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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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순조 때, 관직에서 물러나 연암협에 머무르게 된 박지원과 그를 만나게 된 지문.
- 순조 비 책정건으로 경주 김씨와 갈등을 겪게 된 안동 김씨 김조순과 문장으로 갈등하던 유한준이 박지원을 찾아옴.
- 책수집이 유행하였던 조선. 만 권을 모아 '완위각'이라는 서재를 꾸민 이하곤.
- 지문이 유배중인 박제가를 만나고, 박지원은 유한준과 산송 문제에 시달리다.
- 지문은 과거를 보고, 김조순의 관직 제의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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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천히, 정밀하게 읽어라.
2. 객관적 인식과 통찰을 위해 노력하라.
3. 논쟁이나 아는체를 위해 글쓰지 말고, 글을 위한 글을 써라. 거짓을 도끼로 찍으려는 마음으로 쓰라.
3. 문자로 된 것만이 책은 아니다.
4. 글을 아무리 잘 써도 전달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5. 어설픈 타협을 해서는 안되며, 구별과 대립을 포섭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 연암 박지원: 처숙 이군문에게 수학. 학문 전반을 연구하다가, 30세부터 실학자 홍대용과 서양의 신학문을 접하였다.
1777년(정조 1) 홍국영에 의해 벽파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으로 이사, 독서에 전념하였다.
1780년(정조 4) 친족형 박명원이 청나라에 갈 때 동행했다. 기행문 《열하일기》를 통하여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하였다.
1786년(정조 10) 왕의 특명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관직에 나서기 전, 김조순 같은 경화세족의 자제들과도 어울렸다.
저서에 《연암집》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등이 있고, 작품에 《허생전》, 《호질》,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양반전》 등이 있다.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 초정 박제가: 서자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시·서·화로 명성을 얻었다.
박지원을 스승으로 따르며, 이덕무·유득공 등 북학파들과 서울에서 가까이 살면서 교유하였다.
29세 때(1778) 청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된 정사 채제공을 따라 청조 문물을 접하고,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대표작 《북학의》를 통해, 우리의 사회적 폐단을 성찰하고 농기구·수레 등 기구의 개량과 사회제도의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듬해 정조의 서얼허통 정책에 따라 이덕무·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 홍국영: 조선 후기의 문신 ·세도정치가.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주동역할을 한 벽파들이 세손까지 해하려고 음모를 꾀하자 이를 막아 세손에게 깊은 신임을 얻었다. 정조를 즉위시키는 데 진력하여 도승지에 올라 누이동생을 빈으로 들여보내 세도정권을 이루고 갖은 횡포와 전횡을 일삼았다.

* 김조순: 조선 후기의 문신. 정조 때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순조 2년에 딸이 순조의 비로 책봉되면서,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정조가 작고하자 어린 순조를 도와 국구로서 30년간이나 보필한 공적이 컸다.

* 유한준: 조선 후기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저서로 《저암집》이 있다. 당시 화가들의 그림에 제발문을 쓰기도 하였다.

* 이덕무: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여 검서관을 등용할 때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등과 함께 뽑혀 여러 서적의 편찬 교감에 참여했다. 명과 청나라의 학문을 깊이 수용하여 실질적으로는 북학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서쾌: 조선 후기 책 중개인.

* 과문: 과거시험 제술업(오늘날의 논술시험)의 주요한 문장형식이었던 시·부·표(表)·책(策)·의(疑)·의(義). 규격화된 문장형식 때문에 순수 문예의 성장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실학자 이수광, 이익, 정약용에 의해 비판받았다.

* 향시: 과거(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1차 시험.

* 오마주: 선대의 업적을 기려 감명깊은 업적을 본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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