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프레시안 2003-03-14)  
 
  인권운동가 서준식씨가 인권운동을 주제로 15년간 진보주의자로서의 삶을 기록한 '서준식의 생각' 을 펴냈다. 저자가 겪은 17년의 감옥살이를 기록한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이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 했던 한 청년의 기록이라면 이번에 펴낸 '서준식의 생각'은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 서준식이 여러 지면에 인권운동을 주제로 쓴 글들을 모은 책으로 세상에 나온 이후 진보주의자로서 신념을 몸으로 실천해 온 지난 15년간의 살아있는 기록이다.
 
  양심과 진실의 인간
 
  어린 시절 일본 땅에서 "나는 조센징"임을 스스로 고백했다는 서씨는 양심과 진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런 순수함은 "누구도 인간의 내심을 간섭하고 재단할 수 없다"는 신념을 단련시켜 군사정권 시절에 집요한 사상전향에의 강요와 잔인한 고문을 견뎌내게 했다. '서준식의 생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비굴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떳떳하게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그의 용기다.
 
  "이국에서 인종차별과 싸우며 스스로 '조센징'임을 고백했던 16살 소년의 행동이 그랬듯이,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는 이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나의 행동 또한 병든 사회의 광기에 맛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믿고 싶다. 누가 이렇게 묻는다. “너 사회주의자냐?” 나는 대답한다. 자연스럽게, 담담하게 그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그래, 나 사회주의자.” 이런 사회가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서준식의 생각’, 99쪽)
 
  몸으로 쓴 글
 
  감옥살이는 서씨의 마음속에 ‘글’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희망만큼이나 인간의 실제 삶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껍데기 글’에 대한 경멸을 심어주어 그로 하여금 글쓰기를 망설이게 한 듯 하다. 이 책에 담긴 서씨의 글들은 글을 쓰기 위해 쓴 글이 아니고 인권운동을 위한 방편으로 쓴 활동의 증거물들이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감각으로 쓴 글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고 몸으로 쓴 글인 것이다. 머리로만 글을 써대며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에 대한 저자의 경멸은 차갑고 냉소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이 사회는 아직 글로써 사회가 변할 만큼 신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땅 위에 그어놓은 금 안에서만 놀아라!’ 이것이 이 사회의 룰이며 그 금을 넘어가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잘나가는’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迷妄)에 지나지 않는다."('서준식의 생각', 34~35쪽)
 
  ‘딸들에게’부분 압권
 
  1997년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레드헌트’를 검찰이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고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저자는 국가보안법위반을 비롯한 다섯 가지 죄명으로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된다. 당시 추운 겨울감방에서 사랑하는 두 딸에게 보낸 여덟 통의 편지는 작은 이야기들을 이루며 따뜻한 감동을 준다.
 
  "아빠가 힘센 아저씨들 여러 명에게 잡혀갔던 날, 수갑 차고 잡혀가는 자동차 안에서 뭘 생각했는지 아니? 너희들 생각이었다. ‘아차! 보슬이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어 주어야 되는데……. 참, 혜수 자전거도 비를 맞지 않도록 자전거 주차장 안쪽으로 들여놓았어야 되는데…… 이렇게 잡혀가면 안 되는데…….’ ‘에이 참, 이렇게 잡혀 갈 줄 알았으면 보슬이랑 아침공부를 더 해 둘 걸. 혜수한테도 공부를 가르쳐 줄 걸. 에이 참, 동전 가지고 하는 마술도 가르쳐 주고 올 걸. 에이 참! 에이 참!’ 그리고 지금 차가운 마루방에서 혼자 앉아서 뭘 생각하는지 아니? ‘지금 여기서 나갈 수 있으면 맨 먼저 뭘 하지? 내 친구랑 술 마시러 갈까? 아니야! 맨 먼저 보슬이 자전거에 바람 넣어주고 혜수 자전거 들여놓고, 그런 다음에 내 친구를 만나야지!’"(‘서준식의 생각’, 323쪽)
 
  새로운 책을 펴낸 서준식씨를 13일 저녁 혜화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새 책의 내용과 그의 근황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서씨와의 인터뷰 전문.
 
