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당신에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처가 있었다고 칩시다. 그리고 당신은 그 콤플렉스와 상처를 넘기 위해 열심히 이 악물고 노력해서 스스로를 성장시켰습니다. 번듯한 회사도 들어가고 돈도 모아 자기 집도 장만했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성취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속에 외로운 소년이 둥지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얻은 그 성취는, 그 콤플렉스를 빨리 버리라고 어렵게 얻어진 건데, 정작 본인이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소중히 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거죠. 왜냐, 그 상처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 외에 소중히 할 만한 게 별로 없으니까. 물리적으로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상처를 자신을 설명하는 도구로 쓰면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찌되었던 ‘상처’ 이야기는 피곤합니다. 왜냐면 대개 ‘상처’ 그 자체가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 이야기가 잘 먹혀들기라도 하면 그것 역시도 문제이지요. 상처를 극복하거나 잊는 게 아니라 상처에 자꾸 의지하게 되니까요. 심지어 내가 나의 상처를 소중히 하는 것처럼, 나의 상처를 소중히 해줄 수 있는 ‘타인’을 찾게 되고 그것이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돼버리니까.

이때 자기연민과 자기애가 굳는 건 시간문제이지요. 이러면 사람 참 빨리도 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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