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시대의 노동조합> : 트로츠키 사후에 발견된 문서로서, 제국주의시대의 노동조합은 독자성을 잃고 노동관료들에 의해 우경화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노동조합의 독자성과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사수하며 혁명적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서 분투해야한다.

현대 전 세계 노동조합의 발전,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퇴보에 있어서 하나의 공통된 특징적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이 국가권력과 유착하거나 함께 성장하는 현상이다.

노동조합관료들의 눈에 노동조합의 주요한 임무는 다음과 같다: 국가를 자본과의 포옹관계에서 떼어내고 독점트러스트들에 대한 국가의 종속성을 약화시키고 국가를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자본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본에 좌지우지된다.

개량주의 노동조합의 지도부인 노동귀족과 노동관료 특권층은 노동자들을 부르주아국가의 이익을 위해 통제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서만 국가는 이 특권층의 사회적 지위를 보호한다.

노동조합의 정치적 중립성은 자유부르주아 민주주의시대와 함께 완전히 복구할 수 없는 과거지사가 되었다.

민족자본가 계급의 미약한 힘, 자치 전통의 결여, 외국자본의 압력, 상대적으로 급격한 노동계급의 성장 등은 안정적 민주주의체제의 기반을 침식한다.

<노동조합단결의 문제> : 노동조합과 정당에 관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인접한 정치조직과 분립하거나 통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 공동전선에 대한 원칙도 언급되어 있는데, 단결이란 형식적인 조직의 통합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대중의 정서와 요구를 바탕으로 한 단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에 공산당 분파를 수립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임무이다.

“우리가 배신자로 보고 있는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여러분들은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견해를 여러분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또 그럴 의사도 없다. 그렇다면 함께 투쟁한 후 이 투쟁의 방식과 결과를 평가하자”

개량주의자들에게 형식적으로 공동전선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능한 정도까지 상황에 맞는 조건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공동전선정책은 노동자들을 개량주의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구체적인 공동투쟁의 문제에 대해 지역 또는 중앙차원에서 개량주의자들과 합의하는 것은 투쟁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아니다. 개량주의자들이 아니라 객관적 상황, 그리고 대중의 정서에 기초하여 전술을 세워야 한다.

협소하고 고립된 노동조합에서 다수가 되기를 원하는 태도는 노동계급 혁명가가 아니라 종파주의자나 관료에게나 어울린다.

우리는 언제든지 노동조합단결을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엉터리 약장수의 처방을 가지고 자본의 하수인들을 교정시키기 위해서 투쟁하지는 않는다.

노동조합 내의 소수파는 노동조합의 규율을 당연히 준수하는 조건 하에 무엇보다도 비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 이외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더 약속하지 않는다.

<영국의 노동조합> : 코민테른의 잘못된 노동조합 전술을 비판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반동적이라고 해서 노동조합 내의 활동을 거부하거나, 소수만의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는 것, 혹은 성급하게 소비에트와 같은 대중조직의 형태를 주창하는 것은 모두 오류이며, 노동조합은 혁명적으로 기능할 수 없지만 혁명정당이 공동전선을 조직하는 대중적 활동공간으로서 여전히 기능하며, 결정적 시기에는 보수적 노동조합은 대중기구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 가입할 조직의 주소가 아니다. 대중이 있는 곳에서 이들을 혁명으로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격동의 순간에 보수적 노동조합기구를 대체할 직장위원회와 노동자 소비에트를 수립해야 한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편지> : 소수의 독자적 노조를 유지하려는 종파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네덜란드 전국노동서기국에 대한 비판

혁명정당은 사회주의혁명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할 경우에만 그 가치가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조직을 유지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산업노동조합회의 소속 관료와의 대화> : 대중의 후진성을 핑계대는 노동조합 관료의 변명을 비판하며, 진정한 문제는 대중이 아니라 대중의 행동으로 전적으로 받아안고 투쟁해야하는 지도자에게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자본의 지도자들은 노동계급의 지도자들보다 훨씬 더 확고하고 일관되고 대담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은 회의적이고 사고가 판에 박힌 관료들로서 대주의 투쟁의지를 질식시키고 있다. 바로 이것이 아주 짧은 기간에 파시즘이 승리할 위험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외교문서로 기병대의 공격을 막을 수 없듯이 민주적인 법, 결의문, 선언문 등으로 파시즘을 막을 수 없다. 자본이 고용한 파시스트 깡패와 도적들에 대항해 손에 무기를 들고 자신의 목숨과 미래를 방어하도록 노동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공산당 문제에 대해 프랑스 조합주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 노동조합과 당의 관계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없이 총파업이 발생한 경우도 있습니다. 1905년 러시아의 10월 파업이 그랬습니다. 반면 1919년 7월과 1920년 5월 프랑스 노동조합들은 총파업을 조직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프랑스에 혁명을 지도하는 조직 즉, 공산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침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연대에 긴밀히 결합된 혁명적 병사그룹이 조직되어 격전의 순간에 인민의 편으로 넘어갈 준비와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조합주의동지들과의 필요한 논의> : 단일노동총동맹을 지도했던 혁명적 조합주의자 로베르 루종에게 보내는 편지. 로베르 루종은 노동조합이 당에 대해 무조건적인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마르크스의 권위를 인용하였다. 트로츠키는 마르크스가 당과 노동조합의 선후관계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으며, 마르크스주의란 혁명적 전위의 결집체인 당을 통해서 노동조합이 포괄하는 노동대중에게 지속적으로 과학적 사회주의사상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가 창립한 인터내셔널은 정당이었다. 그는 노동조합으로부터 노동계급의 국제정당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해 노동조합 내에 과학적 사회주의사상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고 애썼을 뿐이었다.

