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가 확 보인다
이미숙.김원호 지음 / 학민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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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부 기자가 둘러본 남미경제

남미의 역사를 공부해보겠다는 허황된 포부로 준비없이 집어들었던 책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이었습니다.
그 동네에 대해서 꽤나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있는 이성형 교수가 쓴 책이었죠.

그런데, 이 책은 워낙 인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라틴학회의 학술대회에 제출된 논문을 묶어놓은 책이었죠.
준비없는 초보자에게는 여간 따분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심기일전하자고 고른 책. <남미가 확 보인다>였습니다.

00년에 문화일보사 기획기사를 묶어놓은 것인데,
언론기사의 특성이 그렇듯이, 전문적인 무엇으로 따지자면 부족한 감이 있다지만 문제의식 만큼은 굉장히 민첩합니다.

사람들이 97년 외환위기의 악몽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던 00년.
여러차례 외환위기를 겪었을 뿐 아니라, 정치며 경제며 왠지 우리보다 못한 것으로 뵈이던 남미국가들을 반면교사로 삼고싶었던겁니다.

하지만, 이 책이 남미국가들의 경제에 대해서 심도있게 분석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편견 보태 얘기하자면, 이 책의 저자인 이미숙씨는 정치부 기자.
시류나 경향에는 민첩하니만큼, 덕분에 남미 구경 한번 하는 것을 낙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국가별로 편집된 이 책 -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베네수엘라, 브라질, 멕시코 - 에는 국가별로 두세명의 관계인 인터뷰가 있다는 사실.

후기는 책의 편집과는 달리, 이슈별로 써보았습니다.
책을 소개하기에는 감질맛이 나려나요.

# 민정이양의 의미

라틴아메리카를 한국경제의 반면교사로 삼고자 하는 배경에 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남미는 소위 굉장히 잘 나가는 나라들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이 국가들이 스페인으로부터의 오랜 식민지 시절을 벗어나 소위, '개발도상국'의 반열에 오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곧, 하나의 성장모델로 추앙받기 시작했구요.

그런데, 어느새,
'남미' 혹은 '남미병'이란, 정치, 경제, 사회의 만성적 위기증상으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액수의 외채와 구제금융,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
이제 성장모델은 부정되기 시작합니다.

믿었던 자유시장경제의 배신이었습니다.
말미에 소개된 통계자료 - ECLAC(UN의 중남미경제위원회)에서 발간한 중남미사회보고서 - 에 의하면,
경제가 성장할 수록 고용불안이 가속화되고, 빈부격차가 커져, 중남미 인구의 45%에 해당하는 2억 2천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극빈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여튼, 이제 이렇게 부정된 성장모델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남미보다 다소 낳은 평가를 받고있는 한국의 성장모델도 고려되구요.

한국의 성장모델을 평가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박정희'이겠죠.
우리가 '박정희'라는 인물과 함께 응당 떠올리게 되는건 군정(軍政). 그리고, 이는 남미의 역사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미의 국가들도 대부분 군정을 겪었고, 1900년대 말경에 이르러서야 민정(民政)을 열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83년의, 브라질이 85년의 , 칠레는 89년, 페루는 85년. 한국은 87년을 기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개발경제와 관련해서, 경제정책과 관련해서,
군정과 민정 사이의 경계선이 갖는 의미는, 시장경제의 본격적인 발달을 뜻합니다.
(칠레는 예외군요. 칠레는 73년부터 집권한 피노체트가 미국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을 직수입 비슷하게 합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경제개발의 대략적인 흐름이란 국가에서 시장으로 이동하니까요.
이 역시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 계획적인 발전을 추구하다가,
몇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상당부분 국가에 책임을 묻게 되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의 비중이 높아지는 흐름.
군정과 민정의 경계선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인물과 인물

이런 관점에서 지켜봐야 하는 인물들이,
아르헨티나의 알폰신과 메넴, 브라질의 카르도수, 페루의 후지모리와, 멕시코의 폭스입니다.
칠레에서는 특이하게 군정인 피노체트를 꼽아야겠구요.

이제 위의 인물들은 이제, 민정이양과 동시에 시장의 힘을 키워갑니다.
시장을 기본으로 한 경제에서, 이를 개발하는데 있어 이슈가 되는 것은 국가와 시장의 비중.
이는 케인즈경제학과 신자유주의경제학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실제, 칠레의 피노체트의 경우,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태동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들이 제출한 개발안을 그대로 채택한 경우구요.
페루의 후지모리 역시, 한국의 박정희 모델과 칠레의 피노체트 모델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피노체트 모델 - 즉, 신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했다고 하구요.

# 국가와 시장의 저울질

군정에서 민정으로의 이양이 시장의 비중을 높였다는 사실 이후에,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민정과 함께 시장의 비중이 현격히 높아진 이후의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이 그것인데요,
이는 한국에서 70년대 경제개발 모델을 되돌아보며 이루어지는 논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너무 도식화시키는 것 같긴 하지만,
상이한 관점이란, 시장 탓을 하느냐 국가 탓을 하느냐 라고 보여집니다.

