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정치 사상 현대의 지성 67
브라이언 레드헤드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3월
평점 :
품절



# 들어가며

요즘엔 빛바랜 책들을 연이어 보게 되는군요.

『서양 정치 사상』이라고, 영국 BBC 라디오 방송의 정치사상강좌 원고들을 묶어낸 책이라고 하는데,
짤막한 원고에 플라톤에서부터 마르쿠제, 한나 아렌트까지, 열댓명의 사상가들을 담고있습니다.

이번 후기도 각 사상가들에 대한 단편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는 건너 뛰었습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 『군주론』

1513년에 집필한『군주론』덕택에 '마키아벨리적인' 이라는 형용사까지 달고다니는 불명예를 감수하고 있는 분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교묘한 정책과 교활한 협잡, 폭군 정치 지향'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 불명예라고 할 만 하죠.

하지만, 저자는 『군주론』을 독해함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16세기 이탈리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변호?합니다.
구체적인 역사를 모르니 쉬이 이해하는데에 무리가 있습니다만, 16세기이면 중세의 말미이니만큼 대략적인 밑그림은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마키아벨리가 암묵적으로? 『군주론』을 헌상하게되는 메디치家의 경우 신흥교역가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에 생각이 미치는군요.

여튼, 마키아벨리는,
타락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모든 윤리적인 규범을 무시해버릴 마음의 준비를 갖춘 무자비한 군주만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고 한 덕분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있지만,
제 생각엔, 그가 내린 결론에만 천착하기 보다는, 결론에 전제되어 있는 가치판단들을 살펴보는 편이 더 생산적일 듯 합니다.

예를 들면, 군사적 기율이나 종교신앙을 중요한 정치수단으로 바라보았던 점 같은거요.
충분히 논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런지.

# 쟝 칼뱅 - 『기독교제도론』

'종교개혁' 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 칼뱅과 루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등교육의 영향이죠. 아니, 루터의 그것이 칼뱅보다 좀 더 자유분방했다는 것 까지가 고등교육의 영향입니다. 므흣

칼뱅과 루터의 차이는 칼뱅의 단언으로 더욱 두드러지는데,
칼뱅은 "기독교도의 자유가 기독교도의 의무를 결코 능가할 수는 없다." 고 했다죠.

고위 성직자들의 전제정치, 가톨릭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부와 권력.
칼뱅은 딱 거기까지만을 바랬던 것 같네요. 복음이 지향하는 바대로, 순수하고 물욕을 버린 영혼성의 회복. 이런거요.

어쩌면, 칼뱅과 루터를 묶고있는 '종교개혁' 이라는 분류?가 다소 피상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저자 역시도 후일의 자유주의 사조가 칼뱅에게 빚을 지고있다고 표현했지만,
본원의 종교로 돌아가려했던 칼뱅과, 잠재적이지만 종교로 부터 벗어나려 했던 루터의 그것은, 방향 자체를 달리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나마 생각해봅니다.

참, 종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김규항씨가 『예수이야기』라는 책을 준비중이래요.
지금 집필이 끝물이라는데, 동네 주민들하고 마가복음인가 누가복음 읽기?토론?을 하고있답니다. 내년 3, 4월 중이면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이야기』돌베개 출판사와 계약했답니다. 후후 개인적으로 김규항씨 좋아요.

# 토마스 홉스 - 『리바이어던』

홉스의 성장기를 보면서, 아담 스미스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거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귀족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는 출세구도?라고나 할까.
아담 스미스는 OO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있다가, 무슨 귀족집안 가정교사로 들어가 대륙여행을 한 것이 기회가 되어 대륙의 자유주의 사상가 - 흄이나 밀과 같은 - 들과 교류할 기회를 맞게 되거든요. 홉스 역시도 윌리엄 카벤디쉬 집안의 가정교사 노릇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당시 섬나라의 학자들에게는 일반적인 출세구도라고 하는군요.

