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생태적 다양성' 이라는 단어가 오래도록 남네. 주위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인데.
그런데, ‘반개발’ 과 ‘탈중심화’ 라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생각은 충분히 긍정적이긴 하지만,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음 일상의 스트레스에 아둥바둥 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싶다. ” 는 흰소리들을 많이 하는데, 이 흰소리가 어찌보면 개발중심적이고 소비중심적인 사회에 대한 내면의 저항일수도 있겠다 싶거든?
그런데, 실제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짓는 사람은 거의 없지.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값싼 부동산을 매입해서 전원주택을 짓는 경우가 훨씬 많고.

‘반개발’ 과 ‘탈중심화’ 는 늘 한편의 기획으로 끝나버리곤 했다는거야.
‘라다크 프로젝트‘ 그룹에서 시행한 유기농업을 장려라던지, 지역 전통공예품과 소규모 태양열 기술의 개발,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에게 생태적 인식을 높이는 일 역시도,
본래의 긍정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편의 기획으로 끝나거나 변형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건데..

라다크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곳이 이미 세계경제의 일부분으로 충분히 편입된 이후라면, 유기농업이나 전통공예품과 같은 생태적인 기획도, 결국 ‘상품‘ 으로 평가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비용상에서 밀리는 라다크의 상품들은 시장에서 밀려 자취를 감추거나, 혹은 오늘날의 웰빙상품들처럼 변형 왜곡될 여지가 있을 수 있고.
거기서, 헬레나 할머니는 ‘시장과 상품을 소비하는 합리적 개인만을 상정할 때 그렇겠지요.’ 라고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지.

앉은 자리에서 이리저리 재면서 볼 일 다보겠다는건 아니지만,
‘반개발’과 ‘탈중심화’ 가 가진 일종의 ‘한계지점‘ 을 고민하게되는 대목이지.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코피 쏟아가며 수능 시험을 준비해야하는 고3 수험생들에게 공부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 듯이, 오늘날의 개발도 그런 것 아닐까. 그들 모두는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길 꿈꾸지만, 그러지 못해. 여기서 벗어난다는건, 단지 수능시험에서 벗어나는게 아니라 취업이며 자아실현의 기회에 대한 박탈, 생존에의 박탈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

그런데, 한 학생이 있다고 해. 이 학생이 진심으로, 게을러서가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고3 수험생들의 고된 현실이 안타까워서 ‘반수능’을 외쳤다면? 아니, 좀 더 나아가서 ‘대안학교’ 모델은 어떨까?
‘반수능’의 결말은 물론이요, 건방지긴 하지만 대안학교 모델 역시도 흔히들 동경하는 서구식 교육까지가 최선은 아닐까?

‘수능지옥에서 벗어난‘ 으로 시작하지만 ‘이번에 어디학교 수시로 합격했어요’ 로 끝나는 모 TV 프로그램의 씁슬한 대안학교 소개장면처럼.

‘반개발’과 ‘탈중심화’가 개발지상주의에 길들여진 입맛에 별미 정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헬레나 할머니의 ‘반개발’ 이 그저 개발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면, ‘탈개발’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은데. 벗어난다는 ‘탈‘ 은, 죄 없는 ’개발‘ 과 죄 있는 ’지상주의‘를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발’에서 ‘지상주의‘ 만을 떼어내는 일일테니까.

헬레나 할머니의 오래된 미래 속편, ‘(가칭) 라다크 프로젝트’ 가 마저 나왔다면 좋았을거야.
프로젝트의 이모저모며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궁금하네.
아 그에 앞서 헬레나 할머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싶고.

마음에 들었다면 프로젝트 후기도 알려주세요-
당신의 후기는 계속 되어야 할 듯. 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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