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1.

제 고향은 전라남도 광양인데, 서울로 이사온 지는 스무해정도가 되었네요.
서울에 살면서도 학창시절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학교 부근이었던 청량리며,
영화를 보기 위해 나섰던 종로,
종로에서 밥을 먹기위해 찾았던 인사동,
학교를 휴학하고 다녔던 회사는 테헤란로에 있었고,
기획사 일을 하면서부터는 동대문과 영등포를 쏘다녔죠.

연극을 볼 때는 대학로를,
가끔은 친구 편의에 따라 신촌까지 멀리 나가기도 했고,
몇해전 생일엔 여의도공원도 한번 다녀왔네요.

종로보다는 한적한 강남으로 영화를 보러 갔던 적도 있었고,
한강다리야 아무 생각 없이 수도 없이 건넜구요.

서울 사시는 회원분이라면 모두 익숙한 지명들일겁니다.
저에게 역시 익숙한 지명, 이곳에 대해서 좀 더 듣고싶었어요. 우연히 만나 친해진 친구의 어린시절 얘기처럼 궁금해지는겁니다.

2.

「현건축」소장이며 건축가인 서현씨의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은 그렇게 읽게되었습니다.
조경학을 전공한 누나의 책장을 염탐하다 슬쩍 꺼내본거죠.

코팅된 종이에 시원스런 활자들, 컬러로 된 사진들.
머리를 좀 식히자 했습니다.

그런데, 뛰어난 만남을 풀어내는 저자의 말쏨씨에,
저는 길거리 약장수에게 사기당한 마냥 머리 속이 더 복잡해집니다.

머리를 식히기에,
'인문적 건축이야기' 라는 저자의 얘기는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3.

위에서 제가 쏘다녔던 거리만이 있는건 아닙니다.
제가 몇번이가 스쳐지나갔을 뿐인 서울의 거리들도 몇몇 더 있고, 수원, 전주, 부산, 광주의 거리도 있습니다.

멀게는 조선시대 후기까지 거슬러올라가,
이 거리가 변해온 모습을 그려냅니다.

종로에서는 금난전권이, 세종로에서는 아관파천이, 수원 화성에는 조선임금 정조가 등장합니다.
역사시간에나 줄줄 외웠을법한 얘기들이 다소 지루해질 즈음이면,
건축가 서현씨는 파스텔톤의 삽화로, 선명한 컬러 사진으로 달래줍니다.

4.

만약, 이대로 흥미진진하기만 했다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끝났을 터.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 기억에 남은 몇몇 얘기꺼리들은 여자친구와 그 거리를 걸을 때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폼나게 던져주면 되는겁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서현씨는 예의 재치있는 만남으로 덩치 큰 건물과 간판으로 가득한 오늘의 거리를 얘기해주는데요,
이 얘기라는게 그리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주위무관심쟁이에게, 건축이라는 것이 그저 설계도면이나 그리고 돈 잘버는 직업이 아님을 가르쳐주었고,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돌이 제 생각마저도 구분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재개발 사업엔 철거민들의 설움이나 야박한 투기꾼의 논리 외에 더 고민할 부분이 있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전통의 계승이라는 해묵은 주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건축으로, 음악으로, 미술로 머리를 식혀보겠다는 생각일랑 멀리 던져버려야 겠습니다.
누릴 수 있는 문화일지언정, 제 편견 만큼이나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닐테니까요.

5.

서현씨는 '시대의 정신을 거리에 아로새기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도시에 침을 뱉고, 건축가에게 침을 뱉는 것이 거리를 거니는 시민들의 몫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불현듯이 생각난 사람.
저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연극 감상법>을 써낸 그 연극인.
그 연극인도 연극에 침을 뱉으라고 얘기했었는데.

책을 통해 하소연하는 연극인과 건축가의 얘기는,
40년만에 따라잡았다는 산업자본주의에는 뒤쳐졌지만, 정보화시대에는 뒤쳐지지 말자던 우리시대의 슬로건과 교차됩니다.

적절치 않을 것 같아, 더 긴 얘기는 그만 두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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