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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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질과 정신의 관계는 어떠하냐?' 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겁니다.


흔히,
유물론이라 하면, 물질이 정신에 끼치는 영향을,
관념론이라 하면, 정신이 물질에 끼치는 영향을 중시하죠.


예를 들어,
갑 을 모두 '성매매'에 반대한다고 가정하고,
두 사람이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는데, 이런 얘기가 오고갔다 치죠.


갑: 사람이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건 있어선 안돼. 남자들이 각성해야 한다구.
성매매는 근절되어야 하니까, 특별법을 강력하게 시행해서 성매매를 못하게 해야한다구.


을: 성매매는 나쁜 것이고 특별법은 시행되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중요한건 돈 문제라구. 성매매를 두고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남자들과 돈이 필요한 여자들이 있는 한, 그들은 어떻게든 포주를 통해서 만날거야. 따라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포주들의 행포가 더 심해질거라는 부작용도 예상해야돼.


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런 얘기들 속에는,
갑과 을이 철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을 떠나서, 물질과 정신에 대한 갑과 을의 철학적 사고가 담겨있다고 봐야합니다.


비유인 만큼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제도라는 강제를 통해서 사회적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갑은, 관념론에,
의식변화는 바람직하지만, 의식변화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을은, 유물론에 가깝습니다.


2.


몇일 전에 제레미 러프킨 교수의 <소유의 종말>을 읽고 난 느낌은,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 은 물론이고, 앨빈 토플러의 <제3물결>, 한스 페터 마르틴이 공저한 <세계화의 덫>, 등과 유사한 그것이었습니다.


첫번째 공통점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풍부하다 못해 질려버릴 정도죠.


제레미 러프킨 교수는 이 책 <소유의 종말> 을 쓰기 위해서,
꼬박 6년 동안, 350여권의 책과 1천여편의 논문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석 부분도 굉장히 두텁구요.


두번째 공통점은, 과거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덫> 의 경우는 세계화 자체를 화두로 하기 때문에 다소 한정되지만,
나머지 책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 자체를 고찰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세심하죠.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을 쉴새 없이 넘나들면서, 흐름을 정식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제기되었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어떠한가.


저는 여기서도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굉장히 관념적이죠. 제도나 의식의 변화에 매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3물결>이야 낙관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이었으니 다소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치더라도,
제3부문 비시장경제 <노동의 종말>, 유럽 경제공동체와의 균형 및 세계적 규모의 통치기구 <세계화의 덫>, 지역 문화 및 교류의 활성화 <소유의 종말> 의 귀결은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이 풀린다고 해야할지.
지금까지 세밀하게 사회의 변화들을 고찰하고서는, 반면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는겁니다.


" 이렇게 이렇게 변했는데 이게 문제니까 이제 이렇게 하자? "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고 난 독자의 한마디.
" 그게 말처럼 그리 쉽간디?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식으로 이것저것 끄집어내는 즉흥적인 방식이 아닌,
맥락있게 문제를 짚어내는 이들의 노력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3.


제레미 러프킨 교수가 얘기한 <소유의 종말> 다음에 오는 사회는 접속의 시대입니다.


'접속의 시대'
이 그럴싸한 제목이 조금 낯설다면, '정보화 시대' '네트워크 시대' 라고 불러도 괜찮겠습니다만,
<제3물결>의 앨빈 토플러는, 이런 단어들이 모두 마음에 안든다면서 '제3물결사회' 라고 뭉뚱그려버렸죠.


뭐 사회의 변화라는 것이 일부분에 한정되어 일어날 수 없다는 점만 이해하시면,
앨빈 토플러님과의 갈등은 피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밤낮 연구만 전문적으로 하는 학자가 아닌 바에야,
사회 전반적인 변화까지 바라본다는게 쉽지 많은 않은 일이고,
직접 느끼지 않으면 별로 다가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당장 우리가 느끼는 것이야,
요즘엔 안정적인 직장이란 없다더라는 정도,
요즘엔 근면 보다는 창조적인 사고가 좀 더 대우를 받는다더라 정도,
요즘엔 재테크를 다들 일찍일찍 시작한다더라 정도겠죠.


