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대안 - 트로츠키주의
레온 트로츠키 지음, 강대진 옮김 / 풀무질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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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운동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가요?"


“혁명운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및 비판능력의 저하는 이들을 필연적으로 체제내화시키고, 보수화 경향으로 인도한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해서는 저번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근거도 없이 원천적으로 거부되었던 혁명운동의 역사에 트로츠키가 서있습니다.
<역사의 대안 - 트로츠키주의>는 간략하게 말씀드려, 트로츠키주의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대안’ 이란, 다름아닌 연구되기 보다는 거부되었던 러시아의 혁명역사를 뜻하는 것이구요.

트로츠키가 저술한 몇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의 사상을 가장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는 논문으로 선별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혹, 입문서를 통해 그의 사상에 수긍한다면, <러시아혁명사> <배반당한 혁명>을 찾아 읽어보면 될 것입니다. ( <러시아혁명사>는 10월혁명이라는 실제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혁명’이라는 大사건과 관련한 일반화된 정식을 내어놓고 있고, <배반당한 혁명>은 10월혁명 이후의 러시아의 사회체제의 성격에 대해서 분석해놓았습니다. )

<역사의 대안 - 트로츠키주의>에 소개된 논문 각각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날의 공산당선언』
『10월 혁명의 교훈』
『러시아혁명에 관한 세가지 사상』
『10월 혁명을 옹호하며』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

각각의 논문에 대해서 짧게 설명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할까 합니다.


『오늘날의 공산당선언』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20대 후반에 집필한 『공산당선언』(이하 ‘선언’). ‘선언’ 발표 90주년을 기념해 1937년에 집필한 글입니다. 핵심 논지는 ‘선언’에는 아직도 유효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수정과 보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언가의 예언처럼, 고정되어 있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여기에 하나의 전제를 붙입니다.
수정과 보완은, 오로지 ‘선언’이 서술된 기초인 ‘과학적 유물론의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것인데요,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체제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흠집내려는 이들과의 차이점일 것입니다.

쉽게 풀이해서, ‘선언’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판단은, 그저 ‘옳다 그르다’ 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을 반영해서 이루어져야하며, 마찬가지 맥락에서 수정과 보완 역시도, ‘선언’이 근거했던 사회체제의 운동법칙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론은 보편화된 현실 그 자체”라는 것이죠.

트로츠키는 이런 관점에 입각해서, ‘선언’의 과거적 요소 -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에 내재한 발전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계급의 혁명적 성숙도를 과대평가했으며, 중간계급들의 소멸과정을 지나치게 단순 묘사하고, 식민지와 반식민지국가의 해방투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등 - 를 지적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과거적 요소는, ‘선언’이 집필되었던 19세기는 오늘날과 같은 국적없는 산업자본, 금융자본은 물론이고, 개별 국가 차원에서의 대기업 조차 없었던 초기 자본주의시대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월 혁명의 교훈』『러시아혁명에 관한 세가지 사상』


“효과적인 수영법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물에 뛰어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혁명이론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혁명이 전개될 당시 드러난 온갖 견해들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의 시험을 거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10월혁명 자체에 대한 기록이나 논문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0월혁명의 교훈을 도출해야 하는 이유를 강변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이 집필된 1924년은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관료주의에 맞서 ‘좌익반대파‘ 라는 당내 분파를 결성한 즈음이었는데, 그는 아마도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19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스탈린을 비롯한 당내 의견의 궤적을 추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는 러시아혁명의 중요한 논쟁시기를 되짚어가며, 당내에서 대립했던 의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오자면 이런 예를 들 수 있을겁니다.
사회적 통념은 80년대 민주화투쟁을 벌여냈던 세력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생각하지만, 직선제 선언과 군사정권의 종식 이후에 이 세력들은 정당, 시민사회단체, 노동현장, 재야,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죠. 그리고, 그 중 일부가 02년 이래로 주요 정부기구를 운영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구요.

