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마지막편을 시청했네요.
전두환과 노태우가 김대중의 은총을 입어 특별사면 되는 것으로 종영이 되었습니다.

처음 방영할 때는 군 복무 중이었는데,
당직근무를 설 때면, 당직사관의 눈치를 슬슬 보아가며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역사란, 역사가가 사료를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회의 제목이었던 '적과 동지' 는, 어쩌면 <5공화국>을 연출한 제작진의 시각을 그대로 투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뭐 쉽게 얘기하면 그렇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확실한 적으로, 김영삼은 반쯤 적으로, 김대중은 약간 적으로.
동지는 단연 시청자들이겠죠.

함께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518 대학살을 자행하며 정권을 장악했던 전두환과 노태우.
전두환의 지명과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그런 노태우와 3당 합당을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 준 김대중.

그런 그들이 매번 대통령에 당선되어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볼품 없는 연극에 불과할겁니다.

참으로 볼품 없는 연극.
그러나, 이 박한 평가는 이 드라마에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마치, '액자소설' 과 같은거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라고 했듯이,
입맛에 맞는 과거만을 골라 좋아하는 양념을 쳐놓은 과거란, 어쩌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누더기가 되었다던 과거사청산 소동이,
전두환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니, 5공 인사들의 항의서한이니 온갖 헤프닝을 만들어온 <제5공화국>이,
꼭 그렇습니다.

이제 이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시민들이,
청와대에 국정원에 정당을 비롯해 온갖 주요 기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극장에서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을 보고나온 사람들은, 얼마간 그 감동에 휩싸여 지낼 것입니다.

보수 대 민주라는 낡은 구도 말이죠.
하지만, 차마 연극을 볼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 아직도 엑스트라에 불과한 사람들은 더 쉬이 진실을 눈치채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권력자도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지 못할 것입니다.
밝히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닐테니까요.

그래서,
진실은 아래로 흐른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노무현 대통령,
과거 민주화운동을, 노동운동을 20년 30년 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무척이나 들먹입니다.

"내가 노동운동 20년 했는데, 너희들처럼 하지는 않았다."
"니들이 노동운동가냐, 폭력집단이지."

2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있는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에게,
방용석 이사장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거를 기념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이 현실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던지는 과거사 교육이란,
이렇듯 못마땅한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잘 봤습니다.

 


참, "한국 드라마 참 대단해졌다" "한국 역사 많이 발전했다" 호들갑 떠는 분들께,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5공이래봤자 고작 20년 전일 뿐입니다. 정확히 20년 후에 또 이런 드라마가 방영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이 드라마를 시청할 당신의 딸, 아들들이 똑같은 평을 할 것입니다. 20년 전일 오늘날을 비판하면서 말이죠.

역사는 진보합니다. 이 시절을 앞당기려면,
양념된 과거를 기념하기 보다는, 냉혹한 현실에 주목하는 당신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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