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위기 세계 경제의 몰락
리처드 던컨 지음, 김석중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 환율이 1,000원대로 떨어졌죠. 지금도 큰 변동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환율 떨어지면, 당장 괴로운건 수출기업들입니다. 수출을 해서 달러화를 벌어와도 환전하면서 손해를 볼테니까요.


얼마 전에 한은 총재와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원이 환율하락에 따라 다른 평가를 냈다고도 하는데, 다른 평가라기 보다는 환율하락의 일면만을 다룬 평가 같더라구요.

한은 총재는 수출의 입장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은 수입의 입장에서. 수출은 줄어들고 수입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상대적으로 원화가치가 오른 셈이니, 팔기는 어렵지만 사기는 쉬운 셈입니다.


여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구조는 수출의 비중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비중이 큰 수출이 환율 때문에 발목이 잡혔으니, 단지 몇몇 수출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달러의 위기 세계 경제의 몰락』이라는 험악한 제목으로 책을 발표한 리처드 던컨 (이하 던컨) 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에서 오래도록 일해온 경제 분석가라고 하는데요, 던컨은 이를 두고 ‘수출주도형 성장시대의 종결’ 이라는 제목을 붙였더군요.

중국, 일본,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남미 국가들까지, 대미 의존도가 낮은 유럽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대미 의존도가 높은 세계경제라 함은, 쉽게 얘기해서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상품을 주로 미국 소비자들이 구매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계경제를 100으로 보면, 미국 소비자들이 약 30, 그 다음 15개국 정도가 50, 최하위 150개국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이제 미국 소비자들이 더 이상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겁니다. 화투판에서 주머니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마구 바둑알을 사용하며 돈을 잃어주던 친구 덕분에 오늘 저녁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주저주저하는겁니다.


눈치빠른 친구들이라면 이미 눈치를 챕니다. ‘ 저 녀석 주머니 사정이 별로 안좋구나. ’

그리고는 계속 생각합니다. ‘ 이러다가 저 녀석이 아예 판 깨는거 아니야? ’


이런 의심 속에서 이 친구 회심의 제안을 합니다. 제안인 즉은, 바둑알당 30원 하던 판을 바둑알당 10원으로 하자는거죠.

이미 여러판을 따서 바둑알이 이마만큼 쌓인 이 친구. 속이 쓰렸겠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을겁니다.

바둑알당 10원으로 대폭 낮추어 화투판은 계속됩니다.


이것이 환율하락의 배경입니다. 매년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세계경제를 부양했던 미국경제. 01년에 투자가 멈추고, 03년에 소비마저 멈추면서 엔진이 꺼지자,

막대한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던 국가들, 쓰린 속을 움켜쥐고 달러화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 밖에 없는겁니다.


#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가진 돈 모두를 바둑알과 바꿨다면, 주머니사정 이상으로 화투판을 벌이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문제는 귀찮음과 우정이었습니다.

이 친구들 매번 돈과 바둑알을 교환하는게 귀찮았을뿐더러, 수도 없이 바둑알을 꺼내 빚을 지더라도 꼭 갚을거라는 믿음이 있었던거죠.


수도 없이 일어나는 크고작은 국제무역에서 신용이라는게 그렇습니다. 물물교환 시절부터 환거래에 이르는 화폐변천사는 다름아닌 무역의 규모가 커지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화폐가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화폐를 실물과 교환한다는 신용거래를 시작한 것입니다.

국제무역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 신용거래는 필수적이었죠.


이렇듯, 신용이란건 편리하기도 하고, 위험성을 잠재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

그럼, 문제는 이 신용이 가진 위험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겠죠.

신용을 무역에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는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실물경제를 엄청나게 압도해버린 금융경제는 이것이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주식시장에서는, 신용(화폐)으로 신용(화폐 변화의 차액)을 거래하기까지 하니까요.


리처드 던컨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신용‘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신용은 항상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는 신용이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환율제의 변화, 즉 73년 브레튼우즈협약의 파기에서 찾고있습니다.

미국정부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단하면서, 달러는 금이라는 고정된 가치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신용이 통제로부터 멀어지는 순간이죠.


#

던컨은 책의 서두에서 73년 이후의 변화들을 기술하고 있는데,

각국의 지급준비금 구성이, 금에서 달러로 변했을 뿐 아니라 각국 달러보유고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금이 보전하는 화폐가치란 미국정부에 의해 보증된 고정된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환율이 떨어지 후 금을 사모으는 분들이 있었지만, 이제 금의 가치는 엄연히 시장의 시세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


‘지급준비금’이란, 은행에서 예금자들의 돈을 대출해주는 것으로 수익을 올리면서도 일정정도는 금고에 보관하는 것과 같이, 화폐의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각국 중앙은행의 경우 국제무역에서 필요한 달러를 일정정도 보유하죠.


그런데, 달러보유고가 2,000%까지 늘어났다는 것은, 그동안 금으로 가지고있던 가치를 변제하고도 훨씬 남는 액수입니다.

이 정도면 브레트우즈협정이 파기된 이후에 달러 자체가 엄청나게 많이 찍혀나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으로 쌓인 달러의 출처는 미국의 중앙은행밖에 없을진데,

협정 파기 이후로 달러화의 생산, 즉 얼마나 신용이 부풀려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미국은 이 신용을 가지고,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를 부양한겁니다.


#

던컨이 분석한 것과 같이,

73년 이후로 세계적으로 많은 달러들이 넘쳐났고, 통제를 벗어난 달러화에 의해 세계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었음은 기정사실로 보입니다.


그는 이것을 빗대어 ‘과음에 따른 숙취‘ 라고 하는데요.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음주, 즉 소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과도한 생산이 이루어졌다는겁니다.

술을 한참 마실 때는, 풍요로운 생산과 소비 속에서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지만, 술이 자신의 주량을 넘어가게 되면서 과도한 생산을 소비가 감당하지 못해 진통이 따르게되죠.


그런데, 저는 신용이 과도하게 남발된 원인을 협정의 파기에서 찾는 던컨에게 의구심을 갖게됩니다.


협정 파기 이후의 세계경제를 과음에 빗댈 수 있다면,

협정은 ‘오늘은 1병만 마시고 집에서 공부해야지.’ 라는 다짐에 불과할 터인데,


오늘날 경제위기의 원인이 협정을 파기한 데 있다고 한다면,

이는 전날 몹시도 과음한 친구에게, ‘너 1병만 마시기로 했잖아’ 라고 질책하는 것 밖에 더 될런지요.


화폐경제는 지속적인 확장의 역사였습니다. 오늘날 경제규모는 상상도 못할 만큼 커졌고, 이런 경제규모를 감당해야 할 화폐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어렸을 적 삼양라면의 가격이란 십여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 천원을 낸 거스름돈 정도니까요. 그에 따라 환율제 역시도 물물경제에서 단순화폐경제로, 금본위제로, 금달러본위제(브레튼우즈협정)로, 오늘날의 달러본위제까지 발달했구요.


날이면 날마다 다짐을 깨고 술독에 빠져사는 친구라면,

다짐이네 뭐네 잔소리를 늘어놓기 보다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뭐 병원에 데려간다던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