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마틴 부버의 ‘나와 너’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인간관계 메말라가
 
‘나와 너(Ich und Du, 1923)’는 언뜻 보기에 ‘만만한’ 책같이 보인다. 책이 얄팍한 데다가 ‘나와 너’라는 제목에서는 연애소설 같은 가벼움마저 풍긴다. 하지만 산뜻한 마음으로 책을 펴든 독자라면 식겁할지도 모르겠다. 책장 가득 철학의 난해함이 시의 오묘함 속에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와 너’는 철학적 산문 시(詩)에 가깝다.

하지만 ‘나와 너’에는 마약 같은 매력이 있다. 독자는 쥐나는 머리와 먹먹한 가슴을 움켜쥐면서도 좀처럼 책을 던져버리지 못할 터다.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종교적인 절정체험을 논리와 언어로 풀어내는 재주를 지닌 철학자다. 표현을 바꾸어 집요하게 반복되는 그의 핵심 주장은 일상에서 맛보기 힘든 높은 삶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나와 너’에서 부버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부버는 ‘나-너’와 ‘나-그것’이란 두 개의 근원어로 세상을 분석한다. 부버가 직접 드는 예로 근원어를 설명해 보자. 우리는 흔히 나무와 ‘나-그것’의 관계로 만난다. 생물 종(種)의 하나로 나무를 분류하기도 하고 가구 재료로 쓰기 위해 몇 그루인지 수로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무와 ‘나-너’ 관계로 만날 때도 있다. 나에게 나무가 단순히 감상하고 이용하는 ‘그것’이 아니라 내 전부를 바쳐 사랑하는 ‘너’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부버가 말하려는 바를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에 빗대어 풀어보자. 어린왕자는 자기가 소중하게 가꾸던 꽃이 여느 장미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데 실망했다. 하지만 어린왕자의 장미는 자신이 쏟았던 그 정성 덕분에 그에게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이다.

부버는 “‘그것’은 번데기요, ‘너’는 나비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언제든 ‘너’로 내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다시 ‘그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사람 사이의 만남도 그렇다. 부버에 따르면 ‘나-그것’으로 서로를 대하는 사이에서는 진정한 ‘만남(Begegnung)’은 없다. 인사를 예로 들어보자.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사람에게 우리는 “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안녕(安寧)’에 정말 관심을 갖고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네 인사는 따분하고 틀에 박혀 있다. ‘안녕!’이라는 말 속에 당연히 담아야 할 상대방의 안전과 평화를 비는 마음이 얼마나 막연하게 느껴지는가? 카피르(Kaffir) 사람이 쓰는 신선한 인사말과 비교해 보라. 그네들은 사람을 만날 때 자기 몸을 상대 몸에 꼭 붙이면서 ‘자네가 보이네!’라고 말한다. 미국 인디언은 더욱 구성지고도 고상하게 ‘그대여! 내 냄새를 맡게!’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 모든 사람과 이렇듯 친근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수는 없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나-너’의 관계는 ‘나-그것’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대도시 상가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상대와 맺는 관계는 대개 ‘나-그것’ 차원에 그친다. 서로 ‘이용’하고 ‘경험’하는 수준에서만 상대를 대한다는 뜻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경제로 복잡하게 얽힌 거대 국가는 반드시 ‘그것’의 세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버는 유능한 정치가나 경제인일수록 사람을 ‘사업이나 목표를 위해서 필요한 능력을 지녔는지’로만 가늠하고 대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몰인정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만약 지도자들이 사람 하나하나를 ‘너’로 대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는 “당장 그네들 머리 위에서 무너지고 말 터”이다. 하나하나의 사정을 다 봐준다면 원칙도 정의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사람을 모두 ‘그것’으로 보고 법과 원칙에 따라 공평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나-그것’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사회생활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자연과학에서 연구를 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인과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인과 결과를 따져서 성과와 책임을 나눈다는 뜻이다. 법칙과 원칙에 맞는지를 살펴서 뭐가 옳고 그른지를 가린다. 그래야 공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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