저자는,
홉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홉스 이전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좀 더 정확하게 종교개혁 세력의 도그마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리바이어던』도 그렇고, 홉스는 쉬이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 존 로크 - 『인간오성론』, 『관용론』, 『정부에 관한 두 논고』

서유럽의 철학이니 정치사상 사조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라도, 로크부터는 친숙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신민들의 동의('신민'이 뭐죠?)가 정부의 정통성을 근거한다는 점이나, 종교적 신념과 실천의 자유에 대한 옹호, 재산권의 근거로서 노동을 중시했던 점, 등 오늘날에는 꽤나 당연시되는 논리들이 그 당시에는 굉장히 급진적인 주장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 장 자크 루소 -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 『에밀』, 『엘로이즈』

드디어 루소가 나왔군요.
루소는 우선, 정치를 인간의 삶의 핵심적인 요소로 보았다는 점에서 특이할 만 합니다. 관념이 아닌 물질적인 조건에 천착했다는 점이,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겠죠.
우리들의 악함은 본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나쁜 방향으로 통치되었기 때문이라는건데. 그는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으로, 제도나 문명 자체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전 종교개혁이나 계몽주의에 가려진 루소의 다른 관심사들에 더 매력을 느꼈는데요.
루소는 정치사상 외에도 교육이나 음악, 인류학, 식물학,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고 합니다.

특히,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에밀』에 서술되어 있을 교육에 대한 관점이나,
「연극론」에 쓰여있는 문화에 대한 입장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본문에 짧게 소개된「연극론」을 보면,
루소는 직업적인 배우들에 의한 연극의 대안으로서, 인민들이 함께하는 그리고 우애가 넘치는 페스티벌을 제안하였다고 하네요. 집단적인 자기 표현의 아이디어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이는 독재에 대한 인민 주권이라는 그의 정치사상과 같은 맥락을 타고있구요.

모르긴 해도, 루소의 「연극론」은 예의 문화의 상품화를 걱정하는 예술인? 문화인?들의 고민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있는 듯 합니다.
'집단적인 자기 표현의 아이디어' 무대나 마당에 서봤던 분이라면 한번쯤 설레였던 고민거리 아니었을까요.

# 잠시, 사물놀이와 풍물굿에 대해서

루소의 「연극론」이 이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새 서너해가 지나버렸지만, 연이은 술자리와 함께 하나 둘 동기들을 춘천으로 의정부로 떠나보내던 그 해에,
전 입대도 전자전기공학도 다 물리치고 문화만을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덕분에 다시금 같은 술자리에서 떠나보낸 동기들을 맞이하고, 또 그 자리를 빌어 느지막히 의정부로 떠나는 동기가 되었지만.
참 행복했던 한해로 기억을 합니다. 루소의 「연극론」이 그때 끌어안고 있었던 고민들에 '자기 표현으로서의 풍물굿' 이라는 제목을 붙여주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해요.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스물하나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전라북도 고창으로, 홍대 근처의 사회패로, 인터넷 자료실로, 무던히 돌아다녔습니다.

열정의 깊이에서 쉬이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사물놀이를 만든 김덕수씨가 그랬을까요.
그 역시도, 풍물굿 역시 하나의 문화상품이 될 것이라는 시안을 가지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풍물굿에서 다른 요소들은 차치하고, 음악적인 요소 시각적인 요소만을 뽑아 특화시켰고, 오늘날엔 '사물놀이' 라는 파생명사가 '풍물굿' 이라는 본명사를 압도할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저와 제 몇다리 선배들, 그러니까 90년대 중후반에 풍물을 고민한 사람이라면 의례 김덕수씨에 대한 묘연의 감정들을 가지고 있을겝니다.
'외다리 풍물굿' 이라 비꼬았던 사물놀이에 대한 반정립을 합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학교축제에 관성적인 공연만 올리던 우리들이었으니까요.
(선배님들 미안 훌쩍)

하지만, 우리의, 최소한 제 깊은 바램은,
풍물굿의 '자기 표현적 요소'를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애가 넘치는 페스티벌' 설레이지 않나요?
루소의 표현 역시도 풍물'굿'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건 '굿판'이 '공연'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미있는 몸부림의 제목이기도 하구요.

