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미국사 - 한 권으로 풀어 쓴, 이야기 역사 시리즈 한 권으로 풀어 쓴 이야기 역사 시리즈
김종일 엮음, 청솔역사교육연구회 추천감수 / 청솔 / 199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보면 곧잘 샛길로 새곤 합니다.

달러약세에 관한 책을 읽고있었는데, 70년대 환율제 운운하더니, 비교를 한다고 40년대까지, 20년대까지 내려가기에,

결국, 오래된 미국사 한권을 구해 보았습니다.


한국문인협회에 계신 분들이 집필하셨다는데,

고등학생 필독서 시리즈 인 듯, 그저 정치적인 사건을 나열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책을 뒤적거리며 떠올렸던 몇가지 메모를 정리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할까 합니다.


# 독립전쟁


이주민의 역사로 알려져있는 미국의 초기, 그러니까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미국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이주민들의 정부(식민지 정부)와 본토정부(영국 정부) 와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주민들의 경우,

유럽의 식민지산업에 의해 건너온 무리와, 종교적 박해를 피해 건너온 신교 무리가 있다고 익히 알려져있는데,

실제 갈등의 표출은, 정치적 갈등 보다는 무역제재에 따른 경제적 갈등이 대부분입니다.


식민지에서 모자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자법을 비롯해서 제철법, 설탕법, 인지세법, 타운센트법, 그리고 잘 알려진 보스톤 차(茶) 사건까지.

대부분 직접적인 무역제재나 관세조치, 교역에 필요한 행정조치들에 대한 세금부과입니다.


결정적으로, 화폐도 만들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데,

『빚의 경제』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화폐의 발달은 산업규모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화폐 생산 자체를 규제했다는 것은, 경제 자체를 움켜쥐고 있는 것과 같았겠죠.


하긴, 음모론으로 익히 알려져있는『그림자 정부』의 이리유카바 최는,

미국의 독립전쟁이, 미국의 화폐를 말살하기 위한 영국 거간꾼들의 음모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전쟁을 하게되면 물자의 생산과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니 빚을 내어 화폐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전쟁을 배후조정한 것도, 빚을 내어준 것도 영국 거간꾼들이라는 겁니다.

영국의 거간꾼들이 전쟁을 이용해서 미국의 신용(화폐)을 고의적으로 확장했다가, 급격히 수축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미국을 장악한다는 것이죠.


실제, 미국은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를 비롯해서 외국에 많은 빚을 졌을 뿐만 아니라, 국내 발행 화폐량도 만만치 않게 많았어요.

그래서, 결국 화폐량을 규제하기 위해서, 화폐로 세금을 징수하고, 화폐 대신 금화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화폐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데,

그 때문에 많은 파산자들이 발생하고, 심지어 세금징수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셰이스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는군요.


# 남부와 북부


이주민의 역사가 독립전쟁으로 끝나면,

'남북전쟁'과 '미국 정당 변천사'가 새로운 이슈가 됩니다.


독립 초기 정당은 연방파와 공화파, 쉽게 연방주의를 주창하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로 나뉘어 시작하게 됩니다.

각 무리의 대표적인 인물이 해밀턴과 제퍼슨. 이 두사람의 지지기반은 각각 북부의 상공업세력과 남부의 농업세력이었구요.


이후에 연방파가 쇠퇴하면서, 공화파가 국민공화파와 민주공화파로 나뉘고, 다시 국민공화파가 민주당-휘그당으로, 결국에는 오늘과 같은 민주당-공화당 구도가 완결되는데요,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퇴색된 측면이 많겠지만,

적어도 초기에는, 구도의 핵심이란 지지기반이 어디인가 - 상공업 세력(공화당)과 농업세력(민주당) - 하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독립 초기로 돌아가서,

연방파의 해밀턴은 초대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했던 인물인데, 그가 시행한 일련의 경제정책들이 재밌습니다.

그는 우선, 연방정부가 전쟁을 통해 지고있던 상당액수의 빚을 국채로 교환해주고, 상공업을 보호 육성하는 정책을 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을 미국에도 설립하려고 했죠.

이는 철저하게 북부의 상공업세력에게 유리한 정책들이니까요.


주로 자유무역에 대한 태도, 중앙은행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를 보였던 정책상의 갈등 역시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후일 남북전쟁으로 비화되는 남부와 북부의 갈등 역시 흔히 노예제 폐지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노예제도라는 정치적인 사건의 배경이, 남부의 면화산업 북부의 상공업이라는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 주목할만하구요.