뭐 그럼 여기서 시작해보는겁니다.


사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할 때 하더라도,
왜 그런지 정도는 알고있어야 하니까요.


4.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창조적인 사고를 더 크게 인정해주는 것도 모두 기업이니 만큼,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빠르겠죠.


이를 단순히 보면,
기업의 생산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구조조정 같은거요.


요즘 기업들은 최대한 덩치를 줄이려고 하죠.
운영과 브랜드, 마케팅, 판매망을 제외하고는 될 수 있는 한 소유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뭐 유명한 회사 중 하나인 Nike만 보더라도,
Nike는 생산공장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회사니까요.
대신, 입지가 좋은 해외업체와 생산계약을 맺죠.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 역시도,
실제 생산라인에는 현대자동차 직원이 반, 하청업체 직원이 반 이러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기업의 생산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한번 더 생각하셔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업의 생산방식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니까요.


고용의 좌지우지 하는 것이 기업이라면,
기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시장이죠.


결국, 고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시장이 되는 셈입니다.


5.


뭐 시장이란게 그렇습니다.
빵집이 잘된다더라 하면 우 빵집으로 몰려갔다가,
PC방이 잘된다더라 하면 우 PC방으로 몰려가죠.


물론, PC방으로 사람들이 몰려간 것은,
빵집 장사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기도 하죠.
빵제조업이라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산업분야야 다양하지만, 사람은 더욱 다양한 법.
이렇게 만들어낸 여러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는 것은 금방이겠죠.


이런 식으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되면,
즉, 동네에 빵집이 있을 만큼 있다면,


이제 빵집이 있다는 것 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듭니다.
빵집을 차리긴 했는데, 장사가 안될 수 있는겁니다.


빵집 차리는 문제가 끝나면,
이제 문제가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빵을 많이 만드는 문제로, 빨리 만드는 문제로.
그리고, 또 옮겨갑니다.
빵을 맛있게 만드는 문제로, 빵을 배달해주는 문제로.
계속 옮겨갑니다.
빵 판매 이벤트의 문제로, 문제로 문제로..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수많은 빵의 문제들을 다시 한번 보시면 산업의 이동이 보입니다.
제조업(빵집 차리기, 빵 많이 빠르게 만들기) - 서비스업(빵 배달하기) - 마케팅산업(빵 팔기 이벤트) 까지,
빵 산업의 변천이라고나 할까.


뭐 그뿐 아닙니다.
이렇게 이동하는 빵집 사장님의 고민에 따라 빵집 종업원들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겁니다.
사장님은 이제 면접에서 이런걸 물어보니까요.
" 자네 1분에 빵 몇개 만들 수 있나? " 가 아니라, " 자네라면 빵을 어떻게 팔겠나. "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빵집 사장님은 빵공장을 팔아버릴 수도 있겠죠.
빵 기계니 배달이니 다른 빵집과 크게 차별화 할 수 없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테니까.


6.


빵에 관한 이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곰곰히 보면,
사실 특별할게 없습니다.
그저 빵을 팔기 위해서였죠.


빵집 사장님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빵을 팔기 위해서)' 라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결국, 시장의 문제라는겁니다.


빵집 사장님의 고민이 무엇이건, 빵집 종업원의 고민이 무엇이건,
노동의 시대건, 접속의 시대건,


결국은, 빵을 팔기위한 일대 헤프닝,
즉 시장의 문제입니다.


러프킨 교수의 풍부한 근거자료와 세심한 전개논리 속에 소외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점입니다.


