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벌
조동성 / 매일경제신문사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 역시 논문

<한국재벌연구> 라는 딱딱하기 그지 없는 제목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유머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책입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돈 많아 질투심을 유발하는 재벌 2세에 대한 유쾌통쾌한 뒷조사를 기대하셨다면, 크게 실망하실거에요.

책이 쓰여진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은, 해방 이후 줄곧 동반자적 관계였던 기업과 정부의 관계에 앙금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 -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는, 공정거래법이니 수입자유화, 중소기업육성, 수출금융 및 특혜금융지원의 축소, 등등 - 이고, 동시에, 80년대 후반의 사회적인 변화들(87년 민주화투쟁)을 통해서 재벌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이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죠.
단적으로 얘기해서, 재벌기업들이 일말의 위기의식을 감지했던 시기가 될겁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좋은 의도이든 나쁜 의도이든, 재벌에 대한 비판 자체를 승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지사 인지상정.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의 유수 경영/경제학자들이 모여, 재벌에 대한 인식 전환을 꾀하고자 쓰여진 셈입니다.

형식은 깔끔한 논문형식입니다.
매쪽 빠짐없이 통계자료가 들어가있을 정도로, 간단하게 잡아낼 수 있는 결론에도 실증적 근거를 놓치지 않으면서 학자 특유의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이야기? 전개 역시도 논문 특유의 그것으로서 명쾌하구요.

# 재벌을 비판하는데에도 충분조건이 있다?

너도 재벌 나도 재벌, 참 쉽게들 말하는 재벌을 대체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는가 부터 이 책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지극히 학자스러운 목차 구조를 바라보며 벌써부터 볼멘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재벌의 정의'는 후반부의 결론으로까지 나아가는 중요한 구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필자 - 서울대 경영학과 조동성 교수 - 는, 재벌의 정의와 더불어 논점을 잡아내는데 100여쪽이 넘는 분량을 할애하면서,
기존의 서적이나 논문에서 정의된 재벌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동남아, 한국의 재벌의 역사와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분석,
재벌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까지 두루 분석한 다음에야 이렇게 논점을 잡아내고 있는데,

" 위의 표를 볼 때 비교대상 중에서 사회로부터 비판이 되어온 대상은 세 그룹, 즉 20세기 전반 이전의 미국 거대기업과 전전의 일본재벌, 그리고 1986년 이전까지의 필리핀 재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현대 미국의 거대기업과 전후의 일본재벌, 그리고 대만과 홍콩의 재벌에 대해서는 그 사회로부터 반감 또는 비판이 별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 (중략)
다시 말해서, 일본의 전후재벌처럼 정경유착의 결과 나타나는 독점적 이윤이 특정개인에게 귀속되지 않고 재벌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분산된 불특정 다수인에게 귀속된다면 이는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고, 1920년대 이전의 미국 거대기업처럼 정경유착이 없더라도 기업집단의 독점적 기회가 국민경제의 균형을 파괴하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게되는 것이다."

즉, '개인소유의 정도'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두가지가, 재벌을 비판하는데 있어 일종의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 중 한가지만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다소 도식적인 결론을 끌어냅니다.

" 개인소유지만 국민경제적 비중이 큰 한국의 재벌도 사회적 비판과 제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줄이거나 개인소유형태를 탈피하는 방안중 적어도 하나를 택일해야 함을 알 수 있다. "

# 노련한 한 수. 둘 다 취할 수 없거든 하나를 버리라.

그렇다면, 쉽게 얘기해서,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둘 중 한가지는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 된겁니다.

필자는 '개인소유의 정도'를 선택합니다.

" 대규모성은 기업이 규모의 경제와 내부화의 효익을 누리고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경쟁력 확보의 방안으로 갖추어야 하며, 정경유착에 의한 파행적 자본축적은 국민의식과 사회구조의 성숙에 따른 민주화ㆍ다원화의 큰 흐름속에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재벌에 대한 비판이 경제적 효율성보다 사회적 공정성 측면에 강조점이 두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개인소유형태의 탈피, 즉 소유집중 및 탈법적 승계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재벌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완화시켜 재벌은 물론 자본주의체제의 존속기반을 확고히 해 주는 정도(正道)라고 할 수 있다. "

국민경제에서 재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들을 고려할 때, 재벌기업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효용성을 감안해서,
후자는 포기하기 힘든 가치라는 결론을 내린겁니다.
여담이지만, 특별히 1장을 할애해 한국재벌의 경영성과를 집필했으니까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포기하게될 '개인소유'와 관련해, 비판 항목들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구요.

