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1.
사회학이란 모름지기 이래야한다는 흐뭇함을 느낍니다.
<현대 가족 이야기>를 써낸 조주은씨의 말 그대로 옮기자면, '자신의 삶을 통째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조주은씨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 울산에 살면서 느낀 일상의 갈등을,
결국 한권의 책으로 써냈습니다.

물론, 여느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아내와는 다르게,
대학도 졸업했고 대학원도 다니고 있지만,
그녀가 느끼는 일상의 갈등마저도 다른건 아닙니다.

일주일은 주간 일주일은 야간 노동을 해야하는 남편, 그리고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사원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은,
그녀와 그녀 가족의 일상이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 일반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갈등은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부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그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갈등을 깊이 고민한 노력의 결과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부인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회학의 혜택이자 매력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자신의 삶을 통째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비록, 정도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매일같이 스스로의 삶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어제 하루 갈등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 하루 고민이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고민은 누구에게나 연구대상이고, 우리는 나름대로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이런 갈등을 해결해나가죠.
또 때로는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아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면서 자신의 경험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구요.

저는 이런 것들 모두가 사회학을 구성하는 조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남편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많은 여성들 중에서 조주은이라는 여성에게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아마 대학 졸업장과 대학원 학생증일진데,
대학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주어지는 학문적 기회들은,
그런 조각들을 조립하는 능력을 좀 더 키워주었을 겁니다.

일상의 조각을 주워모으는 과정 자체는 다를게 없습니다.

3.
사건의 순서를 따지자면,
대학 졸업이 첫번째이고, 결혼이 두번째, 대학원 입학은 세번째입니다.

결혼을 하고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울산에서 보냈던 얼마간과 그 속에서 느꼈던 풀어낼 수 없는 갈등이,
그녀가 아이를 들쳐업고 서울로 올라오게 했던 이유였던 셈입니다.

풀어낼 수 없는 갈등이 무엇이었는지, 그녀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남편의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연년생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건 상상 밖으로 힘든 일이었다. 남편이 밤샘 야간노동을 마치고 아침에 들어오면, 아침상을 차려주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밤을 샌 남편이 숙면해야했기 때문에.
둘째는 들쳐메고, 첫째는 유모차에 태우고서 하루 종일 화봉동 거리를 쏘다녀야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집에 들어가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 때문에 남편이 자고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는게 꺼려졌다. 종일 점심도 거른 배를 움켜쥐고 갓난쟁이 두 아이를 업고 밀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하염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 주부를 상상해보라.
그렇게 힘든데도 왜 하루 종일 길거리를 배회해야 했을까? 그게 차라리 나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울며불며 떼쓰는 아이들을 달래 본 적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밤샘 노동에 지쳐 곯아떨어진 남편도 있었는지. 나는 혹시라도 남편이 깰까 신경이 곤두서고, 차라리 집을 나서는게 당영한 배려이며 내조라고 생각하는 아내이자 엄마였던 것이다.'

'내 안에 갈증이 생겼다. 곧 그 갈증은 갈등이 되었다.
..(중략)..
내 의문과 딜레마에 대해, 그리고 그 의문과 딜레마를 쉽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해 강한 궁금증이 계속 일었다. 그리고 어느 날, 스스로 답을 찾겠노라는 다짐도 함께 생겨났다.
..(중략)..
나는 엄마, 아내,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탐구해야 했고, 나와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서울에 올라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자신의 갈등을 풀어내려했던 그녀의 논문은 이렇게 한편의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4.
그 시작은 개인의 갈등에서부터 시작했을지라도,
이것이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사회적'이어야 하는건데,
그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회의 구조'가 무엇인지를 밝혀내야하는겁니다.

갈등은 개인적이지만,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구조는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 사회적 구조를 밝혀내면 그 혜택은 자신과 비슷한 갈등을 겪는 이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여튼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잠시 갈등이 가져다주는 감정에서 벗어나, 좀 더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의 경우는,
일주일 단위로 주야간 근무를 하는 남편의 직장,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과 전업주부인 자신,
그녀가 거주하는 사원아파트의 주부공동체,
그리고 울산이라는 지역의 특수성, 등등을 돌아보게 되고,
관련한 논문과 자료를 수집하고, 옆집 위집 아줌마들과 인터뷰도 합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여기서 한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됩니다.
단순히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가 아니라, '이게 이래서 저건 저렇다'는,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간의 '연관관계'를 밝혀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5.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는 대부분 그녀의 남편처럼 일주일씩 주야간으로 일을 합니다.
일주일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 일주일은 저녁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것이죠.

