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청산가자 - 진회숙의 국악 오딧세이
진회숙 지음 / 청아출판사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진양조의 '느림', 가곡성 우조의 '슬픔', 고법의 '호흡', 육자배기의 '처절함', 창부타령의 '산뜻함'에 대해서.
역시, 평론을 읽는 맛은 '경험의 해석'에 있다. 경험이 없다면, 평론은 따분하거나 교훈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국악 평론은 있는데 속악 평론이 없는 이유는 뭘까. 더 이상 연재되지 않는, <굿>에 실렸던 굿판 평론이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소설가 장정일은 평론의 영향력이 해당 장르의 대중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대중적 장르에 대한 평론 보다, 그렇지 못한 장르의 평론이 더 영향력 있다는 것.
결국, 평론은 예술의 구매, 예술의 소비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속악 평론'은 있을 수 있어도, '속악 평론가'는 있을 수 없다. 속악 평론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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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과 가곡성 우조. 만약 <사랑가>가 진양보다 빠른 장단에 계면조로 되어 있었다면, 사랑은 속된 관능의 늪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만약 <추월만정>을 피를 토하듯 통곡하는 진계면으로 부른다면 추월의 격조 높은 쓸쓸함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그만큼 감각적으로 충분히 음을 수식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 된다. 보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부르는 이의 감정을 실어낼 수 있는 장단이 바로 진양조이다. 그래서인지, 판소리에서 음악적으로 이름난 대목들은 대부분 진양조 장단으로 되어 있다."

"민요 중에 <육자배기>만큼 처절함의 극한에까지 가 있는 민요도 드물 것이다. 정제니 승화니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나 생각하는 것이다.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그것을 토해내는 것 밖에 달리 할 일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그들은 토해냈다."

"<육자배기>를 슬픈 소리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이라는 퇴영적인 단어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무게를 새 희망의 에너지로 옮겨놓은, 그렇게 <육자배기>는 슬픔 그 너머에 존재한다."

"경기 소리의 신명은 다른 지방의 그것과는 빛깔이 다르다. 그것은 계면의 그늘이 전혀 없는 순도 높은 신명이며,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겪었던 삶의 고통과 그것이 힘겨워 내쉬는 한숨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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