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놀이터 삼아
강신주 지음 / 문예당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페미니스트 전업주부

페미니스트(Feminist) 강신주님은, 인터넷 야후(Yahoo) 에서 2달러에 100장을 찍어준다는 명함을 만들면서, 자신의 직업을 '홈메이커, 문필가, 박사'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영문학과 여성학을 오래도록 공부했는데, 지금은 벨기에 남자인 에릭,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전업주부로 살고있습니다.
가끔 대학에서 시간제로 강사노릇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르바이트에 불과하고 자신의 진짜 직업은 전업주부라고 주장하는 그녀입니다.

<세계를 놀이터 삼아>는, 페미니스트 이론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녀의 오랜 유학생활을 담은 여행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녀의 시선은 다분히 그녀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 이는 책의 목차를 보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전업주부와 전업주부 사이

목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모두 네가지 큰제목 중에서, 그녀가 가장 많은 양을 할애한 것은 네번째 큰제목 '페미니스트 전업주부 - Ph.D' 였습니다. 나머지 큰제목들은 각각, '자매애(Sisterhood)', '건강한 성, 건강한 성 문화 - 내면으로부터의 자유', '먼 나라에서 본 우리 사회 -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싸우고 싶은 것들'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구요.

네번째 큰제목은, 이전의 세가지 큰제목에서 소개한 그녀의 경험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결과' 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을 비롯해서 각국에서 만난 페미니스트, 혹은 잠재적 페미니스트 -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부르지는 않지만, 이미 페미니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 - 들로부터 배운 것이기도 하고, 한국과 다른 외국의 성문화로 부터, 한국의 성문화 혹은 문화로 부터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여튼, 결과로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전업주부' 이고,
그녀는, 한국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다소 의아할 수 있는, 자신의 이유있는 선택에 대해서 충분한 얘기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 나는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전업주부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
라고 그녀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네번째 큰제목에서 풀어내고 있는 얘기들이, '전업주부' 와 '전업주부'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전자는 여성들의 굴레로 인식되는 그것이고, 후자는 그 굴레를 벗어나려는 페미니스트의 그것이겠죠.

# 영락없는 전업주부

전자의 전업주부와 후자의 전업주부가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후자의 전업주부는, 전자처럼 남편과 자식에게 손수 하루세끼 밥을 해먹이지도 않고, 설겆이며 빨래, 청소와 같은 집안일들을 모다 맡아서 하지도 않고, 신문이며 TV를 보는 남편을 뒤로하고 혼자서 우는 아이를 달래지도 않지만,
이 모든 것들, 즉 가사노동을 일상으로 하는 영락없는 전업주부인 것입니다.

오히려, 전자와 후자의 사이에는, 노동에 대한 가치인정과 자긍심이 놓여있습니다.
전자에게는 힘들고 고된 뒤치닥거리이지만, 후자에게는 사랑하는 자식을 교육하고 삶의 행복을 체험하는 가치있는 노동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얘기합니다.
" 전업주부들이여, 우리도 잘나갑시다! " 라고.

" 너는 밥해. 나는 빨래할께. " 라고, 기계적으로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것이 형식면에서의 여남평등이라면,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여 기계적인 역할분담 자체가 스러지는 것이 형식과 더불어 내용을 아우르는 여남평등이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첫번째 큰제목 '자매애' 에는, 그녀가 각국을 유학하며 만난 페미니스트 혹은 잠재적 페미니스트의 인물열전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평생 가사노동을 해온 전형적인 한국의 장년여성 - 사실은, 강신주님의 어머니 - 이 '함경도 또순이 - 조화의 페미니즘' 으로 '자매애' 에 오른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일겁니다.

# 무보수 가사노동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래도록 페미니즘을 공부했고 삶 속에서 실천해 온 한 페미니스트의 즐거운 결말을 보면서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 아쉬움은 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녀의 즐거운 결말에서 굴레를 벗어난 것은,
'생각'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라는 결과가 달라진 것은, 그녀와 그의 생각에 '자부심 혹은 긍지' 가 더해진 까닭일 뿐, '무보수 가사노동' 은 여전히 상수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나는 돈 하나도 못 버는 주제에 가끔씩 '나 같은 파출부, 유모를 한 달에 5,000달러 주고 얻을 수 있나 찾아봐. 만약 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당장 일하러 나간다.'고 하며 떵떵 큰소리친다. 웬 자화자찬이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남편과 나 자신에게 당당한 노동자로서의 내 값어치를 상기시키려는 자기 최면적 노력이다. "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그녀의 항변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은,
가사노동에 분명히 존재하는 가치가, 무보수로 인해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일겁니다.
사실, 가사노동의 가치는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은폐되는 것이죠.

은폐된 가사노동의 가치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단위에서 생계비용을 벌어오는 구성원의 임금에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가족임금' 이라고 하는데, 그녀의 가족에서는 남편 에릭의 임금이 됩니다. 에릭이 매일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그녀의 가사노동이 있기 때문일테니까요.

# 또 한 페미니스트

그래서, 사회학을 전공한 페미니스트 조주은씨는, <현대 가족 이야기>에서 자동차업계의 가족임금제도를 문제삼고 있습니다.
( 그녀는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남편과 결혼한 페미니스트 전업주부로서, <현대 가족 이야기>에서 현대자동차와 소속 노동자 가족의 삶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둘러보고 있습니다. )

노동을 하는 것과 다시금 노동력을 재충전하는 것은 분명히 동등한 것일진데, 임금이 한명에게 집중되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임금을 한명에게 몰아주는 가족임금제도에서, 현대 가족 내에 존재하는 가부장성의 원인을 찾고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회학을 전공한 그녀답게,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부인들을 섬세하게 인터뷰 하는데, 그녀들에게 '전업주부'란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 자기만족 혹은 자기최면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전업주부가 되었고, 남편의 월급명세서에서 자신의 노동가치를 확인해야 하는 그녀들에게,
'자긍심과 긍지를 갖고 전업주부를 직업삼는 것' 이란, 어쩌면 조금 먼나라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를 놀이터 삼아>가 얘기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자긍심과 긍지를 느끼는 것' 만으로는 조금 아쉽습니다.
가사노동의 은폐된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는 '자기만족'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기만족인지, 자기최면인지 따져봐야할거에요.

" 내가 좋으면 그만 " 이라고,
삶의 가치는 무엇과 비교하며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지만,

오늘날의 노동은,
자아실현의 가치이기 이전에, 돈으로 환산되는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임에 틀림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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