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생물을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인식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양육 환경이 좋더라도 출신의 근본은 속일 수 없다는 의미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도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근본은 보잘것없지만 당사자가 자수성가했을 때 흔히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두 속담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생물학계에서 치열하게 논의되었던 두 관점, 즉 결정론(determinism)과 환경론(environmentalism)을 각각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정론이란 생물체의 모양, 습성, 행동 등은 모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주장이다. 환경론이란, 물론 그런 천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태어난 이후 성장할 때의 주변 환경에 의해서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결정론과 환경론의 대립은 사실상 인류 역사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흑백 인종차별과 히틀러의 순혈주의가 결정론적 주의(主義)에 근거한 것이라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교육평등 주장은 환경론에 뿌리를 두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결정론은 20세기 들어서 다시 유전자결정론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부모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비밀이 유전자(게놈)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유전자결정론 또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생물학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유전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20세기 후반기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의 대부분 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했지만 유전의 매개물질이 DNA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유전자결정론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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