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1.
소설로 읽는 경제학이라.

조나단 B.와이트의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소설로 읽는 경제학입니다.
폭우가 억수로 솓아지는 어느날, 리처드 번스 박사를 찾아온 의문의 한 남자 해럴드 팀스. 팀스가, '애덤 스미스'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을 괴롭힌다면서 번스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얘기는 시작됩니다.

리처드 번스 박사는 미국 유수의 경영대학과 MBA과정을 거친 유망한 경영 컨설턴트.
두달 후 세계 유수의 무역회의에서 러시아 알루미늄 시장의 민영화와 관련해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발표를 하게되어있었고, 경제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라는 새뮤얼슨상을 수상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런 급박한 일정을 앞두고, 번스 박사는 해럴드 팀스의 몸을 빌려 영적대화를 행하는 애덤 스미스와 얘기를 시작하게 되죠.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애덤 스미스와.

2.
수치나 그래프의 나열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따분한 경제학을 소설로 풀어낸다는 시도 자체에 의의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갑동이와 을순이가 등장하는 소설의 형식은,
경제학이라는 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따분함과는 전혀 다르게, 우리 일상 생활에 꽁하니 자리잡고있는 편견의 집합임을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라면,
'경제학 풀이'에 집착한 나머지 소설 자체가 굉장히 따분해 질 수 있다는 점이겠죠.

그런 점에서, <애덤 스미스 구하기>에 쓰여진 영적대화라는 방법은 다소 유쾌합니다.
특히, 애덤 스미스가 활약했던 1700년대 철학자, 경제학자들이 만나는 과정은 억지스러우면서도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네바다주 올드 뒤랑고 살롱에서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장자크 루소, 볼테르, 심지어 케네박사까지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거든요.

애덤 스미스가 잠시 몸을 빌린 해럴드 팀스는 리처드 번스 박사 일행과의 여행 중에 뜬금없는 이유로 사라지게 되고,
리처드 번스 박사가 그를 찾아낸 곳이 네바다주 올드 뒤랑고 살롱, 번스 박사가 찾아낸 애덤 스미스는 모조리 다른 이들의 몸을 빌린 유수의 할아버지 철학자 경제학자들과 여유로이 카드놀이를 하고있었고, 번스 박사는 이를 옅듣게 되는거죠.

상상해보세요.
장자크 루소가 카드를 집어던지며 이렇게 말하는거에요.
" 이 패로는 게임 못하겠어! 흄이 벌서 내 걸 다 봤다구. 나한테 잡혔어. "

3.
사설이 좀 길었군요.

여튼, <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애덤 스미스는 자칭 그의 추종자라는 오늘날의 경영 컨설턴트와의 대화를 통해서,
오늘날의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아담 스미스의 권위를 빌려 시장의 원리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유쾌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아담 스미스의 저작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국부론> 보다는 <도덕감정론> 입니다.
사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그의 별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가 <국부론>을 출간하기 이전에는 딱히 경제학이라는 과목 조차 없었죠. 그 역시도 논리학 교수로서 영국의 글래스고 대학에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가 출간한 책이 바로 <도덕감정론> 입니다.
그런데, 이름조차 생소한 이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 실제로는 <국부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는겁니다.
다시 말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전제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부론>을 집필했다는거죠.
그런데, <국부론> 만도 아니고, 심지어 <국부론>에서 발췌된 일부분의 내용만이 그의 사상인양 사용되고, 아니 오용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습니다.

물론, " 넌 아담 스미스를 몰라. " 라고 얘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인용하는 경제학자들이 1,200여쪽에 달하는 <국부론>을 일독 조차 하지 않았다느니, <국부론>의 전제가 되는 <도덕감정론>을 들어보지도 못했다느니 하는 얘기들은 그저 웃고 넘어갈 얘기들입니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를 알고싶은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인 경제논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고싶어하고,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내가 느끼는 경제적 갈증을 풀고싶은거니까요.

물론,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촉망받는 리처드 번스 박사의 갈등을 통해 오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스 박사가 두달 후 발표를 하게 되어있는 논문은,
러시아 민영화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리스크(risk, 위함)를 분산하는 법, 즉 러시아에서 한몫 챙겨보려는 기업들이 투자한 돈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렇게 화두는 기업 경영과 윤리로 넘어가는겁니다.

4.
조나단 B.와이트는 애덤 스미스의 저작과 논문을 주로 연구해 발표한 학자이지만,
사실,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기업 경영과 윤리.

물론, 기업이 비윤리적 경영이 아담 스미스에 대한 몰이해 때문은 물론 아닐겁니다.
어차피 경제학이란 중립적 일 수 없는 학문, 기업은 그들 나름의 생존논리를 아담 스미스의 권위를 빌어 정당화하는거죠.

오늘날 기업 윤리 수준의 심각성을 꼬집고싶었던 조나단 B.와이트는,
아담 스미스의 권위를 빌어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 심지와 밀랍만 있으면 뭐 하나, 정작 산소가 없으면 양초는 탈 수 없지. "

자본주의의 시장이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조직, 사회적 가치가 모두 얽혀 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제도적 조직과 사회적 가치를 무시한 채 내달리는 시장의 몰락을 경고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얼마 전 주형씨가 독서후기를 올린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조지 소로스의 경우, 자본주의 경제의 경기변동이 우여곡절 끝에 평형을 이룰거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다른 이름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이죠.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앞에는 구고전학파가 있었을테고, 구고전학파의 대표주자는 단연 아담 스미스.

