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조직은 규모가 커지면 반인간적으로 변해”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는 ‘인간사고의 방향을 바꾼 극소수의 창조적 인물’로 칭송될 만큼 20세기의 지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세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첫 번째 저서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1973)’에선 전통 경제학의 주류와 테크놀러지에 대해 거센 비판을 하고, 두 번째 저서인 ‘혼돈으로부터의 도피(A Guide for the Perplexed)’에선 첫 번째 저서의 내용에 철학적·도덕적 바탕을 제공함으로써 보다 건전하고 바람직한 삶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 저서 ‘좋은 작업(Good Work)’에선 오늘날의 테크놀러지가 정치·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초래하는 악영향을 파헤치고 있다. 독일 태생인 그는 1930년에 장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옥스퍼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그 후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그는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영국 정부의 경제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고, 1977년 사망할 때까지 학술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슈마허가 그의 저작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이다. 그가 주장하는 진정한 발전의 길은 ‘근대적 성장’과 ‘전통적 정체’ 중의 택일이라기보다는 그 사이의 중용이다. 슈마허의 정치·경제학의 특징은 한마디로 반근대적이다.
 
그것은 소규모·분산 지향적이며 반경제과학적(antieconomic science)이다. 1776년 애덤 스미드의 ‘국부론’ 이래 경제학자들은 모든 분야의 사회과학자 중에서 가장 엄밀하고 성공적인 과학자들로 자부해 왔다. 과학자이고자 하는 열망과 자부는 어느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것이었다.

리카르도와 시니어의 경제학을 ‘음울한 학문’이라 부르며 비난하고 거부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자신들의 사회주의를 과학적이라 주장하며 생물학에 있어 다윈의 진화론과 견줄 만한 것이라 자랑했다. 그러나 슈마허의 경제학은 그런 유의 과학적 경제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오늘날 주류 경제과학의 모든 가정과 전제에 뿌리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고 도전했다. 슈마허의 정치경제학은 무정부주의자의 견해와 흡사하다.

이를테면 크로포트킨, 톨스토이, 간디 등이 그들이다. 다른 무정부주의자와 달리 이들은 ‘조직의 규모’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소규모 지향적인 무정부주의 경제학은 사회주의적 가치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지만 사적 소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유기업의 규모가 너무 거대하여 구성원 개개인을 소외시키지 않는 한 다양한 형태의 사유기업이나 사적 소유는 환영하고 있다. ‘거대한 규모’가 적이며 죄악이다. 규모의 거대함은 비인격성의 모체일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필요나 요구에 둔감하게 되고 권력의 독점이나 남용을 낳기 때문이다. 슈마허가 그의 주저를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임효선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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