이런 노동형태가 신체리듬상 전혀 올바르지 않다는 상식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자동차 업계들이 이런 노동형태를 고집하는 이유는, 설비 투자에 들어간 돈을 최대한 회수해야하는 기업의 생리에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과 같이 대규모 제조업일 수록 설비투자에 큰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 새로운 설비투자가 있기 전까지(즉, 효율성의 측면에서 그 기계를 사용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 최대한 기계를 돌려서 자동차를 많이 만들어야하는겁니다.
이것이 24시간 쉬지않고 라인을 돌려야하는 이유가 되는거죠.

고용은 기업의 권한인데,
자동차 업계 전체가 이런 노동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개인의 입장에서는 신체리듬을 따질 여지가 없어집니다.

6.
'주야간 노동'과 함께 자동차 업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시간제 임금'입니다.

현대자동차니 대우자동차와 같은 대공장 노동자들이 5,000만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실제, 책에 첨부된 노동자들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적게는 3,000만원에서 4,000만원까지 되어있는데요. 왠만한 대졸자 취업생의 2배 가까이 되는 연봉이네요.

이런 높은 연봉은 시간제 임금 덕분입니다.
머리 속에 떠올려보시면 대충 알겠지만, 자동차와 같이 대규모 제조업의 경우 호황과 불황일 경우 그 손차이가 엄청날 것입니다.

이런 호황과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탄력적인 운영이 필요하죠.
호황일 때는 최대한의 동력을, 불황일 때는 최소한의 동력을 운영하는겁니다.

그런데, 고용이라는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게 아닌지라 문제가 됩니다. 고용을 하면 임금을 줘야하고, 임금을 주는 것은 자동차를 만들기 때문인데, 팔리지도 않는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자동차 업계는 기본급의 비중을 줄이고,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잔업과 특근과 같은 시간제 임금을 광범위하게 도입합니다.
한마디로, 4,000만원이라는 상대적 고임금은, 기본 근무 외에도 매일 2시간씩의 잔업을 하고 휴일 및 공휴일에도 쉬지않고 특근(특별근무)를 해야 받을 수 있는 연봉이라는겁니다.

따라서,
휴일과 공휴일에 쉬고, 아침먹고 출근해서 집에 와서 저녁먹는 사람과,
매일 2시간씩 잔업하고 가끔이든 매번이든 휴일과 공휴일에 특근을 한 사람과는 연봉 차이가 엄청날 수 밖에 없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하루의 여가시간과 휴일을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잔업과 특근을 선택하는 이유는,
기본급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시간급이 주어지는 매력(마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7.
잔업과 특근이 높은 비율의 시간급을 가지는 근거는 두가지입니다.
(휴일 특근의 경우는 20만원 가까이 된다는군요.)

잔업과 특근이 일반적인 생체리듬을 깨는 노동인 것이 하나요,
(낮에 일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들잖아요.)
호황과 불황시 유동적으로 라인을 돌려야하는 기업의 이윤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것이 둘입니다.

이 경우 불황이 되면,
낮은 기본급과 높은 시간급으로 이루어진 현대자동차의 상대적 고임금은 실상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잔업과 특근이야 추가적인 성격이 강해서 고용에 필수적이지 않으니,
잔업과 특근을 없애버리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테니까요.

