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나라 인간 나라 2 - 세계 정신 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 신화의 세계편 신의 나라 인간 나라 2
이원복 글 그림 / 두산동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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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정말 회원분들 이름이 가물가물하네요.
요즘엔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문득 '아 이 책에 대한 후기를 누가 올렸더라?' 할 때가 있습니다.


몇일 전에 신화와 관련된 만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주옥같은 후기들. 정말 아쉽습니다.


이원복 교수 다들 아시죠? <먼나라 이웃나라>로 알려진.
<먼나라 이웃나라> 외에도 다양한 경제분야 관련한 저작도 써내셨었는데,
작년께인가 해서 종교, 신화, 철학을 주제로 한 책이 나왔죠.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 시리즈.


2.
여러분은 신화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신가요.
제 경우엔 신화가 꽤 따분하게 느껴졌었거든요.
(북클럽에 독서후기가 올라왔을 때 더 진지하게 읽어둘걸 그랬나봐요.)


지금은 굉장히 다른 느낌이랍니다.
철학 이전에 종교가 있었다는건 알았는데,
종교 이전에 신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답니다.


철학은 Philosophy.
Philo(지혜) + Sophy(사랑). 인간의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가까운 신화 속의 신이든, 종교 속의 절대신이든, 신의 행동과 말이 아닌 인간의 지혜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철학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3.
좀 더 따져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신화와 종교의 차이?
신화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철학으로의 변화들을 보면, 변화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여기서의 변화란 신화가 종교로 대체되고, 종교가 철학으로 대체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설명방식에 새로운 설명양식이 보태어지는 과정입니다.)


신화와 종교를 비교하는데에는,
① 경전의 유무 ② 번안의 가능성 ③ 윤리나 도덕과의 연관성 ④ 민족, 집단과의 연관성
등등으로 기준을 둘 수 있다고 합니다만,


꼭 이렇게까지 체계화하지 않더라도,
그 왜 삘(Feel)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뭔가 엄숙함의 깊이가 다르죠.
엄숙함이라는 것은, 권위와 연관이 있구요.


종교와 신화는,
모두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되,
종교는 권위있는 이해. 비약하자면, 강요된 이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종교에는 번안의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의 이해, 하나의 통치질서가 필요해진 것이리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또 이렇게 따져보는거죠.
역사적으로 하나의 통치질서가 필요해진 때라면? 왜?


4.
그런데, 사실 이렇게 호들갑이면서도,
신화 자체가 그리 흥미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 건너뛰며 몇시간만에 주욱 읽어나갔죠.


신화도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시대에 신화가 있었다면, 지금은 철학이 있고 과학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과학이 숨쉬고 있는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신화의 스토리가 아니라, 신화의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화의 정신. 스스로의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적극성이겠죠.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
스스로의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적극성.
생각 생각.
그런데, 생각하는 것에 참 게을러지는 우리입니다.


주제넘는 소리지만, 스스로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환경, 주어지는 일들에 허덕이고 있지는 않은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대학 다닐 때는 취업을 위해서, 직장 다닐 때는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서, 결혼 후에는 자식을 위해서. 수많은 '위해서'들.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들에 적응하기에 너무 바쁜건 아닐런지요.


잠시 뒤쳐질지라도 한번 멈춰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주어진 조건들에 적응하는 방법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들 자체를 이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뜬금없었네요. ^^;


[보탬]


저도 아직 종교편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종교가 신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느니만큼, 신화편에서도 종종 소개가 되었습니다.


오 이것도 굉장히 흥미있더라구요.
특히,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조로아스터교.


어린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관련 서적 있으면 소개 좀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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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교수님
 
전에 한참 토론 비스무레한 것이 벌어진 적이 있었죠.
그때 어떤 회원분께서 북클럽은 독서 동아리이니까, 순수 독서후기에 좀 더 중점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었구요.


그때 전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죠.
순수한 독서후기와 안순수한 독서후기를 나누는 기준이 있기는 한걸까 라구요.


책에 있는 내용만을 다룬다고 해서 순수한 독서후기이고,
현실을 다룬다고 해서 안순수한건 아닐테지요.
어차피 책에 쓰여진 글이든, 사람의 말이든, 행동이든, 알게모르게 현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책을 읽을 때 필요하다는 `배경지식` 은 그래서 쓸모가 있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기 위해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사회적 변화들을 알아야 쉽게 혹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처럼.
(얼마 전에 썼던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대한 후기에서도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대적으로 축소왜곡되어 출판된 점을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책을 읽고 쓰되, 책에 없는 내용을 쓰는 독서후기가 더 잘 쓰여진 독서후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없는 내용을 쓴다는 것은, 책에서 배우고 느낀 내용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다는 뜻이죠.


에구 서론이 길어졌는데요,
저 역시 이원복 교수님의 경제관련 저작 (서울대 송병락 교수님하고 같이 썼었죠)들을 보면서 진홍님과 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마찬가지 맥락에서,
사람의 생각의 표현인 말이나 글(책)이 얼마나 순수성(중립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꽤 부정적입니다.
더군다나, 현실에서 힘과 우위를 다투는 주제를 비교 내지 분석하는 성격이 글이라면 더더욱이요.


우위가 존재하는 현실을 중립성을 견지한 투명테이프를 덧붙인다는 것은 곧,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위가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보면,
`작가의 시각`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의 우위` 가 되는 셈입니다.
이 교수님의 만화 역시도 현실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셈이 되겠구요.


그래서,
이 교수님의 만화를 보는 진홍님께서는,
만화의 순수함과 안순수함이라는 잣대 보다는, 만화가 반영하는 현실의 우위 자체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시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종교편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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