재밌죠?
대부분의 경제학사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시카고 학파에게 붙여져있는 신고전학파라는 이름. 아담 스미스에 대한 평가는 의례 그와 같은 시장만능주의자 쯤으로 되어있던겁니다.

5.
여튼, 뭐 이런 분위기에서 해결은 기업의 자정능력으로 귀결되는 모양입니다.
여러 책들이 신랄하게 비판해놓고 결론에 와선 " 겁나지? 그러니까 잘하자. "라는 용두사미의 전개구조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 구하기>는 소설의 형식을 빌고있느니 만큼, 대안이란 것도 소설처럼 등장합니다.

여행을 떠난 번스 박사와 아담 스미스가 캠핑을 하던 도중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대목.
아닌 웬걸. 파도에 휩쓸려 갈 뻔 했던 이 사람의 이름은 피터. 그는 휴렛 팩커드니 인텔이니 썬, 시스코, 모토로라, 록히드 마틴과 같은 유수 IT 업체들이 결집해있는 실리콘 벨리에서 특수 반도체 공장을 경영하는 CEO 였던겁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 촉망받는 경영 컨설턴트 번스 박사, IT 산업의 CEO 피터.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후유증은 어디 갔는지, 그날 저녁 세사람의 화제는 기업경영으로 집중되고,
결국 여행중이던 번스 박사와 아담 스미스는 실리콘 밸리의 공장에 견학 아닌 견학을 가게되죠.

아직 아담 스미스에게 교육을 덜 받았는지 이윤에 따른 냉정한 구조조정이며 실리적 운영을 부르짖는 번스 박사,
그는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발전이라는 피터 사장님의 의견에 발끈해 회사를 찾아가게됩니다.

어디 그런지 보자며 씩씩거리는 번스 박사의 견학일에, 공교롭게 피터 공장의 주고객은 공장의 회계직원에게 된통 못된 짓을 하죠.
피터는 번스 박사 보란듯이 회계직원을 위해 주고객과의 거래를 끊어버립니다.

6.
조나단 B.와이트가 일종의 대안모델로 제시한 피터공장.
하지만, 현실은 정해진 이상향을 향해서 직선으로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실제, 극중 스미스는 이렇게 말하죠.
" 피터가 직원의 높은 포부에 호소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리고 이건 물론 중요한거지만, 생산성에서 얻는 이득이 그의 비용을 능가한다면 이윤은 증가하겠지. 다른 회사들은 그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으면 큰 손실을 입게 될거야. "

결국, 문제는 '생산성에서 얻는 이득이 그의 비용을 능가하는 것' 이라고 자기고백을 하는겁니다.
<도덕감정론>의 제도적 조직, 사회적 가치에 찍었던 초반의 강조점이, 다시금 비용의 문제, 즉 시장의 논리로 회기하는 순간이죠.

자신있게 주고객과의 거래를 끊어버리고 회계직원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 후 피터의 얘기는 한술 더 뜹니다.
" 어쩌면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어요. 직원에게 힘을 실어 준다고 말하는 건 좋지만 회사가 부도나면 의미가 없어지죠. 결국엔 직원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될 거구요. "

저는 이것이 유토피아 문학가가 아닌 경제학 박사 조나단 B.와이트의 솔직한 자기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책의 전면이 <도덕감정론>의 진정한 이해에 대해서 씌여졌다 하더라도, 경제학자는 현실의 이해를 반영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7.
언제나 제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책 표지의 온갖 홍보문구들.

" 부활한 애덤 스미스, 분노하다! "
" 시장경제의 필수사항인 신뢰와 도덕과 덕성을 강조하는 애덤 스미스의 철학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철학이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경제이론소설이라는 장르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다. " - 존 모톤, 미국경제교육협의회 부회장
"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와 함께 떠나는 뜻 깊은 경제학 여행! "

그러나 저는,
이 책을 두고 오늘날 필요한 철학을 제시해주었다고 매듭짓는건 책을 반밖에 읽지 않은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심지어 역효과가 날 수 있는 몰이해라고 생각해요.
책의 전면은 <도덕감정론>에 담긴 중요 철학을 서술하고 있지만, 숨겨져있는 현실적인 논리적 귀결의 공허함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철학이든 경제학이든 현실의 쓸모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덮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죠. 애덤 스미스의 명예를 되찾았고, 우리 시대의 철학을 되찾아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보탬 하나]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함정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쪽으로 방향을 맞췄는데,
사실, 전면의 내용은 <도덕감정론>을 통한 아담 스미스의 이해인지라 그 부분을 빼놓은 것이 좀 아쉽네요.

<도덕감정론>에 대해서도 하고싶은 얘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회원분들하고 같이 얘기해보고 싶네요.

[보탬 둘]

그리고, 저도 몰랐는데, 이 책 사니까 책 한권 더 줬어요. (인터파크에서 샀음.)
이 책을 옮긴 분이 안진환님이신데, 같은 출판사(생각의 나무)의 책 중 그 분이 번역한 책이 한권 더 왔더라구요.
<젊을 때 시작하라> 는 책인데, 보나마나 재테크 관련한 책이겠죠?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그때가 잠깐 이벤트 기간 이었을 수 있으니 한번 더 알아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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