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독립영화야말로 한국 영화 침체기의 진정한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상업영화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품으로서의 기능을 떠맡아줄 구원자 말이다.

정치색을 제거한 저예산 영화에 대한 일련의 논의들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말로 포장되곤 했지만, 그것이 자본의 다양성이라는 사실은 분명했고 대체로 틈새시장 공략 같은 모양새로 전개되었다.

위태로움을 포기한 독립영화가 더 이상 독립영화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왜 우리는 위기를 끌어안고 사는 법을 고심하지 않고 매번 위기 저 너머의 안정만을 꿈꾸는가. 수많은 타자의 위기로 스스로의 안정을 도모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위기의 극복을 쉽게 믿는 자들은, 혹은 학문은, 혹은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자본의 관대를 바라게 되고, 그도 아니면 자본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자신에 대한 포기를 합리화하는 데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패배자의 넋두리가 아니라, 희망을 걸 수 없는 곳에서 희망을 보려고 하는 것, 무엇이 이 시대를 이토록 어두컴컴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지 않고 그 어둠이 쉽게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은 환상이다. 시스템도 역사도 밀쳐두고 오직 환상의 거품을 즐긴 후의 대가를 이제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남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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