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장 지식인’들은 대부분 강한 이념적·당파적 색깔을 드러내기 때문에 각자 막강한 지지세력을 거느리고 있다. 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 우군의 지지가 더 뜨거워진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그런 ‘패거리 싸움’의 원리상 속된 말로 밑질 게 없는 것이다. ‘강심장’과 자기성찰은 원초적으로 궁합이 맞질 않는다. 적을 매섭게 공격할 때에 지지자들의 피가 끓는 것이지, 자기성찰은 오히려 지지자들을 내쫓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강한 당파성을 갖고 있을 때엔 ‘강심장’에 속했지만, 당파성의 한계와 추한 면을 본 뒤로 자기성찰을 부르짖으면서 ‘심약파’로 변했다. 중간적 입장을 뜨겁게 지지해줄 사람들도 없으니 욕먹어 가면서까지 소신을 피력할 동기부여도 안 된다. 그래서 가슴속 깊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는다. 어느덧 “38선 혼자 막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내 좌우명이 되고 말았다. 모두 다 미쳐 돌아갈 때엔 침묵하는 게 최상이라고 믿게 되었다.

지금 한국의 공공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이 함정에 빠져 있다. 시장원리상 자기성찰이 가능하지 않게끔 돼 있는 것이다.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모두 다 ‘강심장 신문’들이다. 상대편을 공격하는 데에만 모든 정열을 쏟고 있을 뿐이다. 아니 지금 이명박 정권과 그 패거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데, 그런 양비론을 펴는가? 분노할 독자들이 적지 않으리라.

그런데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길 해보면 영 딴판이다. 지금 이런 식으로 가선 답이 나오질 않는다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왜 개혁·진보세력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했는가? 그것도 이명박과 그 패거리들 때문인가? 이 물음은 아예 제기되지도 않는다.

자기성찰을 좀 하는가 싶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모든 게 뒤집어져 버렸다. 이명박과 그 패거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이 유일한 대안이자 비전이 되고 만 것 같은 느낌이다. 서거 직전까지 노 전 대통령과 친노세력이 져야 할 책임과 관련해 날카로운 비판을 퍼붓던 진보신문들마저 아무런 설명이나 해명도 없이 돌변해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하면서 그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외치는 전위대가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의 ‘표현의 자유’ 탄압만 무서운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 개혁·진보세력은 스스로 건 최면과 자기기만에 의해 더 큰 탄압을 받고 있다. 공기업들을 망친 게 이명박 정권인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인가? 언론·학계에 있다가 정·관계로 진출한 개혁·진보 인사 가운데 무엇이 문제였으며 자신의 과오는 무엇이라고 밝히는 사람은 왜 한 명도 없는가? 개혁·진보적인 시민운동이 탄압을 받는다고 외쳐대기 전에 그간 정부와 대기업의 도움으로 편하게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면 안 되는가? 나는 <한겨레> 지면에서 이명박 비판과 더불어 이런 의제들을 많이 다루는 걸 보고 싶다.
 
(한겨레 10-01-19, 강준만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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