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전선 비판
레온 트로츠키 지음 / 풀무질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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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세된 상상력, 사회주의


우리가 기껏해야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91년에 ‘현실 사회주의’라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당시 젊은이들은 사회주의를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배우기 이전에, ‘사회주의의 패배’를 먼저 배워야 했죠.


당신들이 사회주의자이냐 소련주의자이냐, 한 연방국가의 해체가 어떻게 사람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느냐 반문해보기도 합니다만,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던지는 반문보다 중요한 것은, 80년대 한국의 사회주의란 곧 소비에트 연방을 뜻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일겁니다.


여하튼, 그들은 여러 제도권 정당으로 시민사회운동으로 흩어지면서, 동생들에게 ‘사회주의‘를 물려주지 못하고 ’사회주의의 패배‘라는 가치판단까지 함께 물려주었습니다.

우리의 사회주의적 상상력은 거세되었고 우리의 사고는 자본주의를 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해악들을 지켜보면서도, ‘어쩔 수 없다’ 가 합리적인 사고로 자리잡았습니다.


소련주의자가 중국주의자가 북한주의자가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패배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로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거세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을 때, 한국에서야 난리가 났겠지만 유럽에서는 그만 못했을겁니다. 스탈린, 혹은 소비에트 연방이 정치적으로 사망한 것은, 유럽에선 오래 전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리법석을 떨지 않았습니다.


# 트로츠키를 읽읍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은 1924년에 병환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기 권력을 스탈린이 승계하게 되죠. 많은 사람들이 1917~24년의 러시아와, 1924년 이후의 러시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스탈린이나 레닌이나 패배한 사회주의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레닌 사후에도, 레닌주의를 계승한다며 스탈린과 대립했던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볼세비키당(소련 공산당)의 일부였는데, ‘좌익반대파‘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트로츠키가 바로 ’좌익반대파‘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1917년 혁명에서 활약했고, 소비에트 공화국의 외무인민위원(외교부 장관)을 맡았으며, 1918년부터의 내전에서는 적군(赤軍, 소비에트 공화국군)에서 활약했습니다.


좌익반대파는 1929년에 결성되었고 당내 비판세력으로 자리하다가, 스탈린에 의해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1933년 스탈린이 파시스트 히틀러의 집권을 수수방관하자 비판에서 더 나아가 대안세력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1936년 이후의 인민재판과 숙청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트로츠키도 1939년에 소련비밀경찰에 의해 망명국 멕시코에서 사망하게되죠.


좌익반대파의 비판은 응당 스탈린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어떤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었습니다.

우리가 좌익반대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과, 트로츠키 저작을 읽어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 사회주의적인 분석을 빼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류는 사회주의에 대한 짧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이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존에 우리의 시선이 스탈린의 러시아에 머물러 있었다면, 스탈린 집권 이전의 러시아와 집권기의 좌익반대파와의 논쟁, 스탈린 러시아 이후의 좌익반대파의 행보에 대해서 주목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 인민전선


<인민전선 비판>은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에서 쫓겨난 후 망명지에서 집필한 저작입니다.

트로츠키가 이런 제목의 책을 집필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가 집필한 몇편의 원고를 묶어 출판한 것입니다. 미국의 패쓰파인더 출판사(PathFinder, 길을 찾는 사람들?)에서 그의 영문판 저작을 많이 출판하고 있죠.


인민전선이란, 노동자 정치세력과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공동전선을 뜻합니다.

당시, 스탈린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하나로 뭉쳐서 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죠. 쉽게 얘기해서 일단 싸움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뭉쳐서 파시즘 먼저 없애자는 것입니다.


충분히 허무맹랑할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김명수씨는 “우리나라 좌익의 역사 자체가 인민전선노선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선거를 들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02년 대선에서도 이런 얘기들이 있었죠. 한나라당 이회창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니, 어차피 당선되지 않을 권영길 대신 노무현에게 표를 몰아주자 이런 것이죠. ‘노무현도 싫지만 이회창은 더 싫으니, 反이회창의 공동전선을 만들자‘ 뭐 이런거요.


당시 프랑스에서도 1934년에 우익 파시스트들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당시 소련과 연계가 있었던 프랑스 공산당이 급진당과 사회당에 인민전선을 제안하고 구성하게 됩니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으로 치자면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에게 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했다고나 할까요.

이때 트로츠키는 우익 파시스트들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글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사회주의 세력들에게 인민전선의 파멸성에 대해서 조언합니다.


더구나, 당시 스탈린의 진정한 의도는 파시즘에 맞서서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1933년에 이미 스탈린과 독일공산당은 히틀러의 집권을 수수방관했습니다. 스탈린은 독일이든, 프랑스 영국이든 좀 더 세력이 강한 국가와 동맹을 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스탈린은 영국 프랑스와 불가침 조약을 맺기 위해서, 프랑스 급진당과의 인민전선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39년 8월 20일, 영국 프랑스와의 교섭이 결렬되자, 곧바로 히틀러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독소불가침 조약‘입니다.


물론, 1929년부터 스탈린에 대해서 비판해왔던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이미 러시아 공산당이 1917년 혁명 당시의 공산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1933년 히틀러의 집권을 수수방관했을 때부터 스탈린이 파시즘에 맞서 싸울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경고해왔었죠.


# 부메랑


인민전선의 해악은 단순히 스탈린의 비밀외교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노동자의 정당이 부르주아 정당과 공동의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게 되죠. 이를테면, 민주노총의 관료들이 노사정 합의기구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가로막는 것 처럼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 정당 스스로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을 억누르며 자신의 힘을 약화시키는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힘을 잃어버린 노동자 정당마저도 부르주아 정당에게 버림을 받게되죠.


프랑스의 경우 1936년에 인민전선정부가 이루어졌고, 레옹 블룸이 최초로 사회당 출신 수상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사상 유래없는 총파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전체 800만 중 200만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러나, 공산당과 사회당이 이 파업물결을 가로막게 됩니다. 탄압이 계속되자 대중들은 사회당 블룸 수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됩니다. 공산당과 사회당은 점점 지지를 잃어가며 정부 내에서 급진당에게 자리를 내어주다가 급기야 쫓겨나게되죠.


저는 노사정위원회나 대국민연석회의 제안과 같은 협력제안을 보며, 인민전선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물리적이고 극단적인 투쟁 대신 대화를 하고 타협을 해야한다는 것이 노사정위원회의 기조인데, 이 협상테이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 프랑스의 공산당 사회당이 그러했던 것 처럼 대중들을 통제하고 억누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협상테이블의 특성이니까요.

대화를 전면 부정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을 억누르는 대가로 들어가는 노사정위원회라면, 그것은 언젠가 자신의 목을 노리는 칼이 되어 돌아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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