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국가인권위가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악에 대해 비판했을 때 민주노총 관료들과 일부 활동가들은 이를 적극 환영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의 입장은 ‘비정규직 철폐’는 고사하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파견법 폐지’ 등 노동자들의 기본적 요구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대단히 형편없는 안이었다. 국가인권위 또한 ‘인권’을 표방하지만 ‘전체 자본가국가의 일부’이기 때문에 근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한 채 국가인권위의 입장이 정부의 입장보다 조금 더 왼쪽에 있다고 생각해서 민주노총 관료들과 일부 활동가들이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국가인권위 안’을 중심으로 기만적인 타협이 이루어지고, 노동운동은 이를 수수방관할 위험에 처하기까지 했다. 이 경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노동운동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먼저 ‘국가’란 ‘화해 불가능한 계급대립의 산물’이며 ‘피억압 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라고 정확히 규정한다. 국가가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유물론적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실체를 날카롭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세상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잘 밝혀주고 있다. 노동자들은 ‘혁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노동자세상으로 절대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 혁명은 지금까지 한줌의 지배자들을 다른 지배자들로 교체해왔던 그런 혁명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한줌의 자본가들의 지배를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직접민주주의적 지배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세상은 ‘새로운 착취와 억압의 세상’이 아니라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 계급이 없는 세상,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권력을 순순히 넘겨주려 하지 않는 지배자들은 단호하게 억눌러야 하지만, 하청노동자, 환경미화원, 식당아줌마, 시설관리 노동자 등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정치와 사회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며 노동자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워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 노동자들이 꿈꾸어야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그리고 그 세상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좌익소아병]이 노동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일상적 시기의 지난한, 고된 대중활동의 방법을 풍부하게 알려준다면, [국가와 혁명]은 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활동가들의 가슴 속에 노동해방에 대한 꿈과 희망과 용기가 항상 새록새록 솟아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