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민전선 비판>과 <랜드 앤 프리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인민전선 비판>을 읽고 있습니다.
'인민전선'이란, 사회주의정당이 부르주아정당과 공동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과거 스탈린이 지배하던 러시아공산당과 제3인터내셔널(각국 공산당들의 연합체)가 각국으로 내린 지침이기도 했죠.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과 합작한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레온 트로츠키라는 혁명가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같이 주도해놓고도 나중에 스탈린에 의해 추방당하고 살해까지 당한 혁명가인데요,
그는 스탈린의 제3인터내셔널이 혁명성을 상실했다며,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 제4인터내셔널을 창립하자고 주장하게됩니다.

여튼, '인민전선'은 중국 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등 당시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되어 있던 각국의 사회주의정당이 채택한 전술인데요,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의 그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귀에 솔깃하지 않나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절대 화해는 없다' 던 러시아공산당이, 각국의 사회주의정당에 부르주아정당과 동맹을 맺으라 지시를 내리다니.. 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스탈린 이사람도 나름대로 숨을구멍은 만들어놓았습니다.
'파시즘'이 그것인데요, 1930년대이면 1919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이 재무장에 들어가면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할 그 즈음일겁니다. 물론, 히틀러 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선배이긴 하지만.

여튼, 파시즘이 바로 스탈린의 숨을구멍이 됩니다.
'부르주아정당이든 사회주의정당이든, 일단 파시즘부터 몰아내고 보자' 라고 주장한거지요.

'인민전선'을 선택한 여러 나라 공산당 중 하나가 스페인의 POUM(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입니다.
POUM도 스페인의 여러 정당(8개인가 9개)과 연합해 공동정부를 구성하게 되고,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코 라는 파시스트군대에 맞서 전쟁을 시작하게되죠.
<랜드 앤 프리덤>의 주인공 데이빗이 그렇습니다. 그는 영국사람이었지만, 스페인이 파시스트에게 넘어가면 영국도 유럽도 파시스트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주장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여자친구만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떠납니다.

'파시즘부터 몰아내자'
여러분의 귀에도 솔깃하지 않나요? 이것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 1930년대 스페인

1930년대 스페인이 권력의 위기상태였습니다.
위기에 휩싸인 기존 정부를 둘러싸고, 파시스트들 뿐만 아니라, POUM을 비롯한 노동자 세력도 광범위하게 존재했죠. 이들은 붕괴한 공화정 위에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정당들이 공동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전처럼 서로의 이해를 곧이곧대로 주장하기는 힘들죠. 공동정부 구성이란 곧, POUM이 그들을 믿고 따르는 노동자 세력들을 통제하고 잠재워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혁명의 열기는 사그러들고, 공동정부는 파시스트에 대항한 전쟁을 수행합니다.
POUM에 소속되어있던 당원들은 정부군과는 달리 민병대를 구성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민병대란, 국가가 소집한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군을 뜻하는데, 이들은 장교도 투표를 해서 뽑고, 중요한 전술과 전략을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는 민주성을 보여줍니다.
(여담이지만, 저도 군생활 할 때 차기 분대장을 투표로 뽑았더랬죠. ^^)

민병대는 정규군처럼 훈련을 받지도 못했고, 무기도 부실하지만, 파시스트에 대한 분노로 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세력을 넓혀갑니다.

# 공동정부 구성의 함정

문제는 공동정부 구성이, POUM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제함으로써, 기존의 정부를 위기에서 구출해주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의 적이었던 파시즘이 어느정도 물러나자, 다시금 POUM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선심으로 구해주었더니,
뭍에 올라오자마자 되려 빠뜨리는 격입니다.

결국, POUM은 불법화되고, POUM의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처형되죠.
더욱이 POUM의 와해와 함께 노동자 세력이 와해되자, 파시스트 프랑코가 쿠데타에 성공해 기존의 정부를 전복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 30여년간 스페인에서는 군사정부가 지속되죠.

주인공인 데이빗은 영화의 초반부에 POUM의 민병대에서 전쟁을 치르다가,
팔이 다치는 바람에 마르세이유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눈치챕니다. POUM이 되려 탄압을 받고 있었던거죠.

데이빗이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즈음에는 이미 POUM이 불법화 된 이후입니다.
그리고, 정부군이 나타나 POUM의 민병대 마저도 해체시키고, 데이빗의 새 여자친구 블랑카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배신감에 오열하는 POUM의 민병대원들을 보여주며 끝을 향합니다.

# 스탈린

사실, 스탈린이라는 자는 1917년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혁명으로 건설한 사회주의 국가를 접수한 이후(1924년? 25년?),
혁명 당시의 볼셰비키당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됩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전에 파시스트 히틀러와 이면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바 있고, 공개적으로는 프랑스, 영국, 등과 동맹을 맺었죠. 어떻게든 자신이 장악한 국가를 위협받고 싶지 않았던겝니다.

히틀러와 이면 조약을 맺은 것 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아무튼 그는 프랑스, 영국, 등을 속이기 위해서 '인민전선' 이라는 정책을 각국 공산당에 내려보내는겁니다.

쉽게 얘기해서, 자기가 살자고 남을 이용한거죠.
그는 이미 혁명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동지를, 그것도 부르주아들에게 판 셈이니까요.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자신의 통치를 위해서, 그는 동지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의 부르주아들도 속인 셈입니다.

# 백미

그래서일까요?
<랜드 앤 프리덤>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켄 로치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영국, 스페인, 독일 3개국이 함께 투자해서 만들었더군요.
모두 스탈린에게 속은 나라들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한가지 더.
보통 소자본으로 만들어지는 노동영화가 TV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길래 의아했는데,
스페인 내전을 다룬다한들 POUM의 노동자들, 사회주의자들 보다는, 스탈린의 배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요 충분히 그럴법 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훌륭한 반공영화인 셈이죠.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그러했듯이 말이죠.

<랜드 앤 프리덤> 케네스 로치 감독, 이안 하트 주연, 1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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