이 대목에서,
국가에 무게를 두고있는 관점은 '포퓰리즘(populism, 인기영합주의)'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냅니다. 남미과 소개되면 항상 뒤따르는 단어이기도 하죠.
포퓰리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다시 두가지인데, 한가지는 페론이라는 인물이 대신 소개해 줄 것이요, 또 한가지는 한국과 굉장히 상이한 남미의 정치 풍토를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페론 얘기부터 해보죠.
남미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을 설명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페론.
40년대에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으로서, 그의 아내 에바 페론은 안토니아 반데라스와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 <에비타 Evita> 로도 익히 알려져있습니다.

남미라는 대륙 자체가 자원이 굉장히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에,
남미국가들은 개발초기에 쉽게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 이 점에서 한국은 선택의 여지가 좁았죠.

그런데, 페론의 경우 이 과정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고스란히 임금향상이나 복지에 사용합니다. 별다른 경제전략이라는게 없었던겁니다.

한마디로, 이해집단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산업경쟁력을 개발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지목되는 원인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인물 중심의 정치풍토'입니다.
그 반대는 '정당정치'일텐데, 페론의 예에서 보여지듯이, 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정당 없이 대통령 개인의 인기나 의사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뜻합니다.

저도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남미는, - 국가별 차이를 무시하자면 - 정당은 굉장히 많지만 실제 뚜렷한 정책을 가진 정당이 별반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정당이라 해서, 선거정당이라고도 하구요.

# 시시했던 필자의 결론

필자인 이미숙 기자가 책의 말미에 요약 제시한 교훈을 보면,
신자유주의 흐름에의 적극적인 결합,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 향상, 집단이기주의 극복, 정당중심의 정치문화 확산, 인적자원의 개발까지,
제 표현을 빌리자면 - 모조리 '국가 탓'을 하고있는 셈입니다.

'시장 탓', 그러니까 시장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관점이란,
필자의 기획의도에느 포함되어있지 않고, 오히려, 책의 본문. 즉, 페루의 신임대통령 톨레도나 다른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그나마도 굉장히 미약한 수준입니다.

실제, 그는 이미숙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밝히는데,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독일의 슈뢰더 총리를 직접 지목하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구요.
남미 내에서는 칠레의 라고스 대통령도 이와 흡사한 경제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시시했던 이유

경제위기의 반면교사로서,
즉 남미와 같은 사회경제 전반적 혼란을 견제하기 위한 교훈은 충분히 나왔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입니다.

적절한 예시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대충 반에서 3등 정도 하는 친구가 요즘 공부가 영 안되는데, 4등에서 5등으로 밀려난 친구를 보며 교훈을 얻겠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어차피, 필자가 주목하고있지 않은 베네수엘라나 쿠바를 제외하고는,
남미대륙 전체가 시장경제를 확고히 하고 있는데, 굳이 왜 남미를 반면교사로 택했는지.
뭐 저에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만, 쉽사리 이해가 안됩니다. 같은 기획이라면, 오히려 서유럽 모델이나 신흥 국가들의 모델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은 벌써부터 나와있었던 것 같아서요.

# 보탬 - '통화바스켓 제도'에 대한, 짧디 짧은 생각

사족 수준은 아닌데 본문과 적당치 않아 덧붙입니다.
아르헨티나의 1달러 1페소 정책이나 브라질의 '헤알플랜' - 지금은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을 보면서 중국의 위안화가 생각났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집권 페론당이 아예 페소를 폐기하고 달러를 사용할 것을 공식적인 정책으로 주장하고 있다는데요.
반대편에서는 - 제가 보기엔 - 시시콜콜하게 화폐의 대미 종속을 우려하고 있다고 하네요.

'1달러 1페소'정책이나 '헤알플랜'이란,
일종의 고정환율제입니다.

원래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달러와 자국화의 판매비율에 의해서 자유롭게 결정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경제력이 약한 국가들의 경우는 화폐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합니다.

이것을 우려한 저개발국들이 사용하는 것이,
자국화폐의 가치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켜버리는 것입니다.

동남아에서도 태국이 통화바스켓이라는 유사한 제도를 사용했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폐기를 했고, 헤알플랜을 사용한 브라질의 카르도수 대통령도 결국 94년 외환위기를 통해서 이를 폐기하게 됩니다.

달러와 자유롭게 경쟁하자니 너무 저평가를 받아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하고,
달러에 고정시켜버리자니 너무 고평가되어 투자나 금융계가 불안해하고,
물가안정이 지상과제인 국가의 입장에서는 결국 버틸 때 까지 버텨보는 식입니다.

그나저나, 페소를 포기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원화를 포기하고 달러를 사용한다.

기분이야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이겠지만,
글쎄요. 사실, '화폐종속'이라는 것 자체는 굉장히 새삼스러운 반론이라는 점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페소화를 쓰느냐, 아예 달러화를 쓰느냐.
이 두가지의 갈림길에서 화폐종속여부란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세계화 된 경제에서, 화폐주권이란 그리 큰 차이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 환율을 그대로 쓰나, 미국 환율의 변화는 것 대로 자국의 환율을 조정하나.
차이란 미미한 것 아닐까요.

아 좀 더 공부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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