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관점
지난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GP에서, 근무병 한명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동료 부대원 8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은 사건 직후 합동조사단을 현장에 파견하고 수사를 진행하였으나, 끊임없이 책임소재로부터 벗어나고 사건의 원인을 은폐하려는 무책임으로 일관하여, 심지어 자본가 정치인, 언론으로부터도 지탄을 받았다.
또한, 자본가 정당인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대적관이 해이해졌다”며 날뛰었고, 심지어 국방장관 해임, 내각총사퇴와 같은 자본가 정치판의 정치공세로 끌어갔다. 열린우리당 역시, 이번 사건을 군사문화의 탓으로 몰며, ‘병역문화 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 라는 부질없는 캠페인을 주장했으며, 민주노동당도 캠페인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인이 참여하는 ’군 인권감시기구‘ 의 설립을 주장했을 뿐이다.
이들 중 가장 가관인 것은, 단연 군 합동조사단이었다. 이들은 김일병의 성격결함이나 정신병 경력 등을 조사하는데 집중하였는데, 이것은 이들이 자본가 군대 내에서의 범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범죄를 바라보는 관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의심하지 않으며, 자본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히 복무하는 자본가 계급은,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문제의 원인은 결코 분석해 낼 수 없고, 분석해내지 않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자본주의로부터 떨어뜨리려 노력할 뿐이며, 그 결과는 결국, 근본적인 원인의 주위만 맴돌 뿐이다. 캠페인 수준의 생색내기는 오히려 나은 편이며, 더러운 자본가 정치판의 정치공세, 심지어 개인 병력을 들추어내는 조잡함까지 보이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자본가들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자본가들 역시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하락하는 노동조건과 비정규직화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산재와, 고용불안, 실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책임지기를 거부하며, 심지어 그것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바쁘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의 아무리 부산스럽게 소란을 떨며 문제를 진정시키려고 발악해봤자, 그것이 결코 문제의 해결과 요원함은 자연스레 증명이 될 것이다. 가혹행위 금지, 병사 인권 존중, 병영문화 개선과 같은 공문구는 물론이고, 병영 내 시설보강, 인권기구, 상담기구의 확충과 같은 해결책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지리하게 등장했던 해결책들이며, 이런 해결책들이 군대 내 사고사례를 줄이는데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 노동자들은 잘 알고있다. 최근 2~3년간의 병영 내 연간 자살사고만 해도 70여건에 달한다!
이번 총기난사사건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병영 내 의문사들, 숱한 자살사고들은, 근본적인 원인에서 동일한 동전의 양면일 뿐인 것이다..
노동자 병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
군에서는 이 쟁점과 관련해, GP관련 시설의 전면 재보수, 병사월급 인상, 등과 같은 노동조건 개선안과 더불어, 병사들의 인권을 위해 고충심사 기구의 확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를 봉합하기 위한 생색내기가 아니라면, 실제적으로 병사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우리는 환영해야 한다.
병사들에게는 더 많은 휴식시간과 임금이 주어져야 하며, 현재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에 우리는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조건의 개선 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병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더불어, 병사들의 심리적인 압박과 고통, 이에 따른 부적응 사례가 문제의 중심에 놓여있음을 알고있다.
자본가 군대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 병사들에게 동지적 애정을 갖고있는 진지한 선진투사라면, 물리적 심리적인 폭력에 대한 병사들의 고통을, 자본가 언론의 무책임한 논평처럼 단지 문화적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본가 군대 내에서 노동자 병사들은 끊임없이 장교들과 갈등한다.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이지만, 정치적인 중립을 표방하며 이루어지는 쇄뇌성 정신교육,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관료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체계와 복종에의 강요, 일과시간과 자유시간의 구분이 없는 고통스러운 노동착취,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 마저도 없는 징계와 영창의 위협,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 마지막으로 장교들의 지배체제를 체내화 해버린 노동자 병사들 사이의 또 다른 폭력이 그것이다.
덧붙여, 오랜 군부독재를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한 조건에서는, 과거 군부가 입지를 마련해왔던 장관과 같은 정부기관의 요직, 국회의원, 국영기업체에서 군부의 입지가 좁아진 이후, 장교들에 대한 진급압박과 더불어 이러한 통제와 착취가 더욱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적은 장교들이다.” 라는 병사들의 은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러한 신체적 정치적 자유의 억압은, 일상적 시기에는 장교에 의한 폭력, 혹은 병사들 상호간의 폭력을 통해 일시적으로 봉합되는 듯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불완전한 봉합은 휴화산 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의문사, 자살사고, 항명, 수류탄과 총기난사에 이르는 이번 사건으로 각기 다르게 터져나오는 것이다.
