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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선택 룰라
브리 뚜 알비스 지음, 박원복 옮김 / 가산출판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1.
브라질은 우리나라와 굉장히 비슷한 역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에 의해서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고, 60년대 군부독재와 70년대 브라질의 기적이라는 경제호황기를 누렸죠.
80년대 들어 군부독재가 끝나고 들어선 민간정부에서는,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서 많은 폐단을 낳게 되구요.
5천 4백만 명이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고, 15%가 넘는 실업율.
3%의 인구가 차지하는 토지가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하는 반면, 최빈층 40%는 1%만 소유하고 있는 나라.
가장 높은 수준의 세금과 불평등한 세금구조, 2천5백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외채더미가 브라질을 상징합니다.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벨기에와 빈부격차를 상징하는 인도의 합성어인 '벨런지아'라는 별칭이 나타내듯이,
경제규모 세계 12위 이면서, 세계최고의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공존하는 나라.
브라질입니다.
2.
2002년이었습니다.
신문 사회면이나 국제면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했던 기사가, 브라질에서 좌파정권이 집권했다는 대선 기사였습니다.
그 주인공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그냥 '룰라'입니다.
18세에 수도공으로 시작해서,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그리고 3차례의 낙선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겁니다.
그의 당선이 이렇게 이슈가 되었던 것은,
단지 좌파정권이라는 사실 외에도, 선거가 유례없이 많은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인데요,
위와 같은 사회적 갈등 속에서, 뭔가 달라질거라는 기대감이 많은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냈겠죠.
국제사회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조중동 메이저급 신문들은 그저 '좌파'라는 단어를 부각시켜 이미지 만들기에 여념을 없었을텐데, 그건 그렇다 치고,
민주노동당을 비롯해서 노동계 인사들이 줄줄이 성명을 발표하고 그 중 몇몇은 브라질로 건너가기도 했던 사실이 기억에 남습니다.
2002년이면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그 즈음이었을테니,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노동계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룰라, 그리고 그가 속한 노동자당(PT)의 집권이 반가웠을만도 합니다.
자신들이 그리고있는 미래가 될테니까요.
3.
그런데, 막상 브라질의 분위기는 그들이 기대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입니다.
저자인 브리뚜 알비스씨의 논조는,
엄하게 말해서, 룰라가 좌파적인 성향을 계속 유지했다면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것이거든요.
이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논평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룰라는 89년, 94년, 98년 3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여러차례의 낙선을 거치면서 그의 정치 경제적인 입장을 상당부분 절충하는 과정을 거치게됩니다.
미국에 대한 태도, IMF, IBRD와 같은 세계금융권에 대한 태도와 같은 정책기조나 대외발언도 많이 물러졌구요.
극좌파에서 중도좌파로 우향우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급기야 그의 선거 캠페인은 '평화와 사랑'이었을 정도로 두리뭉실해집니다.
( 두리뭉실하다고 표현한 것은, '평화와 사랑'이 언뜻 보기에 말은 좋지만,
굉장히 구체적이고 이해타산적인 현실 정치영역에서, 평화니 사랑이니 하는 단어들은 불분명한 정책기조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대선 당시 룰라 후보의 경제정책 참모 기도 만테씨는 "우리는 70∼80년대가 아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면서,
노동당과 룰라 정부의 변화가 무죄임을, 나름의 융통성임을 얘기하지만,
룰라가 집권에 자신을 맞추었다는 느낌이 드는건 왜인지요.
뭐 자신의 신념을 유지한 채로 집권을 이루어내든, 집권에 맞게 타협을 하든,
그건 룰라의 자유고, 브라질 유권자의 자유일겠지만,
좌파정당의 정치 경제적 미래를 짚어볼 욕심을 가졌던 독자에게는,
브라질 노동당과 룰라가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없다는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4.
이제 집권 1년반을 넘어가는 룰라 대통령은,
집권 당시 굉장히 긴장했던 우파로부터는 '쟤가 왜 저러지?'하는 의혹의 시선을,
좌파와 극빈층으로부터는 실망과 배신이라는 힐책을 받으면서,
굉장히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캐나다, 브라질까지 묶었던 NAFTA에 이어 남미 전체까지 미주대륙 전체를 2005년까지 묶어내겠다는 미국의 FTAA 의 추진의지를 옅보자면,
간판 유지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두고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