  "서준식의 생각은 90년대 한국인권의 파노라마"
 
  프레시안 : 이번에 책을 낸 동기는?
  서준식 : 오래 전부터 책을 내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운동의 필요로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예전에 글을 쓰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교도소에 있을 때는 ‘나가서 소설을 써 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서준식의 생각’은 어떤 책인가?
  서준식 : 90년대 한 인권운동가의 희망과 좌절을 담은 책이다. 90년대 한국인권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프레시안 : 그럼 ‘인간 서준식’이 지금 생각하는 바는 무엇인가?
  서준식 : 내가 처한 자리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생각을 집중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이젠 인권운동의 현장에선 약간 물러난 것으로 안다.
  서준식 : 인권운동가 중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데 내 덕이 부족했다. 내가 뭔가 자리를 탐낸다는 오해를 받기도 할 때는 정말 참담했다. 책에 그 이야기도 나온다. 또 인권운동사랑방의 후배들도 역량이 성장했다. 나는 이제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주고 이론적인 부분을 공부시키고 연구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권공부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그동안 장기수, 양심수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서준식 : 1988년에 밖에 나오니 세상이 장기수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처음 나와서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소설을 쓸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알리지 않으면 ‘배신’이라고 느껴 활동을 하다가 그것이 인권운동이 됐다. 민가협에서 2년간 활동을 하고 그 후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수인들의 인권이나 다양한 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레시안 : 책에 조카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된 고문장면은 그 설명만으로도 읽기가 끔찍할 정도다. 투옥 중 그런 일을 진짜 당했나?
  서준식 : 비녀 꽂기, 개밥, 곤봉 등 거의 대부분 직접 당했다. 이젠 잊으려고 노력한다.
 
  "제도적인 개혁이 따라야 한다"
 
  프레시안 : 국내 인권문제의 현안이나 이슈에 대한 견해는.
  서준식 : 인권이 어떤 이슈로 주목받기 보다는 빨리 전체적으로 신장이 될 수 있는 제도적인 개혁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의문사, 전쟁 중의 여러 학살문제, 삼청교육대 등이 법적인 조사와 보상이 필요하다. 검찰도 지금 개혁, 개혁 하지만 구체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현안으로 가면 이전에는 자유권 문제가 중심이 이었다면 물론 그 문제도 아직 해결이 다 안됐지만 사회권 문제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실제로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문제와 여러 소수자에 대한 권리문제라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책에서 어린이의 인권문제와 자녀교육을 연결한 것도 인상적이다.
  서준식 : 내 딸이 고등학생이 되서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라가 다 망했다’며 법석을 떨지는 말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실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은 ‘권리’만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것은 1989년에 나온 유엔의 ‘어린이권리조약’이다.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학부모들이 정독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이것은 헌장이나 선언과 다른 ‘조약’이다. 우리나라도 국회에서 도장 찍고 약속한 것이다. 지금 한국은 ‘어린이권리조약’을 사보타지 중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교육에 ‘인권’을 추가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준식 : 개인적으로 수직적인 질서를 가르치는 ‘도덕’보다는 수평적이 ‘인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한다. 물론 여기에는 선생님의 권위주의와 입시지옥을 없애는 일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프레시안 : 책에는 ‘유서대필사건’의 진상에 대한 글도 많다. 현재 관련자들의 근황은 어떤가?
  서준식 : 강기훈씨 본지는 오래 됐다. 컴퓨터 회사를 다니며 조용히 지낸다고 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강기훈씨가 와일드한 사람이 아니고 조용한 사림이라 모든 것을 혼자 속을 삭이는 것 같다. 이런 문제는 본인이 막 화를 내고 다녀야 진상이 들어나는데……. 이 사건과 관련된 마지막 코미디는 그 사건을 지휘한 강신욱 검사가 대법관이 돼 있다는 점과 얼마 전 법무부장관으로 하마평까지 오른 것이다. 세상이 참…. 그렇다.
 
  프레사안 : 프랑스의 ‘드뢰피스’ 사건하고 닮은 것 같다.
  서준식 : 이상하게 많이 닮았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른다.(웃음) 한 마디로 표현이 힘든데…. 그 당시 사건배경은 이렇다. 강경대군이 경찰 쇠파이프에 살해를 당하고 모든 시위를 봉쇄하고 있는 상태에서 분신이 이어지자 청와대에서 대책회의 중에 ‘배후설’이 제기되고 다음 날 김기설이 자살을 하자 바로 거기에 억지로 연결을 시켰다. 내가 김기설을 몰랐으면 뛰어들지 않았을 텐데 같이 활동한 사람이라 그 문제에 끼어들어 싸우는 동안 나는 신문에서 완전히 ‘인권운동가’로 소개가 됐다.
 
