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3
정승우 지음 / 책세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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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많이 그리고 꾸준히 읽히는 소설들은 종종 영화화 되죠.

이렇게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경우,
감상평의 한축은 늘상, 소설의 독자가 그려낸 이미지와 감독이 만들어 낸 영상과의 차이입니다.

이를테면, 보리스 파스테르냐크의 <닥터 지바고>를 데이빗 린 감독이 65년에 영화화 했는데,
주인공 지바고 역에 오마 샤리프가 어울리느냐 안어울리느냐가 화두로 떠오른다는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은, 이런 논쟁에 끼어들기가 영 마땅치 않습니다.
논쟁은 둘째 치고서라도, 차후에 소설을 읽을 때에도 위의 독자들 만큼의 어색함을 느끼기란 좀처럼 쉽지 않죠.
물론, 원작을 심하게 변형시킨 경우는 제외한다면 말이죠.

# 원작

이렇듯, 영화의 영상이 관객에게 주입하는 이미지는 꽤나 강렬한 것입니다.
아니, 강렬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소설이라는 '원작'에까지 영향을 미치죠.

그런 점에서 '신화적 예수'는 영화의 영상과 같습니다. 전세계를 강타한 흥행영화인 셈이죠.
이 영화는, 1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을 배경으로 하여,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 역시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예수의 삶'이라는 원작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요,
이 영화의 두터운 팬(Fan)층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원작을 시시해하거나 심지어 별 관심을 보이지 않기 일쑤입니다.

즉 예수가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음을 굳건히 믿는 기독교인들, 그 중 몇몇은,
부활 이전의 예수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심지어 무관심하다는거죠.

# 예수 대 예수

'신화적 예수'가 전세계를 강타한 흥행영화라면,
'역사적 예수'는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봉영화입니다.
두 영화는 '예수'라는 동일인물의 삶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극본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이죠.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서로 다른 두편의 영화는,
" 과연 어느 영화가 더 원작에 충실했는가? " 라는, 원작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일겁니다.

물론, 처음부터 승부를 가리기 힘든 논쟁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차피 원작이 영화라는 영상으로 변화되는 순간, 감독의 주관적인 이미지가 투영되기 마련일테니까요.

1940년대 살만(Warner Sallman)이 <그리스도의 머리(Head of Christ)>라는 작품에서 그려낸 아름다운 금발, 오뚝한 코, 부드러운 수염을 가진 예수와,
2001년에 영국의 BBC 방송이 기획한 한 다큐멘터리에서 법의학자이 그려낸 갈색피부와 뭉툭한 코 그리고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예수.

어느 편이 객관적 진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깨다

어차피, 객관적 승부를 가릴 수 없는 것이 영화의 세계라면,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신흥개봉영화의 흥행조건은, 아니 흥행여부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니 만큼, '주목여부'는 그 자체로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혹은 아주 깨거나 일겁니다.

한달에 한번 영화관을 기웃거리는 주제에 작품성 운운하기는 뭣하지만,
이 영화 아주 깬다는 것 만은 틀림없습니다.

'중세 서구교회' 라는 감독이 주연한 전편에서,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 예수는,
후편에서 유대교를 개혁하려 했던 개혁가로, 도덕 교사로, 여성해방을 주창한 운동가로, 율법을 가르친 랍비로, 심지어 혁명가로 그려지고 있으니까요.
아니 깬다 할 수 없을겁니다.

물론,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깬다'는 것은 깨어져야 할 고착화 된 이미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봉영화의 진정한 공적은, 이제껏 그 이미지만으로 원작을 압도했던 '신화적 예수'에 대해,
원작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는데에 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관객들은 원작인 '예수의 생애'에 대해 돌아보게 될겁니다.

# 역사적 예수 연구

사실, 영화가 아닌, 역사적 예수 '연구'는,
저 멀리 근대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 서구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성서를 교회의 경전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비판적 학문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 이제 성서는 하느님의 계시라는 도그마적 관점이 아니라 역사성을 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책이라는 전망에서 다루어지게 되었다. 튀빙엔 대학 같은 독일 대학을 중심으로 성서를 역사적 비평적 전망으로 독해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진행되었다.
19세기를 통해 역사비평적 연구의 성과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을 묘사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이 신의 영감을 받은 특정 저자가 한순간 기록한 신앙적 계시에 의한 책이 아니라 복잡한 구전 단계를 거친 수집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

대략 200여년이 되어가는 긴 시간 동안, 역사적 예수 연구도 발전과 정체를 반복하는데요,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수많은 학자와 업적에 대해서는 속편하게 기억하지 않기로 하고, 그 흐름만을 대체로 살펴보면 시기적으로 나눌 수 있는 변화들이 있어요.
제 편의대로 그들을 각각, '1세대', '2세대', '3세대' 라고 부를께요.

1세대(라이마루스, 바이스, 슈바이처)는 말 그대로 깨는 사람들이었어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는 유대교의 개혁가, 새 종교의 창시자, 종말론적 예언가, 혹은 도덕교사로 지칭됩니다.
2세대(불트만)는 이런 경향에 제동을 건 사람들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기존 서구 교회의 시각을 반영한 것은 아닌데, 이들은 1세대 연구가들의 약점을 꼬집어내며 역사적 예수 연구에 회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기존의 신화적 예수가 중세 서구 교회의 입맛에 맞았다면, 도덕교사로 모아지는 근대 계몽주의자들의 입맛에 맞을 뿐이라는거죠. 객관적 연구는 불가능하다라는 회의감을 일으킵니다.
3세대(호슬리, 예수 세미나 그룹, 베르메스)는 로마식 도시 세포리스의 발굴, 팔레스타인 고고학의 발전, 쿰란 문서와 나그 함마디 문서의 발견과 같이, 실증적인 연구자료들이 많이 확충되면서, 역사적 예수 연구를 본격화 한 사람들이에요. 사회학적인 방법도 많이 도입되어 연구도 훨씬 체계화되었구요.

# 여전한, 아니 더 확실해진 거리감

흥미로운 점은,
역사적 예수 연구는 신화적 예수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긴 하지만, 예수를 탈신화화 하는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성의 특정 조건을 만족시킨 영화들을 두고 객관적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 처럼,
역사적 예수와 신화적 예수 역시도 대립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더구나, '예수 부활'이라는 사건을 전후로, 연구배경 역시도 달리 하고 있구요.
역사적 예수 연구는 부활 이후의 예수에 대해서는 나름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 듯 합니다.

연구가 신화적 예수와의 거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데에는,
2세대 연구자들이 밝힌 '객관적 예수'에 대한 회의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글쎄요.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여기에서 멈추어 서는걸까요?

안개는 조금씩 걷히고 있지만, 아직도 강을 건너기엔 힘이 들어보여요.
실로 방대한 연구업적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움에 책을 덮어야 했던 이유입니다.

김규항씨가 오랜 침묵을 깨고 새 책 <예수이야기>를 낸다는데,
그가 과연 강 어디즈음에서 노질을 시작할런지 조심스레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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