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슘페터의‘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창조적 파괴다”
경제학에서 1883년은 매우 기념비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3월에 공산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가 사망했고, 같은 해 2월과 6월에는 20세기 자본주의 경제학을 대표할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1883~1950)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가 각각 태어났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1930년대의 대공황과 대량실업을 극복하는 데 실질적이면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케인스는 죽기 전에 이미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올랐다. 이후 케인지언(Keynesian)이라 불리는 케인스를 추종하는 경제학자들이 득세를 했을 뿐 아니라 아직도 경제학계의 다수를 점하고 있을 정도다.
슘페터도 경제발전, 경제변동, 경제체제, 경제사상 등에서 케인스 못지않게 훌륭한 연구 업적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당대에 케인스의 주장과 이론이 현실 경제에 많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큰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수요 측면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케인스 경제학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서 슘페터의 견해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슘페터는 공급 측면에서 기업과 기업가의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슘페터’ 하면 떠오르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그가 29세 때인 1912년에 쓴 ‘경제발전론’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창조적 파괴는 국가와 기업가는 물론 개인의 역량 개발 등에서도 수없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슘페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가 가지는 생명력 때문이다.
슘페터는 기업가들의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경제가 발전해 가는 과정을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불렀다. 그는 창조적 파괴 또는 혁신을 위해 필요한 핵심적 요인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었다.
① 새로운 제품의 발명 또는 개발
② 새로운 생산 방법의 도입 또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
③ 새로운 시장의 개척
④ 새로운 원료 또는 부품의 공급
⑤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조직의 형성
현재나 과거를 막론하고 기업가들이라면 이 중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성장의 엔진들이다. 이들 엔진을 여하히 개발하고 운영하느냐에 기업뿐만 아니라 한 나라 경제의 성장과 국민의 생활수준은 물론 인류 물질문명의 발전이 걸려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를 주름잡던 미국의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와 일본의 소니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일본의 도요타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세계 1위 그룹에 올라서고 있는 것도 창조적 파괴라고 부를 수 있는 엔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을 기업가들의 창조적 파괴 과정에서 찾은 슘페터가 1942년에 내놓은 책이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쓴 맥락에서 보면 슘페터는 자본주의 예찬론자로서 사회주의는 없어지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꽃필 것이라는 주장을 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정반대로 슘페터는 책에서 ‘자본주의는 붕괴될 것이고 그 뒤를 사회주의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그렇다고 슘페터가 마르크스의 추종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스스로 자신을 비(非)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슘페터는 대중궁핍화나 산업예비군에 이은 대공황과 같은 경제적 실패에 의해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틀렸다고 공격한다. 대신 자본주의의 경제적 성공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최성환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