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의 아들 - 양장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79년에 쓰여졌으니,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네요.
그해 있었던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심지어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졌다는 소설.
이제서야 읽고나니,
지난 찰나의 기억들이 새삼스럽네요.
책을 덮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좋은 느낌을 받아 부족하나마 몇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마음 무거움을 덜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아서요.
게시판을 둘러보니,
몇분의 후기도 찾을 수 있었는데,
설혹 지루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의 아들>의 어떤 부분에 주목하셨는지요.
神과 종교에 대한 반정립? 아니면 神과 종교로 대변된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한 도전?
듬성듬성 읽은터라,
조금은 뻔한 (하지만 중요한) 결론을 내며 책을 덮었으나,
이남호씨의 서평을 읽으며 좀 더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 생겼습니다.
종교와 신에 대한 변증법적 반정립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반정립의 주체가 민요섭과 조동팔 두명이라는 것에 착안한다면 조금 더 재밌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거죠.
민요섭과 조동팔 모두 현실의 모순 위에 선 기독교적 신앙과 실천에 대해서 회의했고, 인간의 정의에 주목하였으나,
민요섭이 '신앙'이라는 테두리 주위를 배회하며 새로운 신앙을 찾았던 반면에,
조동팔은 틀 자체를 벗어나 있었다는 발견이 그것입니다.
소설의 시작이자 시간상의 끝 무렵,
(어떤 이유에서) 지친 민요섭은 기도원으로, 즉 神에게로 돌아가게되고,
이를 본 조동팔은 그에게서 '기독교적 신앙'이라는 테두리를 벗게했던 (물론, 그에게서는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색깔이 두드러지지만) 민요섭의 회기를 보면서,
그 자신의 정체성 상실을 두려워하며 민요섭을 살인하게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처럼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요섭은 왜 회기했을까?
그리고, (서평에서 비판스럽게 다루어지고 있는) 조동팔의 극단적(?) 탈주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여러분들과 같이 얘기해봤으면 좋겠네요.
참, 마지막으로,
뻔하지만(?) 중요했던 결론에 대해,
'어쩔 수 없다' 며, 이기적 인간의 본성이라는 허울에 숨어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말고,
자신조차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과 문제를 포괄한 구조조차 고찰하지 않은 불평 불만만을 늘어놓지 말고,
비록 때로 굽히고 꺽이더라도, '사람이 만들어야 할 희망' 앞에 '사람의 정의' 앞에 솔직하고 당당해야 하겠다는 다짐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사람의 정의' 가 그들의 교과서에나 나오는 빛바랜 도덕적 문구는 아니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