  "그러나 누군가가 복수 할 것"
 
  프레시안 : 책을 보면 강신욱씨나 고문기술자들에 대한 ‘정당한 복수’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서준식 : 자신이 교도소에 또 갈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복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인권운동가로 이런 말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악행에 대한 보복’이 너무 없는 사회인 것 같다. 다른 나라는 집 앞에 폭탄을 던지는 등 개인적인 보복도 있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모두들 너무나 무기력하다. 내가 기개가 없음을 스스로 탓하곤 한다.
 
  강신욱 검사 같은 인간들을 내가 나서서 복수할 기개는 물론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복수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에도 그래서 ‘안두희가 어떻게 죽었나를 기억하자’고 썼다.
 
  프레시안 :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레드헌트’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된 때의 심경은?
  서준식 : 그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총 다섯 가지 죄목이었는데 홍대에 상영허락을 안 받았다고 야간주거침입(도둑), 검열을 안 받았다고 음반·비디오법(주로 파렴치한 포르노업자에게 적용하는 법), 보호관찰법(괘씸죄!), 국가보안법 등이고 또 하나는 공연법인가를 어겼다고 나를 잡아갔다. 그런데 막상 잡혀서 장안동 대공분실에 갔더니 내가 대학생들에게 ‘한총련을 탈퇴하지 말라’고 쓴 글을 문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말’지에도 실린 그 글이 문제라고 하면 ‘필화’가 돼서 난감하니까 ‘불법영화제’로 나를 걸었다. 갔더니 그 사람들 영화에는 관심도 없었다.(웃음) 다른 논객들이 당시에 ‘나라에서 한총련을 반국가 단체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문제를 삼지 않다가 학생들에게 ‘탈퇴를 하지 말라’고 한 내 말에는 경악을 한 것 같았다. 조사받는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프레시안 : 17년간이나 자신들이 잡고 괴롭힌 사람은 심하게 하진 않았을 것 같다.
  서준식 : 그들이 심하게 해 봐야 안 되니까 이젠 아예 고문을 안 한다. 맞을 때 마다 면역이 되면 맷집만 좋아져서 때리면 맞는 놈 성질만 나빠진다.(웃음) 감옥 안에서 최하의 위치까지 겪은 인물에게는 그들도 방법이 없다. 고문도 안 통하니까 그쪽도 다루기가 무척 곤란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월드컵 때 박노자 교수와 함께 ‘민족의 역적’취급도 받았다.
  서준식 : ‘붉은악마’에 관한 글은 개인적으로 하나의 ‘커밍아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소식지에 글이 오르고 대부분이 ‘어떤 놈이 이런 글을 썼냐!’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내가 쓴 글이다. 당시에 그런 것을 말하기 너무 힘든 분위기였다. 서글펐다. 우리가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도 느꼈다.
 
  개인적으로 재일동포였기에 나를 키운 것이 민족주의 사상이었고 자연스럽게 진보사상을 그 위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일종의 통합사상이라 거기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들의 소외와 박해를 월드컵 때 생각하게 됐다.
  당시에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겼다.
 
  민족주의 역사를 보면 국민을 한민족으로 통합하는 대가로 그 안에 소수자를 박해하고 제외시켰다. 민족주의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 강대국(미국)의 횡포에 맞서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반인권적인 함정’에서는 깨어 있자는 것이다. 그때는 분명 아무도 깨어있지 않았다.
 
  나도 ‘만능의 스포츠맨’으로 불릴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지만 프로스포츠의 ‘마취’같은 역기능 대한 우려도 그 글을 쓴 계기 중 하나였다.
 
  프레시안 : 지난 번 ‘피의자 사망’사건의 딜레마는 피해자가 조직폭력배라는 점도 있었다. 우리가 흉악범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서준식 :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로 못된 인간과 정상적인 인간의 한계가 사실 모호하다. 예를 들면 국정원 앞에서 ‘간첩이라도 고문은 하지 말라’는 데모는 아직도 않는다. 사람들도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문이 그러다가 어느 날 나를 찾아온다.
 
  두 번째로 더 근본적으로 ‘그놈들은 나쁜 놈’이라는 관점의 문제다. 우리사회의 어리석음과 잘못이 낳은 것이 범죄와 죄인들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만든 배설물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들의 나쁜 짓은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넘치는 상업문명과 여성의 상품화를 만든 것은 바로 우리다. 우리의 책임이다.
 