8.
주야간 노동을 하는 남편과 전업주부인 부인, 그리고 두명의 아이로 정형화되어 있는 울산의 가정경제에서,
'주야간 노동'과 '시간제 임금'이라는 두가지 코드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가족임금을 벌기 위해서는,
'주야간 노동'과 '시간제 임금'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고,
가족의 생활은 남편의 노동형태에 강하게 종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야간노동을 하고 돌아온 남편의 숙면을 위해서,
아이를 들쳐업고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현대자동차 노동자 부인들의 갈등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2시간의 잔업을 포함해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남편이 있다는 물질적인 조건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해도,
여성들에게 스스로의 삶의 기회를 박탈하고 남편과 가정에만 종속된 전업주부로 내모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10.
그런데,
여성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적극적인 기회를 박탈당한 갈증과 갈등을,
힘들게 노동하는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자식교육에 대한 욕심으로,
달래고, 대리만족하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데에 진정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이에 반하는 뜻으로는 '미봉책'이라는 것이 있는데,
미봉책은 당장의 문제에만 급히 대응하는 것으로, 해결하지 않은 문제의 원인이 다시금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서 좋지 못합니다.

밤새 12시간 일하고 지쳐돌아온 남편이 안쓰러워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줄 수 있고,
남편의 숙면을 위해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특근 두번 하면 벌 수 있는 40~50만원의 돈을 위해서, 굳이 아이까지 맡겨놓고 낮은 시급의 유통업이나 서비스업에 직장을 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하는 남편을 생각해서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더라도 자식은 생산직 노동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전업주부의 힘든 일상을 같은 남편을 가진 옆집 위집 여성들과의 수다로 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미봉책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전업주부일 수 밖에 없는 물질적 조건이 되었던,
'가족임금을 전제로 한 남편의 주야간 노동, 시간급 노동'이 변하지 않는 한,
여기에 생계가 달린 가족의 생활형태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이에 종속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11.
그래서,
조주은씨는 이렇게 꽉 짜여진 틀에서 한발 나아가 '노동시장의 전면적인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주야간 노동과 시간급 노동이라는 노동형태에 대한 규제를 통해서,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주야간 노동이 없어지고, 시간급 노동이 줄어든다면,
남성 노동자들에게도 가사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시간적 조건'은' 확보될 것입니다.

그런데, '은'에 강조를 두고자 함은, 그것은 말 그대로 '시간이라는 하나의 조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여성들 또한 누구에게 종속된 것이 아닌 평등한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가사노동이 분담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시간의 확보만으로 가사노동의 분담이 이루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겁니다.

그녀 역시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고,
동시에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의식전환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2.
사실, 남성들에게 생계비를 전담시키고, 그에 따라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전업주부가 되어 가사노동을 하는 현상은,
남과 여, 여와 남간의 고정되어있는 특수성 때문이 아니라, 근대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사회적 역할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근대'를 상징하는 열쇠 중의 하나는 '산업혁명과 제조업'.
대규모 생산설비를 통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대량의 재화를 생산해야 하는 제조업의 생리가,
위와 같은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실제, 제조업 이후에 떠오른 서비스, 금융, IT 분야는 굳이 남성에게 편중할 이유는 많이 없어진 듯 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도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은 필연적으로, 여성들을 주체화하고, 남성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것이구요.

13.
그런데 저는 그녀의 문제의식과 해결책이 좀 더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문제의식은,
노동시장의 전면적 재구조화와 여성의 사회적 진출, 그리고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의 의식전환,
여기에서 멈추고있는데,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주야간 교대근무나 시간급 임금, 그리고 가족임금과 같은 노동시장의 형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효율을 통한 최대의 이윤이 지상과제인 기업의 생리에서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의 전면적 재구조화' 역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야간에 멈춰있는 기계와 손실액을 계산해야하는 기업의 생리와 맞대면해야 하는 국면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녀의 기획은 여기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네요.

하지만, '노동시장의 전면적 재구조화'라는 결론은 그녀가 가진 문제의식의 줄기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실제 노동시장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의 풍부한 문제의식을 발견하실 수 있을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
어렵지만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끝으로, 지금까지 얘기한 그녀의 삶의 위치가,
노동자 일반에 있지 않고, 소위 '노동귀족'이라 불리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는 점을 좀 더 염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 위와 같은 노동현실 보다는,
노동시장의 60~70%에 이른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이 더 일반적일텐데,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60~70% 의 임금을 받고, 고용안정이나 여러 복지혜택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주야근 교대, 잔업, 특근을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비용을 벌기가 빠듯한 것이 이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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