실제,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한 인물로 잘 알려져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역시,

" 노예제도는 연방을 수호하는 데 관련된 정도만 중요할 뿐이다. " 라고 강조했는데,

노예제도는 정치적인 이슈였다기 보다는,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주도권을 둔 갈등이었던 것 같아요.


# 록펠러와 카네기, 그리고 노동절


남북전쟁이라는 진통을 겪고 난 이후, 미국이 본격적인 성장을 하게되는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이 시기를 이해하는 다양한 코드 중의 하나는, 단연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서부진출이겠구요,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석유왕 존 록펠러, 강철왕 카네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흥미로운 점은,

미국 노동운동의 역사 또한 이 시기, 즉 성장의 시기에 쓰여지기 시작했다는겁니다.

( 전국노동연합, 노동기사단, 미국노동총연맹과 같은 단체들이 설립된 것이 이 즈음이고, 5월 1일 '노동자의 날' 의 발단이 되었던 '헤이마켓 광장 사건'이 벌어진 것 역시 1886년입니다. )


노동조합운동이 경제의 성장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80년대 후반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인데,

이는 분배를 기본적인 이해관계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이 경제의 순환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일면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노동조합운동에 의해 꾸준히 분배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이후 두번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시기를 거쳐 1차 세계대전까지 주욱 성장기(호황기)를 유지했다는 것은,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투자 아니면 분배'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와 분배가 만들어내는 선순환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구요.


이후 미국경제는 물자소비가 많은 전쟁(1914-1919,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성장하게됩니다.


# 29년 경제대공황(Black Monday)과 뉴딜(New Deal)


1차 세계대전을 빌은 전시호황 이후에는,

'29년 경제대공황'과 '뉴딜정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익히 알려진  이 두 사건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타운센드 계획' 이라는 사회보장 입법과 국가산업부흥법, 국가노동관계법과 같은 경제불황기에 시행된 지원법이었습니다.


위 단락에서 서술한 19세기 중반 이후가 대표적인 호황기였다면, 1차 세계대전 이후는 대표적인 불황기였는데,

극과 극으로 보이는 두 시기에 사회보장법이니 노동조합운동과 같은 분배 관련 이슈들이 공통적으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전시에 경제가 호황인 까닭은, 다름아닌 전쟁이 물자의 소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전쟁의 종료와 함께 소비라는 순환고리를 잃으면 순환은 깨어지게 됩니다. 생산만이 남게되죠.


생산은 원활한데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비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상품들은 가격의 하락, '디플레이션(deflation)' 을 부르게됩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서 기업이 생산을 멈추고 실업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있을테니, 좀 다른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선순환이라는 도식에서 빠진 것은 소비. 소비라는 고리만 다시 이어주면, 선순환은 다시금 이루어 질 것이라는 직관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유수의 경제정책 시행자들이 저처럼 직관적인 판단에 의존하지는 않았겠지만, 여튼 뉴딜정책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등장합니다.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가 '소비 자체' 를 자극하는 방법, 즉 신용거래의 활성화나 금리의 인하, 마케팅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후자는 '소비할 수 있는 능력' 을 자극하는, 다소 우회적인 방법입니다. 바로,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겠죠.


뉴딜정책은 후자에 초점을 둔 국가정책이었습니다.

'테네시 계속 개발공사' 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벌여 고용을 만들어내는겁니다. 한마디로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소비라는 선순환의 고리를 채워넣겠다는 것이죠.


불황기에 나타난 사회보장입법과 국가노동관계법의 시행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만들어내는 판에, 극빈층 노동자들의 얼마 안되는 소비마저도 위축시킬 필요는 없었던거죠.


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 이 법은 개인의 욕수충족과 함께 경제의 한정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투자와 성장을 동일시하거나, 역으로 분배를 성장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통속적인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일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뉴딜정책은 그다지 실효성을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정부의 재정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었는데, 빚을 내서 부양한 경기가 다시금 정부의 빚에 의해서 위축당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경제는 1937년을 기점으로 해서 1939년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된 전시호황기 때까지 불황에 빠져들게됩니다.


# 마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20년만에 집권하는 공화당의 트루먼,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마셜플랜을 비롯한 반공정책. 케네디, 닉슨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월남전, 히피문화, 반핵운동. 카터, 레이건, 부시에서 클린턴으로 주욱 이어지고 있네요.

( 95년에 초판된 책이라 클린턴 대통령이 제일 마지막입니다. )


익숙하게 접하는 서유럽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발칸분쟁사』이후로 두번째였는데.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 좋습니다.

앞으로 더 읽어보고 싶어요. 상대적으로 외소했던 남미나 일본에 대해서도.


아 쓰고나니 후기가 좀 그렇네요.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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