  ‘활동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 한다
 
  프레시안 : 책 중에 활동가의 생활에 대한 글도 눈길을 끈다.
  서준식 : 좀 길게 이야기를 하겠다. 처음 인권운동사랑방을 시작한 후에 활동비를 끌어다가 지급하는 것이 내가 하는 역할이었는데 뭔가 문제가 있었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이 돈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 급여지금이 현재 어느 단체나 예산의 3분의2 정도일 것이다. 90년대부터 월급을 받고 활동을 하는 분위기가 됐는데 우리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월급 받고 하지는 않았다.
 
  90년대에 운동의 내부가 한쪽은 ‘조직규모를 키우고 활동가 월급도 줄 수 있도록 여러 금전적 도움을 받자’는 것 이었고 다른 쪽은 나 같은 경우인데 ‘조직은 활동비정도만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요즘 작은 단체들 중에는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회지를 보내고 집세내고 자신들의 월급을 받고 하는 것이 ‘주 업무’인 단체들도 있다.
 
  참여연대는 비교적 건전하게 재정이 운영된다고 본다. 환경연대는 대기업 돈도 받는 데 그런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참여연대는 시민들이나 중소기업의 돈은 받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일반시민들에게 후원금 받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꼭 싸워야 할 때 돈을 낸 회원들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
 
  그럼 이제 운동가는 뭐로 먹고 사느냐가 문제다. 우리는 자기가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 반박에 일을 못한다. 그럼 두 사람이 나눠서 하면 된다. 좋은 의미에서 자원봉사자와 활동가 사이의 벽이 없어진다고 본다.
 
  또한 운동하는 사람들은 ‘활동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 한다.
 
  이런 결론을 내기까지 2년이 걸렸다. 달라진 것은 내부의 민주화다. 전에 내가 후원금을 끌어 올 때는 활동가들이 ‘물주’인 내 눈치를 봤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먹고 살며 좋아서 하는 일로 긍지가 생기자 조직 내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시작됐다.
 
  외국의 경우도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는데 국내에는 소개가 잘 되진 않고 있다. 우리의 시도가 성공을 하면 새로운 활동의 방법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본다.
 
  "새로운 사회주의, 문제가 없는 사회주의를 만들자"
 
  프레시안 : 운동하는 사람들은 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나오고 있다.
  서준식 : 물론 포용력이 더 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위험한 생각일수 있다. 정체성과 포용력은 결국 반대방향인데 정체성도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포용력을 키우다가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다. 정체성을 확보한 후에 조금씩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정체성 확립 후 넓은 포용력을 갖는 것이다.
 
  프레시안 :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한 화두를 준다면?
  서준식 : 나는 사회주의자다. 자본주의 구조가 악의 구조라고 생각한다. 이 구조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을 한다. 자유와 평등의 참뜻이 사회주의적 발상에서 올바르게 구현 된다고 본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언제 어떤 형태로 사회주의가 구현될지 모르지만 ‘사회주의는 나쁘다’고만 말하지 말고 새로운 사회주의, 문제가 없는 사회주의를 만들자.
 
  프레시안 :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서준식 :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3년간 노력했었다. 검찰영향하에 두느냐 마느냐 즉,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두는 것에 중심을 뒀고 결국 해냈다. 그러나 다양한 관료들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럽다. 인권위의 경우 다른 행정기관의 공격을 막아주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시민단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도와줘야 하는 데. 인권위는 또 시민단체를 무시하고 의심하곤 한다. 나는 힘들다. 내 후배들은 그렇게 하길 빈다.
 
  '인권위원장의 착각'
 
  프레시안 : 인권위와 관계악화는 ‘인권위원장자리를 노린다’는 소문 때문인가?
  서준식 : 인권위를 만들 때 여러 단체가 참가 했으나 지향이나 정서의 차이로 힘이 들었다. 도식적인 구분은 힘들지만 이렇게 둘로 의견이 갈라졌다.
 
  민주당이 낸 독립적인 국가기구는 골격은 좋았다. 문제는 그 안이 구체적인 세부안은 (강제)조사권이 없는 안이었다. 나는 받아들이자는 쪽이었고 다른 쪽은 받지 말자는 쪽 이었다. 그런데 위원장이 도와달라며 은밀히 부른 인물들이 나중에 보니 앞에서는 ‘받지 말자’는 주장을 한 쪽 이었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자신들끼리 준비·기획을 했다. 그 와중에 나와 몇몇 인물들이 정보에서도 제외됐다. 받지 말자 던 쪽의 몇몇은 ‘단순한 준비단계에 잠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공무원이 됐다.
 