이를테면,
부의 편중과 관련해서는, 소액주주나 노동조합의 이권 그리고 지주제를,
가족ㆍ혈족 중심의 권력 승계와 관련해서는, 상속ㆍ중여세제 개혁안이나 전문경영인에 의한 경영을 제안하고 있고,

정부의 역할로 넘어가,
특혜대출과 정경유착(정치와 경제의 유착관계), 중소산업의 몰락과 산업구조의 왜곡, 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입니다.

# 혁명적인 한국경영학회장?

여기에서 중요한 논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인정하듯이, '우리도 재벌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인정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요.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앞에 두고서 그 비중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앨빈 토플러의 제4물결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은 이상,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적인 생산양식은 재벌기업과 같은 '대규모적이고 사회적인 조직체'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소유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규모적이고 사회적인 조직체'를 누가, 어떻게 소유할 것이냐.

다시 필자에게로 돌아가보죠.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한국의 재벌이 사회적 비판을 극복하고 한국경제의 성장과 형평의 조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소유경영자가 기업을 사적 소유물이 아닌 사회적 실체로 인정하고 경영의 전문화, 그리고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기업활동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일이다. "

와 KS(경기고-서울대) 출신에다가 경영학회장까지 맡고있는 엘리트 인사가 이렇게 혁명적인 발언을 하다니.

사실, 자본주의경제의 운동방식이 필연적으로 거대한 생산조직을 출몰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한평생 자본주의를 연구한 K.마르크스에 의해서 주장된 바 있습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된 생산조직은, 응당 생산조직을 운영할 노동자들 역시도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할 것이라고 했는데,
조직된 노동자들이란, 다름아닌 생산수단의 사적인 소유가 폐지된 공산주의 사회에서 생산조직을 운영할 주체들이기도 했습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가 '혁명적'이라구요?
믿기 힘들지만, 그도 분명 기업을 두고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라고 하고 있으니까요.

# 작지만 큰 간극

농담이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윗 단락에서 아스라히 만날 뻔한 필자와 K.마르크스 사이에는 작지만 큰 간극이 있습니다.

결정적인 근거를 제가 인용한 필자의 글에서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업을 사회적 실체로 생각해야 한다' 라는 문장의 주어가, 엄연히 '재벌의 소유경영자' 라는 점과,
'기업의 공공소유'가 아니라, '기업을 사회적 실체로 인정' 이라는 부분입니다.

미묘한 단어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의 간극은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니까요.

제대로 된 경제학 수업이라고는 전연 들어본 적도 없는 젊은이로서 무례를 감수한다면,
필자인 조동성 교수님께서 대략 '오버'하신 듯 합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랐던 90년대 초라지만, 책임지지 못할 발언이었죠.

재벌의 소유경영자가 공식석상에서 '인정'을 하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기업이 기업으로 존재하는 이상, 그것은 분명 사적인 소유물입니다.

제가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필자 역시도 이점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반부, 필자의 대안에서도 드러나듯이,
'인정'하는 수준에서의 '사회적 실체'란, 익히 알려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도가 될테니까요.

일련의 논조가 <한국재벌연구>라는 제목과 다르게, '재벌에 대한 비판'에 맞추어져있다는 점과,
'기업을 사회적 실체로 생각해야 한다' 라는 문장의 주어가, 엄연히 '재벌의 소유경영자' 라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일종의 '구색갖추기' 정도로 느껴지는건 제 선입견일런지요.

# 떼었다 붙였다하는 옵션(option), 복지와 공공성.

거리에서 소위 '데모'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공성'이라는 이슈를 줄곧 내세우는데,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나 '공공성'이란,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일종의 옵션(option)에 불과합니다.

복지의 경우는,
소위 '나누어질 파이'가 있는 호황시기에도 가능하지만,
생산은 이루어지는데 소비가 안되는 디플레이션(de-flation) 불황 시기에 구원투수마냥 등장하는 것입니다.

복지를 통해 빈곤한 다수의 소비능력을 보충하는거죠.
보충된 소비능력이 생산과 소비 사이클(cycle) 중에서, 무너져있는 소비를 일으켜세우면서 다시금 사이클(cycle)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그동안 경제사 면면을 보면서 깊이 느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29년 대공황 시기에 미국의 경제부흥법은 불황시기의 복지의 대표적인 그것이죠.

공공성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클럽에도 몇편 올라온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독서후기에도 쓰여진 바 있지만,
자본주의가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다고 느껴지는건, 그것이 특정 집단이나 사상의 조류가 아니라 '생산양식'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해야 하는 재화.
그 재화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양식이 바로 '생산양식'이고 '경제체제'인 것이죠.
그것이 숨쉬는 공기와 같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따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공성이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즉 이윤을 위한 생산양식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윤적자적인 사업양식이 용인된 사업공간이라고 보는 것이 더 현명할겁니다. 밑지는 장사를 하는건 국민, 장사밑천은 세금이겠죠.

