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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ㅣ 범우사상신서 4
죤 K.갈브레이드 / 범우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 불확실성
<불확실성의 시대> J.K.갤브레이스
책의 제목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확실한 것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은근히 자극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제목이야 말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교수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그것임에 틀림없습니다.
" 전세기의 경제 사상 속에 깃든 확고한 확실성을 현대의 여러가지 문제가 직면하고 있는 씻을 수 없는 불확실성과 대비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세기에서는 자본가는 자본주의의 번영에, 사회주의자나 제국주의자는 각기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성공에 확신을 가지고 또 지배계급은 스스로 지배자로서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확실성은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인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제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한다면 전세기의 확실성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우스울 정도이다. "
서문에는 그의 문제의식이 간명하게 담겨있습니다.
# 나도 케인즈쯤은 안다
갤브레이스 교수를 모르는 분들도, 저 유명한 J.M.케인즈는 한번씩 들어보셨을 터.
갤브레이스는 다름 아닌 케인즈로 부터 사사받은 케인즈학파 경제학자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은,
갤브레이스 교수가 대학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해이자,
J.M.케인즈가 <평화의 경제적 귀결> 이라는 책으로 승전국 협상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해이기도 했으니까요.
당시의 주류적인 경제학 - 기본적은 아담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당시는 마샬플랜(Marchal Plan)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알프레드 마셜이 이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 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때인데,
한참 혈기왕성했을 이 젊은 경제학도에게 케인즈의 '불완전고용균형'은 불황에 빠진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소중한 열쇠와 같았을 것입니다.
갤브레이스 교수, 잘은 몰라도 그 후에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TV 프로그램 - 이 책을 낸 계기가 되었던 - 같은 방송활동 뿐만 아니라, 저술활동과 정계활동까지 옅볼수가 있습니다.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마샬플랜(Marchal Plan)에 이르는 전시ㆍ전후기간에 정부 경제부처에서 일을 하기도 했구요.
왠만한 실력으론 어림없다는 <일반이론>의 케인즈.
그가 어렵다면, 갤브레이스 교수의 책을 참고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케인즈가 생산자라면, 갤브레이스 교수는 케인즈의 경제학을 유통시키는데 크게 한몫 한 사람이니까요.
갤브레이스 교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주제에, 너무 케인즈의 그늘에 가두어두는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만,
케인즈를 빼놓고는, 갤브레이스 교수 뿐만 아니라 당시의 경제학을 이해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
<불확실성의 시대>는 격변의 1차ㆍ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갤브레이스 교수의 입담이 그대로 묻어나와,
주류에서 비주류가,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가는 당대의 분위기를 정말 실감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386세대가 걸어온 그것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얘기나온 김에 386 얘기를 좀 더 하면,
유시민씨는 얼마 전에 그가 속한 정당의 당면 5대 과제를 제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제시한 5대 과제를 중심으로 야당의 정책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데, 두 야당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당면 5대 과제 중에 일부에만 치우쳐있다는 비판을 합니다.
5대 과제 중에 경제분야에 속하는 것 하나가, 시장경제의 확립이고,
모 야당은 이 과제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다른 과제들에 대해서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시장경제의 확립은 두 정당의 교집합이 되는 것인데,
이는 케인즈 경제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케인즈 경제학과 그 당시 주류이던 고전 경제학과의 교집합은 시장경제의 확립이었습니다.
두 집단은 각각 '불완전고용균형'과 '완전고용균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만 보더라도 그들의 공통점(교집합)과 차이점을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고전경제학도 케인즈 경제학도, '고용균형'을 얘기하고 있다는겁니다. - '고용균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네요.
차이점은, 고전경제학은 이를 '완전'으로 수식하고, 케인즈 경제학은 '불완전'으로 수식한다는 것이구요.
두 집단 모두 완전고용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케인즈 경제학은 고전경제학과 달리, 정부의 적절한 개입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일종의 옵션(option)을 붙인거죠.
올해 정부의 정책이 '경제활성화'로 천명되기 이전까지,
모 야당은 여당의 경제정책을 두고 한참동안 '정체성' 운운했던 것을 기억하실텐데요,
사실, 두 정당의 경제정책상의 차이는 고전경제학의 그것과 케인즈 경제학의 그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큰 공통점과 작은 차이점이 있죠.
수식(adjective)의 차이입니다.
# 정체성 제대로 따지자
사람의 인격형성에 큰몫을 한다는 사춘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나간다고 하죠.
사실, 정체성 운운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 논란이 뭍 인상을 찌뿌리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정체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탓일겁니다.
케인즈가 등장할 때 당시에 주류 경제학자들이 보냈던 따가운 시선을 보냈으며,
오늘날의 경제정책 역시도 2년 가까이 당한 모진 수난을 받았습니다.
공통점 보다는 차이점이 부각되었고, 혹은 공통점이 무시되기도 했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경제사여행>에 없는 경제사 후일담들이 많이 담겨있느니 만큼,
케인즈 얘기를 좀 더 하면,
케인즈는 1차 세계대전 전후협상이었던 베르사이유회의에 영국 협상단 일원으로 참가해서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승전국들이 패전국 독일에 물리우는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을 보고는 협상단을 뛰쳐나와,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발표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승전국의 과도한, 혹은 우매한 전쟁배상금이 세계경제를 불황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경고였는데,
이는 응당 승전국 협상단의 분노를 샀을 뿐만 아니라, 승전국 국민들의 패전국에 대한 분노와도 융합되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죠.
이를테면, 1919년 말에 영국 <Times>는 이렇게 보도했죠.
"케인즈씨는 재기 넘치는 경제학자인지도 모르며 재무성 직운으로서 유용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저서로 말미암아 그는 동맹국에 대해서 해를 끼쳤던 것이며 적은 틀림없이 이에 감사할 것이다."
훝날 세계를 지배한 경제학자가 되는 이 거물은 한때 따돌림을 당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잘난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고, 하버드 대학으로 들어가 <일반이론>을 집필하며 청장년층의 경제학자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합니다. - 아 물론, 온 사교계가 떠들석하게 발레리나 리디아 로포코바와 결혼식을 올린 것도 이 당시의 사건이었죠.
# 오해는 풀린다?
지난 몇해동안 우리가 목격한 정체성 논쟁도,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섰다는 점에서, 케인즈가 당한 그것과 비슷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상을 구깁니다.
다시 케인즈로 돌아가보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것이, <일반이론>이나 그가 매료시킨 하버드 경제학자들 보다는 10년간의 경제대공황 - 오랜 불황으로 겪은 고통은 고전경제학파의 완전고용균형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요. - 이었던 것 처럼,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은 두 정당의 경제정책 역시도, 현실에서 그 공통점을 증명할 것입니다.
오해는 풀릴 것입니다.
# 손에 꼽을만한 경제사
후기가 다소 치우쳤습니다만,
갤브레이스 교수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통해 조명하고자 했던 것은,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경제학의 확실성을 케인즈 경제학이 대체해가는 과정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자리잡았던 경제학 일반의 성립과 위기, 몰락의 과정 - 후일담을 읽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 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고 있는 경제사이죠.
당연히 고전경제학 뿐만 아니라, V.I.레닌에 이어 스탈린이 소련에서 시행했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등장하게 되며,
자본주의 최성기의 풍속이나 화폐의 성쇠, 법인기업에 대해서도 상당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에 이어, 손에 꼽을만한 경제사로서 권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