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집단은 왜 이기적이 되는가” 파헤쳐
 
한번 만들어진 조직은 어지간해서는 없애기 어렵다. 조직은 그 생리상 끊임없이 예산과 사람을 끌어들여 몸집을 키운다. 할 일이 없어지면 명칭과 역할을 바꿔서라도 가늘고 모질게 살아남는다.

예를 들어 보자.
‘작은 정부’는 언제나 있던 요구사항이지만 공무원의 수는 자꾸만 늘어간다. 부처간 이기주의로 예산이 낭비되기 일쑤고 이권을 놓고 중앙과 지방정부 간 다툼이 벌어지는 일도 예사다.

조직끼리 벌이는 한심한 다툼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욕하곤 한다. 큰 틀에서 바라보고 무엇이 진정 정의인지를 아는 경영자라면 이 꼴로 일이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터다. 썩어빠진 조직윤리도 문제다. 제대로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꾸준한 의식개혁으로 공정과 정의를 다잡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도자의 인품이 훌륭하고 조직원들이 정직ㆍ근면하다면 조직 사이의 다툼은 사라질까. 이 물음에 대해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최고로 좋은 사람이 모인 집단도 가장 영악하게 비뚤어질 수 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1932)’는 제목만으로도 니버의 입장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사회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왜 니버는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그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예일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엘리트 목사였다. 성직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니버도 처음에는 ‘세상을 구원하는 힘은 반듯하고도 깨끗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노동자 편에 서서 포드(Ford) 공장과 싸운 후에, 나아가 1차 세계대전의 잔인함을 겪은 다음에 그는 도덕윤리만으로는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을 예로 든다. 전쟁터의 병사 대부분은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였다. 그네들은 희생과 용기라는 면에서도 최고의 용사들이었다. 지휘관 역시 그랬다. 국가 지도자들 역시 자기네 나라가 ‘문명의 미래와 가치를 지키는 수호자’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애국심과 인류애(人類愛)가 뒤얽힌 이 전쟁은 강대국 사이의 잇속다툼이었을 따름이다. 설사 국가 지도자 중에 누군가는 전쟁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목적 때문에 일어났음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니버는 그 이유를 조지 워싱턴의 말을 빌려 담담하게 일러준다.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도 자국의 이익과 상관없이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고지식한 도덕심 때문에 전쟁을 벌인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목매달아 죽여야 마땅한 매국노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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