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벌리힐스 고등학교 케네스 교장은 오늘, 다음주 목요일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전 교직원이 참석하는 워크숍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기자라면 이 소식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전할까? 경영컨설턴트인 칩 히스와 댄 히스는 기사의 글머리인 리드(lead)를 이렇게 뽑으라고 충고한다. “목요일 학교 수업 없음.”

텁텁한 내용도 포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맛깔스럽게 바뀔 수 있다. 설득이 기술인 수사학(rhetoric)은 스티커처럼 두뇌에 내가 전하려는 바를 딱 달라붙게 만드는 기술이다.

자신이 뜻한 바를 분명하게 전달하려면 내용이 단순해야 한다. 법정에서 들이댄 근거 열 개가 모두 훌륭하다면, 이유를 하나만 들었을 때보다 설득력이 되레 떨어지기 쉽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전쟁은 언제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군대는 전투가 일어나면 10분 안에 쓸모없어질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군대에서는 계획보다 ‘지휘관의 의도’(Commander’s Intent)를 분명히 하는 데 힘을 쏟는단다. “오늘 밤까지 이 지역을 지켜낸다.”라는 명령은 “몇 시 몇 분까지 어디로 이동해서 무슨 일을 해라.”라는 지시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계획이 엉클어져도 목적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으면 작전의 맥은 끊기지 않는다. 모든 논리는 자신의 의도를 분명하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귀 기울이도록 만들어야 할 차례다. 관심을 끄는 데 있어 “상식은 적이다.” 호기심을 일깨우려면 사람들의 두뇌를 헛헛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 50개 주의 수도 가운데 17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다른 이는 50개 가운데 47개 주의 수도를 안다. 둘 가운데 누가 더 수도를 알아가는 데 관심이 있을까? 당연히 47개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낱말 십자풀이 게임도 마찬가지다. 알고 있는 지식에 ‘공백’이 있음을 느낄 때, 호기심은 불같이 일어난다. 마치 등 가운데가 가려운데도 긁지 못할 때처럼 말이다.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설득할 차례다. 먼저, 상대가 화를 내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자기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어 버린다.

상대가 차분한 마음 상태에 있다면, 본격적으로 논리를 펼쳐 보자. 루브르궁에서 루이 15세를 지키던 스위스 용병들은 전원 용감하게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남의 나라 왕을 위해 생명을 바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왕을 위해 싸우면 엄청난 황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던졌다. 그들은 ‘스위스 용병은 용맹한 진짜 군인’이라는 명예에 상처를 입는 일이 죽음보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뭐가 이익이 될지 내세우기보다는 ‘정체성의 욕구’에 호소하는 쪽이 낫다.

돈과 이익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 잇속이 달라지면 언제든 나를 차버리고 가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너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며 나의 기대를 절절하게 심어 놓은 사람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못한다. 나를 버리기에 앞서 자기 스스로를 무너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 주장에 고개를 주억거린다면, 마지막으로 바라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게 할 차례다. 이때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은 상대의 결심을 확실하게 만든다. 우리 두뇌는 상상과 실제를 잘 가려내지 못한다. 눈을 감고 에펠탑을 떠올려 보라. 눈동자는 어느새 탑의 높이를 좇아 위를 향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인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감각은 마치 현실을 느끼는 양 생생하게 살아난다.

상대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미지로 그려주도록 하라. ‘정의’, ‘평등’ 같은 추상적인 소리들은 오해를 사기 쉽다.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 제각각인 탓이다. 반면, 구체적인 이미지로 꾸려진 이야기에서는 딴소리가 나올 여지가 없다. 이솝 우화의 신포도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신맛 나는 포도와 여우, 높은 덩굴 등등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눈에 그려지듯 생생하다.

상대를 설득하는 수사학은 오래된 기술이다. 수사학은 민주주의와 궁합이 잘 맞는다. 힘센 왕에게는 수사학이 소용이 없다. 힘으로 누르면 되는데 설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절대강자가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상대를 구슬리며 마음을 사야 한다.

황제가 다스리기 전 로마에서 키케로는 최고의 수사학자였다. 그는 영향력 있는 원로원 의원이기도 했다. 로마의 원로원에서 제대로 행세하려면 최고의 수사학 실력도 필요했다. 그렇지 못하다면 숱한 의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했을 테다.

이런 키케로도 마지막에는 목과 손이 잘려 로마에 전시되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수사학은 항상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시기에 꽃을 피운다. 그리스가 몰락하기 직전, 소피스트들은 말장난의 달인들이었다. 당파끼리 논리 싸움이 치열했던 조선 말기의 현실은 어떤가? 수사학자들이 이끌어 가던 세상은 과연 아름다웠던가?

인간의 영혼은 말재주가 정신보다 화려해질 때 썩어가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논쟁가들의 화려한 혀놀림이 두렵게 다가오는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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