하지만, 더 이상 밑질 수 없게 되는 순간,
여느 기업과 다름없이 팔려나갑니다. 국민의 손에서.
 
# 얼마면 돼?

책 고르기를 인터넷 쇼핑몰 구경하듯 하다보니, 간혹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한국재벌연구>가 그랬습니다.

헌책방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신간(新刊)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보니,
'그땐 그랬지' 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들에 피식 웃음이 나올 경우가 있는데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6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 경제사조가 한국에서 본격화 된 것은, 90년대 중후반.
더군다나, 신자유주의가 그 속도를 유달리 하여, 제반경제구조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이 쓰여진 90년초를 '그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필자가 후반부에 제시한 대안 역시도, 오늘날에는 굉장히 무색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죠.
단적인 예로, <한국재벌연구>에서 종종 등장하는 '국민경제'라는 말을 요즘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국민경제'는 '국가경제'로, '국민총생산(GNP)'은 '국가총생산(GDP)'으로 대체되었죠.

그 배경에 세계화가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MS에서 내보내기 시작한 CF 처럼,
- 그 왜 아시죠. "넌 어디야? 런던?" "아니, 파리" "언제 갔어? 오전엔 베를린이었잖아." "계약, 일정 모두 바뀌었다구" "보내줘" "보냈어"
투자도 생산설비도 국적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장'과 '국가'중 이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시장'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국내에서 투자 및 생산을 하던 시절과, 미우면 떠나면 그만인 오늘날을 비교하는건 좀처럼 쉽지 않죠.

필자의 대안이 무색해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필자가 주장하는, '기업의 사회적 실체', 즉 공공성을 재벌의 소유경영자에게 요구하려면 힘이 있어야하는데,
그 힘을 이 책의 쓰여진 90년대까지만 해도 국가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무슨 드라마의 원빈처럼 물어볼겁니다.
" 해외투자 비용, 얼마면 돼? " 하고 말이죠.

시장의 힘, 기업의 힘은 더욱 세지고 있습니다.

# 나름대로 재밌는 기업-정부 모델(model)

시장의 힘이라. 한마디로 역전된거죠.

필자의 대안부분에 치중하느라 다소 소홀했습니다만,
해방 이후 재벌성장사에서 기업과 정부의 관계도 세심히 검토하고 있는 이 책에는, 과거 기업과 정부, 시장과 정부와의 관계도 깔끔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통계와 도표, 수식에 모델까지 동원되었죠.

필자에 따르면,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1)중상주의 → (2)자유방임주의 → (3)입법주의 → (4)가부장주의 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합니다만,
이제 탈(脫)모델화 한 것 같습니다.

다소 도식적이긴 합니다만,
시장과 정부라는 두가지 주체의 대립이,
(1)무정부상태 → (2)시장>정부 → (3)정부>시장 → (4)정부-시장 했던 시기로 볼 수 있을거에요.

한국은 자본주의를 수입한 경우라 중상주의 단계는 없었지만,
해방 이후부터 시작해 해외원조를 받아가며 장사밑천을 마련하던 60년대를 거쳐 계획경제를 시행했던 70년대까지를 (2)자유방임주의 단계로,
80년대부터는 (3)입법주의 단계로 볼 수도 있는데,

솔직히, (4)도 그렇고 한국의 실정에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건,
아마도 한국에서는 경제발전과정에서 시장과 정부의 유착이 유달리 심했던 탓일겝니다.

한국일보의 누가 쓴 것 처럼,
이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적 연속성' 때문일 수도 있겠구요.

# 논문의 매력 + 잡담

번번히 실망하면서도 학자들의 논문에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처럼 서문 읽기를 돌같이 하여 무조건 달려드는 사람들에게는,
문제의식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학자들의 글은 결론과 상관없이 명쾌해서 좋습니다.

하지만, 간략하게나마 한국 경제사와 정부-기업관계, 삼성ㆍ현대ㆍ기아를 비롯한 10대 재벌기업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었고,
소액주주 운동이나 상속ㆍ증여세제의 변화에도 더 관심을 가지게되었습니다.

일본 경제사를 생략한 것이 좀 아쉽지만,
이제 경제사 여행도 얼추 마무리지을 때가 된 것 같아요.

여지껏 읽은 책 보다 좋은 책들이 얼마든지 더 있지만,
제가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해야할 것 같습니다.

역사책 한권에 책갈피를 끼워둔 것이 기억납니다만,
당분간은 소설을 읽을 생각입니다.

<한강> 이후로 오랜만에 발을 동동구르게 하는 책을 발견했거든요.
저만 이제서야 읽는 것 같아 챙피하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어제 우연히 얻었지 뭐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