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강령 - 트로츠키 저작시리즈 7
레온 트로츠키 지음, 김성훈 옮김 / 풀무질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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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령’은 계획과 비슷한 뜻입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이행기강령’이란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계획을 뜻하는 것이겠죠. 트로츠키가 작성한 이행기강령을 대략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물가임금연동제 시행
(2) 공장위원회 수립
(3) 기업비밀의 철폐
(4) 개별기업집단의 몰수
(5) 민간은행의 몰수와 신용체제의 국가관리
(6) 가격위원회 수립
(7) 노동자에 의한 군수산업의 통제와 이윤 몰수
(8) 비밀외교의 철폐
(9) 상비군을 민병대로 대체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떠하신지요.
풀무질 출판사에서 나온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강령>에는 트로츠키가 이 행기강령을 두고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 소속 당원들과 토론한 기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운을 떼죠.

“일부 동지들은 내가 제안한 이행기 요구들이 일부는 기회주의적이며, 일부는 너무 혁명적이라 객관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제 생각엔, 일반적인 시각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쉽게 얘기해, 몇몇 요구는 그리 대단치 않게 느껴지고 몇몇 요구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이를테면, 공장위원회 수립이나 기업 은행의 몰수, 민병대, 등은 너무 멀게 느껴지는 요구들일겁니다.
물론, 이행기강령이란 자본주의가 경제위기와 전쟁과 같이 극심한 위기에 처했을 때에나 제안되는 요구들이지만요. 그것은 여전히 일반적인 정서와 한참의 거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흔히, “비현실적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위의 요구들은 자본주의라는 현실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요구들이죠. 트로츠키도 이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이 요구를 실현시키는 것보다,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는 것이 더 쉽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이행기강령이 공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굳이 형용어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현실지양적이죠. 그저 ‘미래에나 가능한 일‘을 꿈꾸기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계획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회주의자로서 트로츠키의 태도를 옅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솔직함‘이라는 덕목을 꼽았습니다. 고려해야 할 것은 대중의 정서 보다는,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죠. 비록 이행기강령이 지금 당장 대중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조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무릇 정서라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에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단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은 비현실적인 요구들이 현실적인 요구들로 받아들여질 때가, 즉 주관적인 정서가 객관적인 현실과 만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만히 앉아 하루속히 이 날이 오도록 기도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 만남(?)이 더욱 빨리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끈기있게 설명을 해야하구요. 이행기강령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입니다.

훌륭한 예시는 아니겠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역대 정책들을 예시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급자와 소비자가 있고 거래가 성사되어 이윤만 보장된다면 무엇이든 팔려고 달려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운동입니다. 처음엔 TV, 냉장고 같은 상품을 팔다가, 교육 의료 같은 기본적인 권리도 팔았고, 사람도 팔고(파견법), 사람의 장기에 성기, 난자까지 파는 세상입니다.

땅도 예외가 아닌데요,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상위 20%가 전체 토지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극단적입니다. ‘땅 투기‘죠.
하지만, 인트라넷 책마을에서 썼던 ‘투자와 투기’에 대한 칼럼에서 처럼, 투기는 본질적으로 투자와 같습니다. 결국, 땅에 대한 사적인 소유, 사적인 소유를 바탕으로 한 거래가 투자이고 투기이고 비상식적인 토지분배의 원인이 되는 셈입니다.

제가 보기에, 땅값을 잡겠다고 두팔 걷어올린 역대 정권들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땅에 대한 사적소유를 인정하는 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로 뒤덮인 정책의 차이는, 토지 거래를 얼마만큼 규제하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숱한 부동산 정책에 일희일비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토지를 공공의 소유로 하자는 주장은 여전히 비현실적이지만, 자본주의가 땅 투기를 잡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일뿐더러 불가능하기까지 하니까요.

현실적 불가능과 비현실적 가능.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요구들을 만족시킬 능력이 자본주의에게 없다면 이 체제는 멸망해야 한다. 실현가능성이나 실현불가능성은 계급역관계의 문제이다.”


# 보태어

본문에 대한 소개가 다소 미흡했군요. 간략히 소개합니다. 총 여섯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개하지 않은 두편의 글은 『이행기 요구들: 코민테른에서 제4인터내셔널까지』『제4인터내셔널의 역사』입니다.

『트로츠키와의 이행기강령 토론』: 이행기강령을 두고 트로츠키와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들이 토론한 내용의 속기록입니다.
『이행기강령 -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 제4인터내셔널의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이행기강령 본문입니다.
『프랑스 행동강령』: 위의 이행기강령이 국제적으로 일반화 된 내용이라면, 이것은 프랑스 상황에 맞게 더욱 구체적으로 서술된 프랑스만의 강령입니다.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 제10지부의 노동자들이 계급투쟁강령을 내건 후보를 지지하다』: 이행기강령의 현실적용판이라고 할까요? 미국 노동운동에서 사회주의 강령을 걸고 활동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과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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