그는, 빵집 사장님의 심리 변화와 각 빵집의 판매전략 판매조건 등을 각양각색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 동네 빵집 뿐만 아니라 옆 동네 윗 동네 빵집들까지 모조리 조사하고 분석하지만,
결국은 시장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저작 <노동의 종말> 이 빵집 종업원들의 애환을 담은 것이라면,
<소유의 종말> 은 이제 빵집 브랜드로 체인사업을 벌이는 빵집 사장님과 그렇게 빵집 사장님과 멀어진 빵집 종업원의 애환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경영 컨설턴트 - 피터 드러커와 같은 - 의 명언에 혹하지 맙시다.


그의 명언도 결국 이게 전부니까요.
" 우리에게 중요한건 빵집이 아니다. 빵을 사는 고객일 뿐이다. "


경제학자들에게도 기죽지 맙시다.
" 우리는 빵을 먹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팔기 위해 만들 뿐. "


7.


여튼,
제가 러프킨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잡히지 않으면서 예시만 무지하게 많으니까요.


여튼, 시장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뺀체 제방업계에 대해서 장황하게 서술한 러프킨 교수 종말시리즈의 결론은,
'제3부문 비시장경제'<노동의 종말> '지역 문화의 활성화'<소유의 종말> 입니다.


그런데, 원인이 빠져있는 문제 분석에서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의 결론은, 제도와 의식 변화를 촉구하는 관념의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 이렇게 이렇게 변했는데 이게 문제니까 이제 이렇게 하자? "


그래서, 다시 한번.
열심히 책을 읽고 난 독자의 한마디.
" 그게 말처럼 그리 쉽간디? "


8.


왜 어려운지 차근차근 얘기해보겠습니다.
빵 얘기를 하려던건 아니었는데, 빵 얘기가 나온 김에 계속 빵 얘기로.


'제3부문 비시장경제'란 이런겁니다.


예전에 10명이 필요하던 빵공장에 제빵기계가 들어오면서 이제 제빵기계 운전하는 1명만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명은 빵 포장하는 일로 바뀌었는데, 또 포장기계가 나와서 8명은 다른 일로.


뭐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아무리 다른 일로 사람을 돌려도 한계가 있죠.
결국 빵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빵집 종업원들의 생계가 걱정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빵집 종업원들에게 새 일을 주는겁니다.
다름 아닌, 노인정 봉사활동!


빵집에서 한달에 100만원을 받던 갑동이는 노인정 봉사활동의 필요성을 강의받은 후, 봉사활동을 하면서, 50여만원의 사례금을 지급받죠. 그리고, 생계비 지원 명목으로 세금 면제, 혹은 교통비 면제도 이루어지구요.
국가의 재정 지원은 세금 확충을 통해서 해결합니다.


결국, 세금을 통한 생계 지원.
서유럽 복지국가들의 모델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제3부문 비시장경제이죠.


하지만, 리프킨 교수가 제3부문 비시장경제라는 대안을 담은 <노동의 종말>을 발표하고, 학계 경영계에 바람을 넣은 것이 95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서유럽 복지국가들은 꾸준히 복지정책을 축소해왔으니까요.


( 오해가 생길까봐 말씀드리는데, 서유럽 복지국가의 사례는 저 역시 충분히 다루어보지 못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의 분위기 부터, EU 로의 결속이 더해지는 오늘까지의(엊그제 헌법 발표했대요.) 변화는 리프킨 교수의 모델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


[보탬]


<소유의 종말> 독서후기를 쓰려고 하다가 얘기가 장황해졌네요.
나름대로, 리프킨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글로 풀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다음 후기에는 그의 예민한 지적들을 담아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소유와 접속' 이라는 관념에 대한 다방면적인 접근들은 굉장히 뛰어났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소유의 종말' 이라는 화두에 대한 우리나라의 실정도 돌아보고 싶고.
정보산업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최근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도,
러프킨 교수가 던져주는 문제의식은 참 많습니다.


아 결국 후기는 못쓰고 잡담만 늘어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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