# 아담 스미스 - 『도덕감정론』, 『국부론』

오랜만에 그나마 친숙한 분이 등장했네요.

스미스에 대한 언급을 재차 접하면서 더욱 뚜렷해지는건,
스미스로부터 배우고자 한다면, 이제껏 그를 상징해왔던 '보이지 않는 손' 의 무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스미스는 오늘날의 시장신봉자들과는 다르니까요.

저자의 경우, 익히 알려져있는 스미스의 태도, 이를테면 시장의 자율적 질서나 정부 역할의 축소에 대한 부분 외에,
스미스의 두 저작 사이의 연관관계를 밝히면서 이 부분을 좀 더 명확히 밝혀주고 있을 뿐 아니라, 스미스의 정치적 견해의 단편 또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두 저작의 관계는 '인식의 확대'라고 생각하시면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도덕감정론』에서 다루고있는 한 사회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응답을 정치, 제도의 차원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국부론』이죠.

이는 『국부론』에 대한 곡해를 줄인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흔히 경제적인 변화들은 기존의 정치나 제도의 압력을 이겨내려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치, 제도의 변화들은 다시금 경제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미 종교개혁이나 왕정의 붕괴와 같은 정치, 제도의 변화의 시점에서,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원리를 논증하는 성격을 띄고있다는겁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진보적이었던거죠.

그 외에도, 스미스가 이윤율의 지속적인 감소 경향이나 계급 분화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당시 영국의 식민지 시절 (오늘날 미국의) 식민지 주권에 대한 스미스의 입장들을 주목할 만 합니다.

# 존 스튜어트 밀 - 『자유론』

고전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는 평론이었습니다.
단편은 말 그대로 단편으로 그치고, 『자유론』꼭 한번 읽어볼 참입니다.

밀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은 일종의 비주류적인 그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라는 세풍 밑에서,
밀은 법률이나 여론, 관습의 질곡에 대해서,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로 전락할 가능성에 대해서,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물론이요,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의미한 문제제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외에도 밀은, 정치와 교육, 산업 전반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한 저자의 논평까지 함께 담겨있습니다.

" 창조적인 갈등이 빈번히 표출되는, 그리고 서로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되 자신들이나 남들에게 결코 무비판적이지 않은 사회, 개인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그러면서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고, 시장 경쟁의 장점을 보존하는 사회 "

밀이 꿈꾸었던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라고 합니다.

# 칼 마르크스 - 『자본론』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역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자는 논평 전체에 걸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치고 있습니다만, 두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첫째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에 대한 주된 오독 중에 하나인 경제결정론에 대한 반비판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흔히 마르크스-엥겔스로 불리우는 엥겔스의 그것을 마르크스와 차별화시키는 점입니다.

"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그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직접 맞닥뜨려지는, 주어지는, 그리고 전승되어지는 상황 속에서 그것을 만드는 것이다. " - K.마르크스

# 버트런드 러셀, R.H.토니, 존 롤즈
# 허버트 마르쿠제, 한나 아렌트 - 각각, 『에로스와 문명』, 『전체주의의 기원』

마지막 두 단락의 경우 논평 자체가 그리 매끄럽지는 못한데,
각 사상가들이 주목받게 된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는, 특징적인 측면만을 짧게짧게 언급하는 것에 그칩니다.

어디까지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원고라는 제약이 한몫 한 것 같아요.
대략의 분위기를 옅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나오며

입문서는 어디까지나 입문서인지라, 몹시 빈약한 후기가 되었습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루소의 『에밀』『사회계약론』 『연극론』,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밀의 『자유론』,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몇편의 고전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게 된 것이 나름의 소득이기도 했습니다.

입문서. 참 계륵(鷄肋)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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