정당한 신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라
하지만, 자본가 군대는 일시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생색을 내고 상담기구의 확대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면서, 병사들의 자유 확대를 근본적으로 막아설 것이다.
상담기구의 확대란 무엇인가. 그동안 군대에서 시행해왔던 ‘관심병사 분류작업’ 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신체적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이 봉합을 끊어내는 고리가 되지 못하도록 격리하여, 심리적 회유와 정신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병사들의 자유가 확대되지 않는 한, 그들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어떤 말장난으로도 병사들의 저항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군이 국회 조사단에 제출한 ‘비전캠프 - 심리 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 - 운영현황’ 만 보더라도, 03년 11월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3,000여명이 넘는 병사들의 대다수인 75%가 그대로 ‘복무부적응 상황’ 이나 ‘부대적응 관리병사’ 로 분류되어 퇴소하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관심병사 분류작업은 자본가 군대에 입대한 젊은 노동자 투사들을 대중과 분리시키는 계략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선별 분류하여 사업장 내 전환배치, 및 공격적 직장폐쇄, 공단 내 블랙리스트 배포, 등을 자행했던 자본가들의 공격과 완전히 닮아있는데, 이들은 이러한 탄압을 통해 끊임없이 병사들의 자유 확대를 막아설 것이다.
우리는 비정규직화, 폐업과 실업, 산재에 의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열악한 노동조건, 신체적 정치적 자유의 억압에 의한 병영 내 젊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동일한 동지적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병영 내 병사들의 신체적 자유, 사상의 자유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울 아래 이루어지는 도서 및 음반에 대한 검열을 철폐하고, 정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병사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사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군대, 계급적 본질의 폭로
병사들의 정당한 신체적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북의 군사적 대립구도, 안보논리,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구와 기만을 꿰뚫고, 반드시 대중적으로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기만은, 일상적인 시기에 폐쇄된 군대 안에서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미화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실제, 복무신조 1항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이야 말로 가장 체제 지향적인, 따라서 정치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병사들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채 중립성이라는 허울을 둘러쓰고, 자본가 체제의 수호, 한미동맹의 강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정당화를 세뇌적으로 주입받고 있는 것이다.
군대는 창설 이래 지금까지 자본가들의 오른쪽 날개를 자임해왔고, 일상적 시기에는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본가들의 지위를 뒤흔들 때면, 어김없이 중립성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졌다.
61년 이후 30여년간의 지속되었으며 아직도 정계 곳곳에 남아있는 군부정치의 그림자가 그것이며, 사전에 전문적인 시위진압훈련을 받은 특수전사령부의 공수부대가 80년 광주를 열사들의 피로 물들였고, 대중적으로 폭로된 계급적 투사들에 대한 녹화사업과 삼청교육대, 그리고 90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투쟁을 미포만의 군함으로 짓밟은 바가 있지 않은가.
안보논리 역시 마찬가지로 노동자 · 병사들의 입과 귀를 막기 위한 책동에 불과하다. KAL기 사건, 수지김 사건과 같이 이미 폭로된 북풍(北風)사건들 뿐만 아니라, 정치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제일 먼저 북한 정권과의 협잡을 시도했던 것이다.
모병제추진국민연대(이하 모추연)와 같은 시민단체, 소부르주아 학자, 논평가들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병제(징병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모병제 추진은, 이러한 군의 정치성과 계급적 본질을 명확히 폭로를 수행하지 않고 드러나는 현상적 문제들에만 치중하면서, 군의 효율적 축소라는 자본가 계급의 관점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저들의 이권각축장일 뿐인 각국 자본가들의 더러운 군비경쟁을 위해서는 단 한푼의 세금도 보태줄 수 없다.
우리는 오로지, 노동자 병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지지를 보낼 뿐이며, 병사들의 정당한 신체 정치적 자유가 확장시키고, 허울뿐인 안보논리 대신 사회와의 원활한 교류가 보장될 때 만이, 이번 총기난사사건과 같은 사고를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과 자본가 정당에서 내어놓은 잡다한 캠페인과 인권기구 확대안은 착취받는 노동자의 아들을 교정하고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지만, 우리는 이들을 동지적으로 바라볼 것이며, 이들이 자본가들의 이해에 동원되는 2중대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동지적 연대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