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대신, 과거 전체를 거부하거나 과거와는 뭔가 다른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애쓴다.

혁명운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및 비판능력의 저하는 이들을 필연적으로 체제내화시키고, 보수화 경향으로 인도한다.

노동계급 지도부의 계속된 배신행위와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가 결합된 반동과 부패의 시기에는 사기꾼들과 돌팔이 약장수들이 도처에서 준동하여 암약하기 마련이다.

제국주의국가들에서 국가권력 장악의 주요한 장애물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취약성에 부수하는 조직된 노동운동 지도부의 점증하는 보수적 경향이다.

상대적으로 후진군에 고립된 혁명은 제국주의 세계시장의 점증하는 압력을 견뎌낼 수 없었다. 단지 군사적인 압력 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압력을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노동관료들은 새로운 계급이 아니며, 자신을 재생산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어느정도까지는 자립성을 갖춘 역사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승리를 거머쥐지 않는다면 사회와 인류문명 전체가 파멸할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의 불가피함.

<오늘날의 공산당선언> : 선언이 발표 90주년을 기념하면서, 선언에서 아직도 유효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정리해내고 있다. 트로츠키는 선언이 계속해서 수정 보완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오직 선언이 서술된 기초인 ‘과학적 유물론의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한다고 하였다.

우리시대에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거부한다면, 혁명투사는 물론이고 단순한 정치평론가도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조국은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게는 가장 귀찮은 역사적 방해요소지만, 여전히 해방투쟁을 벌여야만 하는 후진국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요소인 것이다.

이론이란 보편화된 현실 그 자체이다.

<10월 혁명의 교훈> : 10월 혁명 자체에 대한 기록이나 논문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0월 혁명의 교훈을 도출해야 하는 이유를 강변하고 있고,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독재에 대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간의 논쟁, 4월 테제를 둘러싼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 7월 봉기를 둘러싼 소비에트에 대한 태도, 10월 봉기에 대한 결정, 등 혁명의 각 시기에 지속되었던 당내의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1917년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급격한 전환기에 봉착하면 진보적 정당들도 당분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 결과, 과거에는 옳았으나 이제는 모든 의미를 상실한 구호들을 외치는 경우가 너무 자주 있었다. 과거의 구호들은 이 경우에 역사의 급격한 전환이 갑자기 닥친 만큼이나 빨리 그 의미들을 갑자기 상실했다. ” 따라서 이러한 전환이 너무 갑자기 일어날 경우, 그리고 지난 시기의 관성과 보수적 활동방식이 당 주요 기구들을 지배할 경우,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준비해왔던 결정적인 혁명의 순간에 당은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당은 위기에 의해 파괴되고, 혁명운동은 당을 제치고 멀리 앞으로 나아가 패배로 줄달음치게 된다.

전략은 전술을 폐기하지 않느다. 노동조합운동, 의회활동 등의 문제들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장악을 위한 결집된 투쟁에 종속되는 하위수단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전술은 전략에 종속된다.

효과적인 수영법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물에 뛰어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혁명이론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혁명이 전개될 당시 드러난 온갖 견해들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의 시험을 거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역사의 무대에 완성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 공산당이 그 내부에 사회민주주의 경향과 볼세비키 경향을 동시에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이 두 경향들은 정치권력 장악문제가 즉각 제기되는 혁명시기에 가장 명확하고 공개적이며 가식없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레닌의 일시적인 전술적 후퇴는 정치노선의 전환이 아니었다. (4월 테제와 5월의 크로슈타트 수병에 대한 레닌의 상이한 태도를 평가하면서)

4월당 협의회의 결정은 원칙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 내의 이견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이와 반대로 사태가 지행되면서 이견들은 좀더 구체적 형태를 띄었다. 그리고 혁명의 가장 결정적 순간인 7월에 가장 날카롭게 표현되었다.

부르주아혁명과 노동자혁명 사이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의회주의 학교가 권력장악의 유일한 또는 필수적인 훈련소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권력으로 향한 길은 반드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길로 통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앙상한 추상에 지나지 않으며 교조적 공식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 추상은 노동자 전위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기구라는 이름 하에 노동자전위를 사회민주주의 명찰을 단 부르주아 계급의 허깨비 야당으로 만들고 있다. 노동자의 정책은 초등학생들의 수학 공식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살아있는 운동에 의해 도출되어야 한다.

저돌적으로 투쟁하는 대신 대중이 시기를 기다리면서 단호하고 능력있는 전투적 지도력을 요구할 정도로 성숙했을 때 봉기는 일반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다.

레닌은 7월 시기의 사건들을 겪은 후, 소비에트를 절대시하는 경향에 대해 투쟁했다.