  자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나는 ‘간첩죄 17년’이라 그런 자리에 갈 수가 없다. 난 확고하다. 활동가들은 밖에서 견제·비판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도 나를 ‘너 자리욕심이 나서 그렇지’하고 지금도 의심을 한다.
 
  인권위원장이 ‘왜 자리 안 주느냐’고 우리가 요구하고 화를 냈다고 말 하는데 한 마디로 내 글 제목대로 ‘인권위원장의 착각’이다.
 
  프레시안 : 생활 중에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싶다’거나 수감 중에 ‘전향을 할 걸’하는 식의 인간적인 후회는 없었는지?
  서준식 : 내 경우엔 어려서부터 조국에 살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나 같은 사건이 많았는데 고생하고 돌아가 버린 사람도 많다. 나는 ‘나가도 안 돌아 간다’고 굳게 결심했다. 일본생활의 고통은 ‘당신 고향이 어디에요’라는 질문에 대한 망설임의 축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에 사는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고통의 큰 축적’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아 고통이 적은 것 같으나 자신의 국적을 거리낌 없이 말하기 힘들고 일어로 이야기하면서 이상한 미안함과 답답함이 죽을 때까지 따른다.
 
  여기에 살며 17년 감옥에 가서 살고 또 두 번 감옥을 갔다 왔고 신체적으로 더 고통스럽지만 나는 주저 없이 ‘작은 고통이 쌓이는 큰 덩어리’가 더 괴롭다고 본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나에겐 이쪽이 편한 것이다.
 
  프레시안 : 왜 그 서슬이 퍼런 시절에 ‘북한’을 갔다 왔느냐는 질문이 아직도 있다.
  서준식 : 재일동포 정서가 그렇다. 민단과 조총련이 결혼도 하고 친구로 지내고 한다. 상층부만 서로 이야기 않고 지낸다. 친구네 집에 가면 김일성 초상화가 있고 그런 식이다. 일본에 고등학교 다니던 단짝친구 5명중 3명이 ‘조선대학’을 갔다. 참 착하고 공부도 잘한 친구도 있었다.
 
  재일동포는 북한에 대한 이상한 혐오감이나 적개심이 없었다. 물론 여기서 몇 년을 살아서 법에 저촉이 되는 것은 알았으나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사건을 정권이 51명의 ‘간첩단’으로 불려서 71년도 대선 6일전에 터트렸다. 그 점은 지금도 묵은 상처다. 젊은 나이에 철없이 쓸 때 없는 짓을 해서 3선반대등 민주화 운동에 장애가 된 점이 있다. 하지만 도덕, 윤리적으로는 지금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재일동포 문제에 대해 따로 언급할 것은 없는지?
  서준식 : 난 그 문제에 대해 말을 할 위치가 아니다. 떠나온 지가 너무나 오래됐기에 대답하기 힘들다. 이야기를 하면 동포들이 웃을 것이다.
 
  "너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나도 너와 같은 인간이다"
 
  프레시아 : 일상에서 우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바로미터’ 같은 것을 제시해 준다면?
  서준식 : 미흡한 비유이긴 하지만 ‘너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나도 너와 같은 인간이다’라고 할 수 있다. 내 인권이 소중 하듯이 남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늘 인식해야 한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어떤 말과 행동을 당하는 것이 싫고 부당하다고 느끼면 나도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인권침해 여부도 ‘내가 그 일을 당 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회사가 신입사원의 ‘지나온 인생’을 적어 내라고 하듯이 회사 측에 ‘회사의 지나온 길’을 사원에게 제출하라고 한다면 사장 기분이 어떻겠는가.
 
  프레시안 : 한달이 안 된 노무현정부에 당부할 말이나 조언할 것이 있다면?
  서준식 : 그냥 잘 하기를 바라며 지켜보겠다.
 
  "변절하지 말자"
 
  프레시안 : 17년의 끔찍한 수감생활과 고문을 당하고도 정신이 멀쩡한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서준식 : 무너지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긴 침묵) 변절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이 전향한 분들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고통을 참고 전향을 거부한 사람들은 평생 표정이 밝다. 꼭 감옥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며 핑계대고 변절하지 말자.

손봉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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