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왓슨의 ‘이중나선’
DNA구조를 밝힌 과학자들의 희로애락 그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해서 근대 생물학의 길을 열었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나서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라는 두 젊은 과학자는 DNA의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서 현대생물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다윈이 수백 쪽에 달하는 빡빡한 이론서로써 자신의 주장을 제시했던 데에 반해서 왓슨과 크릭은 ‘네이처(Nature)’라는 과학잡지에 겨우 900단어에 불과한, 단 두 쪽의 논문을 실어서 전 세계 과학계를 온통 흔들어 놓았다. 도대체 그 짧은 논문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일까?

유전학과 유전자, DNA를 제외한다면 현대생물학은 아예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오늘날의 생물학은 온통 이런 정보로 넘쳐난다. 유전학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물질과 그런 유전법칙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는 분야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런 유전물질의 존재인데 그것이 DNA라는 것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30년대였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연구자는 DNA에 대해서 별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단백질은 종류가 수천 가지나 되는 데 반해서 그보다 훨씬 단순한 구조의 DNA는 모든 동식물에서 오직 한 가지 종류만 발견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유전형질에 대한 정보를 모두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DNA가 유전물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체가 갖는 구조의 단순함, 즉 오늘날 우리가 ‘이중나선’으로 부르는 그 꽈배기처럼 꼬인 사다리 구조에서 비롯된다. 사다리의 양쪽 기둥이 마치 지퍼가 열리듯 그렇게 풀어지고 그 풀어진 각각의 기둥이 자신과 똑같은 구조의 다른 기둥을 만들어냄으로 해서 한 세포가 두 세포로 증식할 때 똑같은 유전정보가 두 세포에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이처럼 DNA에 의존해서 번식과 진화를 거듭해 왔다.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은 바로 이런 DNA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인간에게 유용한 새로운 생물종을 만들고 또 인간에게 유해한 악성 유전병을 제어하는 등의 연구를 수행해서 21세기 과학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다.

각각 25세와 36세의 풋내기 연구자에 불과했던 왓슨과 크릭은 그런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서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점을 입증함과 동시에 유전물질로서 작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를 제시하는 데 성공하였다. 왓슨과 크릭은 DNA 구조 발견의 공로로 다른 한 사람의 조력자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1962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1968년 처음 발간된 ‘이중나선(The Double Helix)’은 제임스 왓슨이 1951년 자신이 처음 영국에 발을 들여놓았을 무렵부터 1953년 봄 ‘네이처’지에 논문을 실을 때까지 자신의 주변사를 소설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신출내기 생물학자 왓슨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그때까지 박사학위도 받지 못했던 무명에 가까운 물리학자 크릭을 처음 만나서 함께 DNA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게 된다. 당시의 DNA 연구는 영국의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 등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런 쟁쟁한 과학자들을 물리치고 신참인 왓슨과 크릭이 먼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왓슨이 미국인 특유의 자유롭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면 크릭은 천성적인 떠버리이기는 하지만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이다. 왓슨이 생화학자로서 교육을 받은 데 반해서 크릭은 X선결정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모두 저명한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고서 일찍부터 유전물질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남들에 앞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필경 똑같은 목표에 주목해서 함께 나아갔다는 점, 학문적 배경이 달라서 서로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젊은 연구자로서 자신들에게 부족했던 지식을 주변 사람에게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 등이 기여하는 바가 컸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특별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젊은 연구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순발력과 신선한 아이디어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도 다른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DNA 구조가 이중나선인지 아니면 삼중나선인지, 염기쌍의 결합이 같은 염기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다른 염기들과 결합하는지 등에 대해서 이론을 확립하는 데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는 즉시 다른 대안을 찾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연구자가 자신들의 업적과 경험에 매달려서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 그들은 성큼성큼 새 길을 걸어나갔던 것이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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