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브로노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
과학이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발간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다른 한 저작 ‘인간의 유래’ 역시 그것에 못지않은 명저라는 사실은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에서 다윈은 인간이 원숭이와 가까운 혈연관계를 가지며 그 근원은 먼 옛날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 증거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요컨대 다윈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공동의 조상을 갖는, 결국은 생물학적 진화의 한 산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설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개 생물종에 불과한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다른 모든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지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마침내 찬란한 현대문명의 꽃을 피워낼 수 있었을까?

여기 한 탁월한 석학의 설명이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동물 가운데서 유독 인간만이 자기 환경에 갇혀 있지 않은 유일한 존재다. 상상력, 이성, 정서적 예민성과 강인성으로 인해 인간은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이 일련의 발명을 통해 자기 환경을 개조해온 것은 일종의 다른 종류의 진화, 즉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문화적인 진화인 것이다. 나는 그 문화적인 산봉우리의 연속을 ‘인간의 등정’이라 부른다.” 
 
제이콥 브로노스키(Jacob Bronowski)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는 다윈의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와 크게 대조적이다. 다윈이 생물학적 인간의 근원을 밝혀서 ‘겸손한 인간’의 면모를 제시했다고 한다면 브로노스키는 문화적 인간의 역사를 설파해서 ‘인간의 성공’을 자축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한 인물이 어느 한 분야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는 경우는 사실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동시에 섭렵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다. 더욱이 수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물리학으로 옮겼다가 다시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등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동시에 시인이자 극작가로도 활동했고 또한 계관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연구가로서도 탁월했던 그런 인물이라면 그는 ‘석학 중의 석학’으로 불려도 별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브로노스키가 바로 그런 사람으로서 1908년 태생의 그를 사람들은 ‘20세기의 르네상스인’으로 칭송하였다. 그는 과학의 대중화에도 힘을 기울여서 여러 권의 명저를 남기고 텔레비전에도 자주 출연하였다.

하지만 브로노스키를 정녕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한 권의 책 ‘인간 등정의 발자취’ 때문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원래 그가 같은 제목으로 제작했던 13부작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다시 글로 정리한 것이다. 이 TV 프로그램은 1973년 전 세계적으로 절찬을 받으며 방영되었는데 이듬해 다시 책으로 발간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 작업에 너무 열정을 쏟았던 나머지 그는 책이 간행된 그 해에 66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러면 브로노스키는 이 책에서 과연 어떤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는 인류문명을 과학이 이루어 놓은 업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문명이란 지식과 지식의 성실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과학(science)이라는 말은 원래 지식(knowledge)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바라보는 인류문명사의 근간은 곧 과학의 역사이며 그것이 바로 그가 강조했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브로노스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과학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과학이며 자연과학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예술·문학·종교·기술·건축 등 인간 문화의 전반을 두루 망라한다. 그는 ‘인간 등정의 발자취’에서 이런 문화와 문명의 인류역사를 과학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다만 전문적이고 난해한 과학적인 해설로서가 아니라 유려한 문학적 비유가 곳곳에 녹아있는 휴머니스트의 필체로서 말이다.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의 삼림이 초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초원에 노출된 유인원의 일부는 두 발을 딛고 일어서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진화하였다. 그렇게 해서 자유로워진 두 손을 사용해서 연장과 무기를 움켜쥘 수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사냥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원래 초식성이었던 식성은 점차 잡식성으로 바뀌었으며 그렇게 되자 식물만을 섭취하던 때에 비해서 여가 시간이 훨씬 늘어나게 되었다. 원시인류는 그런 남겨진 시간 동안에 협동으로 더 큰 짐승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언어가 발달하고 이에 따라 두뇌의 발전도 가속화되었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