마르크스는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다시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가 머리를 쳐들고 있다!> : 위에서 언급한 로베르 루종의 「노동조합과 정당」에 대한 답변으로서, 노동조합을 선진적 소수의 결집체 정도로 한정시킨다면, 이 조직은 당이 되기에는 너무 느슨하고, 노동조합이 되기에는 너무나 협소할 것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대중적 공간으로서의 장점을 스스로 차단하는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이다.

<공산주의와 조합주의> : 공산당의 지도력은 노동조합의 진정한 독자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 당의 활동방식에 대해서 원칙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

노동조합의 독자성 즉, 자치의 원칙을 정확히 준수하며서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주요기구에서 다수파가 되려는 투쟁을 전개한다.

노동조합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있는 공산당원의 수는 당의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노동조합 전체에서 차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비율이다. (중략) 이것은 공산당신문의 발행부수, 당이 주관하는 회의참석자 수, 선거에서공산당원이 획득하는 득표수, 그리고 특히 중요하게 당의 투쟁 촉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노동자들의 숫자 등에 의해서 측정되어진다.

평화시에 노동조합의 전투적 투쟁은 고립된 경제파업의 형태를 띤다. 이때 노동조합 내에서 당의 직접적 역할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파업을 지휘하는 쪽은 노동조합이지 당이 아니다. 그러나, 운동이 총파업에 돌입하거나 국가권력에 직접 도전할 때에는 상화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런 조건에서 당의 지도적 역할은 완벽할 정도로 직접성, 공개성, 시급성을 띠게 된다.

어떤 조건에서도 노동조합은 진정한 독자성을 가지며 당에 조직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당은 여러 상황에 맞추어 노동조합에 대해 일반적 지도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노동조합의 독자성사상은 노동계급의 사상 및 정서와 공통점이 없다.

혁명의 미래는 두 노동조합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혁명적 구호와 투쟁방식으로 노동계급 다수를 결집시키는 것에 달려있다.

혁명경향이 노동운동 내의 극소수로 남아있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소규모 그룹들이 서로의 죄를 덮어주면서 협잡을 부리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올바른 전망을 수립하고 중핵들을 교육시키는 두배나 비타협적인 투쟁을 요구한다.

<조합주의 원칙의 오류들 - 모나트 및 그의 동료들과 진행 중인 토론에 일조하기 위하여> : 삐에르 모나트가 공산당에 입당한 이후, 그를 둘러싼 여러 개량주의자들을 비판하고, 모나트를 설득하기 위한 글로서, 자본가국가 노동자국가 모두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비판

프랑스사회당이 당명을 공산당으로 바꾸었을 때, 공산당 지도자들의 의심스러운 전력에 대해 나는 레닌과 자주 논의하였다. 이들은 코미테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짐이었다. 까쉥, 프로싸르 등은 인권동맹, 프리메이슨, 의회주의자, 출세주의자, 허풍장이 등의 영웅이었다.

부르주아국가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국가의 위험성을 계속 외치는 것은 순전히 반동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대부르주아 계급이 국가군력을 장악하면 이들은 소부르주아 계급을 목조이고 파산시킨다. 따라서 이들은 권력을 둘워 한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도 이 계급은 무서워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노동자권력이 파괴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독재의 권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국가적 위험은 권력이 다시 자본가계급으로 넘어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모나트가 루비콘강을 건너다> : 모나트가 노동총연맹(CGT)의 관료인 조르쥬 뒤물렝과 공동으로 선언문을 발표한데 대한 트로츠키의 논평

<노동조합문제에 관한 공산주의동맹 우파의 오류 - 논의 촉발을 위한 나의 견해> : 좌익반대파의 프랑스 지부인 공산주의동맹 지도부가 세운 단일반대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에 대해서

스탈린주의 분파는 당 대오 내로 행정적으로 노동계급 전체를 포괄하려고 시도한다. 당은 더 이상 전위 즉, 가장 선진적이며 가장 의식적이며 가장 헌식적이며 가장 적극적인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결사체가 아니다.

소련의 노동조합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파업파괴자 집단인 영국노총과 동맹을 유지하려 했다.

공산당은 노동조합 내에서조차 완벽한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 ; 모든 원칙적 문제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행동해야 한다 ; 필요할 때마다 좌파 동맹자들을 비난해야 한다; 이것을 통해 서서히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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