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리포트 - 2004년판
홍순영 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한국경제리포트> (이하, 리포트) 생각보다 재밌네요.
예나 지금이나 도표나 수치는 좀 따분해서 대충 흘려버리고, 흐름만 잡으려고했습니다.

제가 잡은 몇가지 주제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할께요.

1. 고용없는 성장

'노동유연화'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철밥통'이라고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저는 이게 잘못된 인식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식에는,
'노동유연화'는 능력에 따라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것이고, '철밥통'은 능력에 상관없이 고용이 보장된다는,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사전적 정의가 강한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리포트를 통해서 보면,
최근의 미국을 비롯한 한국의 노동시장에 대해서 -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생산활동 동맥혈이라면, 가계의 소비는 정맥혈과 같은데,
심장에서 피를 내보내기만 하고, 이 피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갑동이 엄마든 아빠든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아와야, 갑동이가 용돈을 받아 을동기업의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죠.
을동기업은 수많은 갑동이들이 아이스크림을 팔아줘야 계속 기업을 유지할 수 있구요.

한참, 노동유연화를 선전할 때,
기업이 생산의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게, 우선 해고가 자유로워져야, 사업영역이 확장되고 또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고용없는 성장'이란, 해고만 자유로워지고, 고용은 창출되지 않는 노동유연화의 현실을 보여주는겁니다.

노동유연화와 고용에 대해서 좀 더 따져보죠.

고용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장사가 잘 되어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사가 잘 되는 분야로 따지면,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조선 정도가 있을겁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었던 석유화학, 철강, 섬유와 같은 2차 산업들은 그저 고만고만합니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분야에서 새로운 고용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소세에 있다고 봐야겠죠.
크게 봤을 때, 제조분야나 서비스분야에서는 더 이상 경쟁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축성이 떨어지죠.

경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보통신분야의 기술이나 마케팅입니다.
반도체나 무선통신기기들이 그렇고, 자동차의 경우는 제조업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자동차도 디자인이 있고, 설계가 있고, 제조가 있고, 마케팅이 있고, 다양한 제조과정이 있죠. 그 과정 중에서 제조분야, 서비스분야는 이미 경쟁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디자인이나, 설계, 마케팅 분야가 경쟁의 우위를 결정하죠.

결국, 장기적인 고용창출은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맞는데,
이 고도로 발달한 분야에서 흡수할 수 있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겁니다.

정치 보고 경제 살려달라고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고용의 문제는 정치보다 경제에 중점을 두고 바라보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실제, 리포트에서 고용과 관련된 부분은, 공공정책 파트 보다는 경제, 기업경영 파트에서 비중있게 다루고있구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고용에 대한 영향력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50년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만 있어도 지금의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기술의 혜택이란,
결국, 일할 수 있는 극소수와 일할 수 없는 다수로의 구분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기술은 죄가 없죠.
다만, 일하는 입장에서의 기술과, 기업하는 입장에서의 기술은 크게 다른겁니다. 일하는 사람이야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지만, 기업하는 입장에선 다르죠.

2. 중국과 인도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하고있는데, 그 속도로 말할 것 같으면 쉽게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의 원자재 값이 오르는 이유가 중국의 원자재 구매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하니 할 말 다했습니다. 중국의 섬유 철강 분야는 이미 과잉생산 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제조업 생산 세계 4위, 100여개 품목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국, 연간 10%에 가까운 성장률.

우리나라와 중국을 절대비교 할 수는 없습니다만,
덩치 작은 우리나라가 3% 성장할 때, 덩치 큰 중국이 10% 성장한다고 상상하면 대충 짐작이 가실겁니다.

경제란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가 이루어져야 운영될 수 있는건데,
중국이라는 인구 10만에 달하는 소비집단이 생겨났다는 것은 큰 기회인셈이죠.
올 한해 내수부진의 여파를 수출로 막아냈다는 우리나라 경제에서 중국시장의 소비가 큰 몫을 했음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라는 나라 역시 소비 뿐만 아니라 생산도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면, 앞으로 이 나라의 소비가 한계에 다다르고, 소비 만큼의 생산력으로 세계시장을 압박하기 시작했을 때의 효과는 그리 낙관하기 힘들죠.

인도는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기업의 아웃소싱을 법적으로 규제하려고 하자, 인도에서 무역제재로 위협을 가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인도는 세계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하는 나라로 유명하죠.

이 나라 역시도 엄청난 인구를 가지고있는 데다가, 매년 7-8%의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도의 주력산업은 IT나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인데, 인도의 모 거리가 미국의 실리콘 밸리보다 더 호황이라고 하니 지레 짐작이 가실겁니다.

