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수컷이 사회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는 생리적, 심리적, 경제적 숙명에 의해서가 아니다. 문명 전체가 수컷과 거세체와의 중간 산물을 만들어내어, 그것에다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만약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또 때로는 아주 어린 유년기부터 이미 성적으로 우리 눈에 별개의 것으로 비쳐지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본능이 여자 아이를 태어날 때부터 수동성, 교태, 모성애에 어울리게 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생활에 타인의 개입이 거의 당초부터 존재하며, 아이는 처음부터 강제적으로 그 인생의 직분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1908~1986)가 1949년에 내놓은 책, ‘제2의 성(Le Deuxi♥me Sexe)’의 제2부 ‘체험’의 첫 부분에 나오는 글이다. 특히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은 사실상 ‘제2의 성’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 의해 회자된다. 이 말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문화적, 사회적 영향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는 걸 뜻한다. 요컨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문화도 여성에 대해 여성다움을 요구한다.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그 여성다움이란 수줍어하면서 좀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수동성일 수도 있고, 남성에게 교태와 아양을 떠는 것일 수도 있으며, 지극한 모성애일 수도 있다. 흔히 부모가 여자 아이에게 인형 장난감을 쥐어주고 남자 아이에게는 트럭 장난감을 쥐어주는 것도, 보부아르 식으로 말하면 여자 아이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하는 것, 다시 말해서 여성으로 만들어버리려는 행동이며, ‘여성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남성들이 여성에게 덧씌운 굴레, 만들어진 굴레에 불과하다.

그런 굴레의 사례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여성 운전자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남성 운전자가 있다. “집에서 밥이나 하고 아이나 돌보지 왜 차를 끌고 나와 가지고 도로를 혼잡하게 만들어!” 이런 말 한마디에서 우리는 여성의 구실에 대한 고정관념, 이를테면 자동차라는 기계를 다루는 건 본래 남성의 일이라는 것, 여성의 본질적인 구실은 양육과 가사라는 것 등의 고정관념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고정관념이 오늘날에도 깨지지 않고 있는데 ‘제2의 성’이 처음 출간된 20세기 중반에는 얼마나 강했을까. ‘제2의 성’은 출간되고 나서 몇 주 만에 2만2000부가 팔리며 큰 화제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남성을 조롱했다”며 이 책을 비난했으며, 로마 교황청은 위험한 책으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제2의 성’으로 인해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가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20세기 후반 여성주의 사조, 즉 페미니즘의 사실상의 출발이었다.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여성도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열려 있다. 그런데도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성공하기 힘들다고 핑계를 댄다.’ 그런데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출간할 당시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남자가 많았나 보다. 보부아르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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