부르주아의회가 노동계급에게 어느 정도 정치훈련을 시켜준 바면, 부르주아계급 역시 의회를 통해 반혁명 전략을 훨씬 더 많이 고안했다. 이제 부르주아 계급은 의회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사적 소유의 주요한 지주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가장 혁명적인 정당도 조직보존주의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의 활동에 필요한 안정성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정도의 문제이다. 조직 보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수주의는 노선의 혁신과 행동의 대담함을 통해 일상의 틀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운신의 자유와 결합되어야 한다.

당의 거대한 도약기에 장애물로 등장하는 지도자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그 하나는 주로 혁명의 난관과 장애물만을 보는 지도자이다. (중략) 두 번째 유형의 지도자는 피상적이고 선동적 방식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는 난관과 장애물에 정면 출돌하고 나서야 이것들을 인정한다. (중략)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이 두 유형은 손을 맞잡고 함께 행진한다.

<러시아혁명에 관한 세가지 사상> : 1905년 혁명을 거치며 드러난 농민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의 레닌과 트로츠키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레닌과 트로츠키는 독재의 사회적 성격과 임무라는 문제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멘셰비키의 자유주의적 전망과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농민을 비사회주의적 계급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런 규정이 결코 절대적이며 고정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마르크스는 농민이 조급하게 판단하지만 동시 이성적으로 판단할 능력도 있다고 말했다. 정세가 바뀜에 따라 농민의 성격도 그만큼 바뀐다. 노동계급독재는 농민을 감화시키고 재교육시킬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10월혁명을 옹호하며> : <러시아혁명사>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0월 혁명의 간략한 개략과 역사적 의의, 혁명의 의의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배계급도 자발적이고 평화적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이성에 기초한 주장이 무력에 기초한 주장을 대체한 경우는 없다.

이미 수명이 다한 사회질서를 쓸어버리기 위해 진보적 계급은 자신의 시간이 왔음을 이해하고, 권력장악 임무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식적인 혁명투쟁의 장이 열린다.

세계자본주의의 사슬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보수정치와 달리 혁명정치는 은폐와 기만을 배격한다. 이것을 나는 그동안 믿어왔으며, 지금도 믿고 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노동자국가의 최고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비 오듯 쏟아지는 불행은 얼마나 처참한가! 혁명의 결과는 그로 인해 야기된 희생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결과를 낳지 않는 허망한 질문이며 철저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마치 역사과정이 대차대조표로 계산될 수 있는 모양이다!

자유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은 인생 대부분을 육체노동에 바치도록 더 이상 강요되지 않는다. 둘째, 인간은 자신의 등뒤에서 작동하는 맹목적이고 알 수 없는 시장법칙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다. 이간은 계획의 범위 내에서 자신의 경제를 자유롭게 운영한다. 사회구조를 X선으로 철저히 찌고, 그것의 모든 비밀을 파헤치고, 그것의 모든 기능을 인간의 이성과 집단적 의지에 복종시키는 것이 이제 경제운영의 목표가 된다.

통제되지 않는 시장법칙을 합리적인 계획으로 대체하고, 생산력을 인류의 필요에 조화롭고 충실하게 기여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 과업이다.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 스탈린주의의 죄악을 볼셰비키주의로부터 도출하려는 무정부주의자들을 비롯한 일부 세력에 대한 비판.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의 본원적 차이점 서술.

전위는 최소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진지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적 진지는 막대한 희생을 대가로 치른 과거의 투쟁경험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이 방침을 종파적인 것으로 여길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물결과 함께 새롭고 거대한 파도를 준비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소비에트국가의 타락을 순수 볼셰비키주의의 진화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러 구성요소 중에서 순수논리에 따라 분리해낸 오직 한 가지 요소만을 내세워 사회현실을 무시하려는 것이다.

레닌은 “달콤한 공산주의적 헛소리” 보다 적들의 냉소적인 말을 더 유익하게 여겼다.

불리한 역사적 조건에서는 볼셰비키당도 볼셰비키주의를 상실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한 지류인 사회민주주의는 권력을 장악한 뒤 자본주의의 공공연한 대리인이 되었다.

국가, 심지어 노동자국가조차도, 계급적 야만의 소산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최종 목표 즉, 국가의 폐지에 관해서 무정부주의자들과 완전히 일치한다.단순히 무시해버림으로써 국가를 폐지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에서만 마르크스주의자는 국가주의자이다.

무정부주의사상은 자유주의적 합리주의의 포로이다.

위험의 근원은 정책이나 전술이 아니라 노동계급독재의 물질적 취약성에 있었다.

단일정당의 지배는 스탈린 전체주의정권의 법률적 출발점 역할을 했다.

볼셰비키주의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인 제국주의시대를 분석했다. 즉,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시대의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분석했다. 즉,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시대의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분석했다. 총파업과 봉기의 상호관계 및 노동계급혁명시대의 당, 소비에트, 노동조합의 역할을 분석했다. 또한 소비에트국가론, 이행기경제론, 자본주의쇠퇴기의 파시즘과 보나파르티즘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마지막으로 볼셰비키당 자체와 소비에트국가의 타락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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