게 생겼는데 법 지키겠습니까. 하나 마나 한 말일겁니다.

두번째, '불법파견은 근절되어야 한다'
불법파견이 안되면, 합법파견은 된다는겁니까.
불법 합법의 테두리로 문제를 국한시켜서는 안됩니다. 법이라는게 그렇습니다. 그것은 독립적이거나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에요. 시소에 올려둔 공처럼, 기울기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거지요.
실례로 불법파견 판정은 98년에 제정된 근로자파견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97년엔 모두 불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비정규법안 통과되어서 파견을 허용하는 업종이 확장되면, 어제는 불법이었던게 합법이 되는 것이구요.

세번째,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 법은 멀어..' 류의 동정적 기사.
동정심은 순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죠.

좋은 기사를 써주세요. 자극적인 필체로 독자의 호응을 끌어내기 보다는, 독자에게 진실한 기자가 되어주세요.
한두명이 읽더라도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나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 를 고민할 수 있도록 말이죠.

백명이 잘못 이해하거나 순간 동정하고 잊어버리느니,
가슴으로 이해한 한두명이 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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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싫어하지 않지만, 동시에 믿지 않는 두가지는,
바로 '법'과 '여론'입니다.

법과 여론은 인격체가 아니니,
법을 시행하는 정부기구, 여론을 만드는 언론을 대할 때 그렇습니다.
싫어하지 않지만, 절대 믿지 않죠.

하지만, 자칫 난폭해보이는 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제 동료가 많아질 것이라 낙관합니다.

비정규직들이 많아져야 느끼는 사람도 많을텐데, 이 사회가 알아서 비정규직을 늘려주니 말이에요.
동료가 많아질 것을 낙관하는 저는, 억지로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느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동료는 늘어날테니, 전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까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제게, 알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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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료를 안내할 차례이군요.

- 불법파견이 무엇인가 하는 점, 그리고 초기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비정규노동센터에서 나온 자료를 첨부합니다. 정확한 법안은, 98년에 제정된 근로자파견법을 참고하세요. 노동부에 자료가 있을 것이고, 진정과 관련해서도 문의하면 답변을 줄겁니다.
- 불법파견의 실태자료는 첨부합니다. 금속연맹에서 집계한 자료인데, 작년 것이네요.
- 불법파견 진정과 이후 사태 추이에 대해서 정리된 자료는 없습니다. 신문을 검색하는게 제일 따끈따끈하고 나을겁니다. 한겨레, 매일노동뉴스, 참세상에서 '불법파견'으로 내부검색하세요.

혹,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추리기가 힘들다면, 저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일단, 대략 자료를 읽고, 기사의 골간을 잡아, 구체적으로 필요한 자료를 결정한 후에 자료찾기를 시작하는 것이 정석일겁니다.

이것이 결정되면 알려주세요. 구체적인 자료를 당장 영준이가 찾기는 힘들테니, 그 자료가 어디 있는지는 제가 찾아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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