이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무슨 재밌는 기사거리라도 난 것인양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떠들어대겠지만,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니에요. 정반대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 세력들이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집단 안에 뭉뜽그려져 있었던 것 뿐이지요.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모르는 사람만이, 이것을 두고 ‘아이러니’ 운운할 수 있겠지요.

10월혁명 매시기 마다의 논쟁을 소개하려는 트로츠키의 노력은, 군사정권이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가려졌던 의견의 대립을 밝히려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로츠키를 독일의 첩자로 몰아붙이며 탄압했던 것이, 볼셰비키당 당원으로 함께 10월혁명에 참여했던 스탈린이라면, 문민정부 이래로 집권한 정부 여당 치고 민주화투쟁의 외피를 둘러쓰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이니까요.


『10월혁명을 옹호하며』


“거대한 변화의 과정들은 이에 걸맞은 규모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사회가 성경에 나오는 낙원과 같을지는 모르겠다.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소련이 아직도 사회주의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련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되는 이행기를 경과하고 있으며, 온갖 모순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과거의 후진성을 물려받아 짓눌려 있으며 더욱이 자본주의국가들의 적대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이 논문은 1932년, 트로츠키가 덴마크의 사회민주주의 학생조직의 초청을 받아 행한 강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혁명사>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0월혁명의 진행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일반화시켜 혁명의 의의에 대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단순히 10월혁명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혁명 일반의 의의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혁명 이후의 러시아에 쏟아진 여러 가지 비판들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1932년의 러시아는 10월혁명을 15년이나 경과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여타 자본주의국가들보다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악의에 찬 많은 선전들이 쏟아졌습니다.
“혁명으로 이룩하고자 했던 사회주의국가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냐” “고작 이런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희생을 감수했느냐” 라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비판들일겁니다.

트로츠키는 이를 두어 ‘주관주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고 응수하는데, 러시아를 둘러싼 객관적인 상황들은 무시한 채 드러난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비판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에디슨이 맨 처음 만든 전구는 성능이 형편없었지만, 오늘날의 고성능 조명기구는 그가 발명한 전구를 토대로 한다는 것이죠.

강연문에서는 구체적인 정황은 소개되지 않습니다. 당시 러시아를 둘러싼 객관적 상황에 대해서는 <배반당한 혁명>에 잘 나와있습니다.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


“위험의 근원은 정책이나 전술이 아니라 노동계급독재의 물질적 취약성에 있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 논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논문은 트로츠키의 말년인 1937년에 쓰여졌는데, 이 시기는 이미 강제집산화, 독-소 불가침 조약, 모스크바재판, 스탈린헌법, 등 스탈린의 통치의 폐해가 본격화된 시기였습니다. 많은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90년대 초 한국에서 있었을법한 패배주의가 유럽을 휘감고 있었을겁니다. 스탈린주의의 폐해가 곧 사회주의사상의 귀결인 것 마냥,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그 어떤 대안도 없다며 한탄했을겁니다.

이에 대한 트로츠키의 답변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스탈린주의는 볼셰비키주의와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로 볼셰비키주의의 타락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볼셰비키주의 역시도 객관적 현실에 상관없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죠. 『10월혁명을 옹호하며』에서 밝혔던 ‘주관주의’에 대한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이 논문은 제목과는 달리,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기 보다는 볼셰비키주의를 설명하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스탈린을 비판하기보다는 “아무런 대안도 없다.”는 허무주의자들,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국가 뿐 아니라 10월혁명으로 수립된 노동자국가 역시도 ‘국가는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 라는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자본가국가이든, 노동자국가이든 억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억압적인 국가를 폐지시키고자 하는 목표에서 허무주의자들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그는 허무주의자들이 국가의 폐지를 희망하기만 할 뿐, 어떤 현실적 방안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을 긋습니다. 동시에, 현실에 무기력한 허무주의자들이 결국 혁명과 같이 계급의 대립이 치열해지는 시기에는 결국 자본주의의 편에 섰다며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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