세계경제에서 인도의 비중이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빚의 경제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 행사하는 막대한 영향력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두고 '미국이 강대국이어서' 라고 하면 조금 싱겁죠.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일종의 딜러와 같은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환율이라는 것이 달러를 기준으로 해서 결정이 되니까요.
보통 게임을 하면, 돈 대신 칩으로 게임을 하잖아요. 칩을 사용하는 이유는 게임의 진행이나 교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실경제에서 물물교역이 화폐라는 교환수단을 선택하고, 경제의 크기나 교역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폐 대신 수표, 어음, 신용카드, 전자화폐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한가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것은,
세계경제라는 게임에서는 딜러를 맞고있는 미국 역시도 게이머의 한 사람이라는겁니다.
( 원래는 금본위제라고 해서 금을 사용했었는데, 71년에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이를 금지시켰죠. 이것을 변동환율제라고 합니다. )

이 경우, 미국이라는 게이머가 파산을 하면,
게임장에 있는 게이머 전체가 아무 쓸모가 없는 칩을 들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

실제, 미국은 쌍둥이적자라 해서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경상수지 적자의 경우, 미국 GDP의 5% 약 5,000억 달러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미국이 이 적자를 메우는데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돈을 더 찍어내는 방법입니다. 게임장 딜러가 칩을 더 만드는거죠. 실제로는 미국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하는겁니다. 미국국민이나 해외투자가들이 채권을 구매하면, 그 돈이 미국정부로 들어가서 적자를 메워줍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돈을 찍어내다보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게되죠.
화폐가치란 실물경제에 준하는건데, 실물경제는 그대로 있고 화폐량만 늘어나니 화폐가치가 떨어지는겁니다.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지게되면, 게이머들이 '이러다가 칩을 돈으로 못바꾸는거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게됩니다.
이 의심이 현실화되어서 달러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면, 달러가 중심이 되어 연관을 맺고있는 세계경제는 붕 떠버리는거죠.

작년 한해 미국과 유럽국가, 혹은 중국간의 환율갈등은 이래서 발생합니다.

" 한편, 미국의 구조적 불균형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졌고, 이는 외국에 대한 환율절상 압력과 통상압력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미국은 자국에 대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 일본 및 아시아 국가 등에 대해 '유연한 환율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유로의 달러에 대한 상승폭이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높아, 수출경쟁력이 저하됨에 따라 미국과 유럽간의 환율 갈등도 고조되었다. " - 삼성경제연구원 <한국경제리포트 2004> 48쪽

미국의 달러발행이 늘자, 다른 나라들에서 더 적은 돈으로 칩을 사려고 하고, 미국에선 안된다 원래대로 하자라며 갈등을 일으키는겁니다.

4. 몽땅 외국돈?

금융 부문은 그동안 제가 관심있게 지켜본 세계화라는 이슈에 대해서 현실적인 감각을 보태줄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소유지분이 40% 정도 된다고 하네요.
작년이었나요? 소버린자산운용이 취득한 지분으로 SK하고 경영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냥 흘려듣는게 아니었습니다.
은행의 경우도 제일은행, 한미은행, 등 외국계로 넘어가는 것을 익숙하게 지켜봤습니다만, 보험ㆍ생명 분야까지 넓게 퍼져있는 줄은 몰랐구요.

SK경영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계로 넘어가는데 대해서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해서 언론보도가 이루어졌던 것 같은데, 사실 기업의 국적, 돈의 국적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돈이나 기업의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 운영의 목적이겠죠.
필요 산업을 육성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기타 등등의 것을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

그런데, 리포트에서 분석한 외국계 금융자본의 성향은,
장기투자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100%(95.7%) 매매차익을 노린 거래라는 점이라는데,
사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이나 외국계 투자자들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으니까요.

뭐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주식이 아닌 실물자산에 투자했다는 통계도 있긴한데,
실물자산이래봤자 부동산이니까 큰 차이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외국계 자본은 내수기업이 아닌 수출기업에 투자했을 뿐이고, 우리나라 자본은 주식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했을 뿐입니다.

5. 기타

글이 많이 길어져서 쓰긴 좀 뭣한데,
가계부채나, 문화산업 동향의 경우는 꼭 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고,
자동차 산업과 백화점ㆍ할인점 업계의 세력 재편도 굉장히 흥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사회ㆍ문화텀에서는 얼짱몸짱문화, 웰빙문화, 저출산고령화, 환경갈등, 등에 대해서,
공공정책텀에서는 노동정책과 농업개방문제, 평준화논란, 국민연금제도, 국가균형발전,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공공정책텀인데, 여기서 다루기는 다소 곤란스러운 내용들이 많이 있는 것 같네요.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꼭 구입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여튼 현란한 수치들만 무시할줄 알면 지극히 일상적인 얘기들의 순차적인 나열이니 만큼 연말에 어울리는 책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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